“아빠의 姓 따르는게 왜 당연한지… 현실 바꿔보고 싶었다” [심층기획-성씨 물려준 엄마들]
입력 : 2022-04-04 07:00:00 수정 : 2022-04-04 10:25:02
남편이 흔쾌히 동의해줘서 사용 가능
혼인신고 때 협의서 제출 등 절차 많아
결혼 이후도 선택할 수 있게 개선 필요”
母姓 협의 신청 건수 5년 만에 210% ↑
전체 혼인 건수선 0.16∼0.19% 불과
사회적 통념·까다로운 절차 등 걸림돌
엄마 성 바꾸려면 이혼·소송까지 해야
해외사례는…
독일은 부모 성 등 자유롭게 사용 가능
부성원칙 영향 中 80년대 혼인법 바꿔
대부분 국가, 男 姓 우선 법제화는 안해
◆“엄마 성도 물려받을 수 있다는 것 알려주고 싶어”
이씨와 박씨 부부에게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또 이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은 없는지 진솔한 얘기를 들어봤다.
―아이에게 엄마의 성을 물려주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
△박은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 그 후로 어머니의 성으로 바꾸려고 시도도 해 봤지만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아쉽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들에게는 엄마 성을 물려줘도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다행히 남편도 흔쾌히 동의해 줬기에 혼인신고서에 어머니 성을 따르겠다고 써낼 수 있었다.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어려움은 없었나.
△박은애=우리 언니는 싱글맘이고 조카도 언니의 성을 따라 박씨다. 그만큼 우리 가족은 전혀 거부감이 없다. 다만 시부모님이 걱정을 하시기는 했다. 아이들이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다고 오해받을까 걱정하셨다. 아이의 이름을 부를 때 일부러 성을 부르시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할 때도 있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혹시라도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길까 봐 걱정도 됐다. 그래서 나중에 아이가 원한다면 성을 바꿔도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엄마 성을 써야 더 평등한 것이라 생각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태어나면 당연히 아빠의 성으로 결정되는 현실을 바꿔 보고 싶었다.
△이종혁=사실 다른 사람들은 아이 부모의 성을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병원 같은 곳에 갈 때도 행정적으로 불편함을 느껴 보지 못했고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가끔 아이의 성을 보고 아내가 아빠고 내가 엄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다. 이종혁이라는 이름은 남자 이름 같다고 생각할 만도 한데 아직은 엄마 성을 따르는 것이 생소해서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엄마 성을 따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인식한다고 보는지.
△박은애=아직까지는 아빠 성과 달리 엄마 성을 물려주는 것을 예외로 본다. 혼인신고서를 냈을 때 자녀의 성·본을 모(母)의 성·본으로 하겠다고 체크하자 구청 직원이 ‘여기에 체크하시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더라. 혼인신고 때 협의서도 따로 제출해야 하는 등 절차도 많다. 한 명은 엄마 성, 한 명은 아빠 성으로 쓸 수도 없다. 결혼 전에 이런 것들을 고려해서 누구의 성을 물려줄지 결정하는 부부가 얼마나 있겠나.
△이종혁=사회 분위기는 달라지고 있다고 느끼는데 아직 부성우선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제도는 사회 변화를 못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크면 엄마 성을 쓰는 이유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해 줄 것인지.
△이종혁=주변에는 아빠 성을 쓰고 있는 친구들이 많겠지만 엄마 성을 쓸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말해 주고 싶었고 그것이 앞으로 너희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 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했어. 너희가 커서 이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할지 모르겠지만 너희도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고 어떤 이름이든 엄마 아빠는 너희를 너무나도 사랑해.
◆엄마 성 선택하려 해도, 제도적 어려움 커
3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혼인신고 시 자녀가 어머니의 성·본을 따르도록 협의해 신청한 건수는 △2017년 198건 △2018년 254건 △2019년 379건 △2020년 448건 △2021년 612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5년 전인 2017년과 비교하면 210%가량 증가했다. 그러나 여전히 전체 혼인 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높지 않다. 통계청이 발표한 혼인 건수가 2019년과 2020년에 각각 23만9000건, 21만4000건임을 고려하면 전체 혼인 건수 중 0.16∼0.19% 수준이다.
사회적 통념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운 영향도 있다.
2005년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여성들도 자신의 성을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되었지만 하위법에는 여전히 부성우선주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어 이씨와 박씨의 사례처럼 혼인신고 때 모성을 따르겠다고 명기하고 협의서를 제출하지 않은 경우라면, 박지영(34·가명)씨처럼 소송도 불사해야 한다.
올해로 결혼 9년 차인 박씨는 남편과 함께 가정법원 소송을 진행 중이다. 세 살 된 아이의 성을 남편의 성에서 자신의 성으로 바꾸기 위해서다.
박씨는 혼인신고 당시에는 자녀가 없었고 엄마 성을 쓸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기에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는 항목에 ‘예’ 체크를 하지 않았다.
아이를 가진 후 당연히 아빠의 성을 물려주는 것에 의문을 품은 박씨는 출산 뒤 남편과 협의 끝에 자신의 성으로 출생신고를 하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의 성으로 바꾸려면 법적으로 이혼을 한 뒤 성을 바꾸거나 가정법원에 소송을 해야 했다.
이런 문제에 대해 허민숙 국회입법조사관은 “그동안 ‘한부모 가정에서만 엄마 성을 쓴다’와 같은 편견으로 엄마 성을 쓰는 것은 예외처럼 여겨졌고 제도도 그런 인식에서 변하지 않은 것”이라며 “외국도 아빠 성을 따르는 것이 관습일 뿐이지 제도로 존재하진 않는다. 이런 뒤처진 제도는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佛, 18세 되면 자녀가 마음대로 성씨 바꿀 수 있어
혼인신고 때 아이의 성을 미리 선택하도록 강제하는 한국과 달리 외국에서는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도 어머니의 성으로 바꿀 수 있게 허용하는 나라가 많다. 특히 한국처럼 아버지의 성이 우선하도록 법제화한 곳은 거의 없다.
3일 외신 보도에 따르면, 현재 프랑스에서는 아이가 18세가 됐을 때 간단한 신청만으로 자신의 성씨를 바꿀 수 있게끔 하는 법안이 발의돼 논의 중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법적으로 성씨를 바꿀 수 있지만, 이 법이 통과되면 법원에 이유를 설명하는 등의 과정이 대폭 줄어들게 된다.
아버지의 성으로 출생신고를 했어도 18세가 되면 어머니의 성으로 변경할 수 있고, 아버지의 성을 그대로 따라도 된다. 부모의 성씨를 원하는 순서대로 병기할 수도 있다.
자녀가 스스로 성씨를 선택할 수 있게 한 이 법안은 가정 내 성폭행이나 아동학대를 겪었던 피해자가 가해 부모의 성을 계속 따르지 않아도 되게끔 해 준다는 의의도 있다.
대부분 나라는 관습에 따라 아버지 성을 따르거나 ‘가족 성’을 만들지만, 법으로까지 규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내조차 결혼 후에는 남편 성을 따르는 경향이 강한 미국도 성명법에 출생 시 어머니나 아버지의 성을 자유롭게 따를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부모 어느 일방에게 자녀의 성을 결정할 우선권을 부여하지 않고 부, 모의 성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심지어 완전히 다른 성을 자녀에게 부여할 수도 있다.
독일의 경우도 법적으로 출생신고 때 어머니 성을 선택할 수 있게 돼 있고 부모의 성을 둘 다 사용할 수도 있다.
한국의 부성우선주의 원칙에 영향을 미친 중국도 1980년 이미 혼인법을 바꿔 자식이 부모 성을 자유롭게 따를 수 있게 규정했다.
여성가족부도 이런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지난해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 ‘부성우선주의’ 폐기 추진을 공식화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여성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오선희 변호사는 “오래전부터 폐지 목소리가 많았지만 국회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며 “진통이 오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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