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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세번 바뀌어도 살아남은 中 책사… 시진핑과 동반 몰락하나[송의달 LIVE]

정권 세번 바뀌어도 살아남은 中 책사… 시진핑과 동반 몰락하나[송의달 LIVE]

입력 2022.04.03 09:00 | 수정 2022.04.03 09:23

중국공산당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명은 9200여만명 당원 조직의 최상층부에 있는 지도자들이다. 7명 가운데 서열 5위로 이념·선전(宣傳) 담당인 왕후닝(王滬寧·67)은 막후(幕後)에서 움직이는 최고 책사(策士)이다. 6명과 달리 그의 일정과 동선(動線)은 비밀 사항이다.

중국공산당 서열 1위인 시진핑 총서기(왼쪽)과 2위인 리커창 국무원 총리 중간에 있는 왕후닝(사진 가운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조선일보DB

그림자처럼 일하는 그는 현대 중국에서 유일무이한 ‘세 왕조의 국사(三朝國師)’이다. 장쩌민(江澤民)부터 후진타오(胡錦濤)를 거쳐 시진핑(習近平)까지 세 명의 총서기를 섬겨서다. ‘조정이 바뀌면 신하도 바뀐다(一朝天子一朝臣)’는 중국 정치의 불문율(不文律)을 깨는 절묘한 생존술이다.

◇대학교수 출신...9200만명 중 서열 5위

왕후닝의 ‘신화(神話)’는 이어진다. 순수 대학교수 출신이 지방 성시(省·市) 간부는커녕 관료로 일해 본 경험조차 없이 상무위원이 된 사례는 올해 101주년을 맞은 중국공산당 역사상 그가 처음이다. 1995년 당 중앙정책연구실 정치 조장(組長)이 된 그는 2002년 총책임자(주임·主任)로 승진했다. 이어 중앙위 위원(2007년)→정치국 위원(25명·2012년)→상무위원(7명·2017년)으로 5년 마다 수직상승했다.

그는 상무위원 7명 중 유일하게 미국 생활 경험을 갖고 있다. 1988년 9월부터 미국정치학회(APSA) 초청으로 6개월동안 3개 미국 대학 방문교수로 지내면서 20여개 대학과 30여개 도시를 찾아 전문가들과 토론했다. 중국 3대 명문인 상하이 푸단(復旦)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그는 만 29세에 같은 대학 부교수로 임용됐다. 중국 역사상 최연소 부교수 임용 기록이다. 30대에 푸단대 국제정치학과장과 법학대학원장을 지냈다.

왕후닝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 매달리고 책을 읽는 '일 중독자'(workaholic)이다. 2차례 이혼하고 3번 결혼을 했다. 프랑스어에도 능통하며, 취미는 영화 감상과 무협소설 읽기이다./조선일보DB

왕후닝이 2020년 말까지 18년간 이끈 중앙정책연구실은 중국공산당의 최고 싱크탱크이다. 정치·경제·철학·문화·국제·농촌·사회 문제와 당의 건설·유지 등 9개 조(組)에서 수 백명의 박사급 연구원들이 중공 집권의 이론적 뒷받침을 위한 연구와 최고 지도부 연설 초안, 대내외 전략 등을 입안한다.

◇ 유일한 3代 연속 ‘황제 이론가’

그는 장쩌민을 위해 ‘3개 대표론’을, 후진타오에게는 ‘과학적 발전관’이란 국정 이념을 제공했다. 시진핑의 ‘중국몽’과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도 왕후닝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는 그래서 ‘살아있는 제갈공명(諸葛孔明)’, ‘중국의 황제 이론가(China’s Crown Theorist)’로 불린다.

2019년 10월 1일 중국 건국 70주년을 기념하는 국경절 천안문 열병식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가운데)와 전임자인 후진타오(왼쪽), 전 전임자인 장쩌민(오른쪽)/AP·뉴시스

백면서생(白面書生)인 그는 어떻게 중난하이(中南海)에서 14억 중국의 국사(國師)가 된 걸까? 가장 큰 동력은 명석한 두뇌를 바탕으로 한 끊임없는 학습 노력이다. 20여권의 저서를 낸 왕후닝의 말이다.

“청소년기부터 손에 잡히는 책들은 모두 읽었다(抓到什么读什么). 덕분에 나는 독자적 사고로 보편적 논리로 분석해 내는 능력과 독서 습관을 길렀다. 나에게 가장 즐거운 일은 독서이다(到现在为止,我仍然觉得读书对我来说是最快乐的事).”

◇명석한 두뇌...‘책 벌레’

그의 제자인 궈딩핑(郭定平) 푸단대 일본연구중심 부주임은 “푸단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마다 그의 서명이 없던 책이 없었다”고 말했다. 왕후닝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저우치(周琪)는 “결혼 직전 그에게 결혼식에 사용할 물건과 생화(生花)를 사오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저녁에 땀을 뻘뻘 흘리며 그가 가져온 것은 한 아름 책들이었다”고 했다.

방대한 독서 덕분인지 왕후닝의 논문은 심도(深度) 있으면서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다는 평가를 받는다. 1955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그는 문화혁명 중 허약한 몸 때문에 상산하향(上山下鄕·도시 학생과 지식인들을 농촌에 보내는 운동)에서 빠졌다. 그 때부터 철학 서적과 정치 관련물 읽기에 탐닉했다고 한다.

1974년 공농병 특별 케이스로 상하이 화둥(華東)사범대에 입학해 프랑스어와 영어를 배운 후 푸단대 대학원 국제정치학과에 진학했다. 마르크스 ‘자본론’ 연구 대가(大家)인 천치런(陳其人) 교수 지도로 석사 과정을 끝낸 그는 곧장 푸단대 강단에 섰다.

다른 하나는 그가 중국 민족 입장에서 현실 문제에 대한 진지한 해결책을 줄곧 모색했다는 점이다. 왕후닝은 1995년에 쓴 저서 <政治的 人生(정치적 인생)>에서 이렇게 밝혔다.

“누가 정치가인가? 죽음 앞에서도 변하지 않는 신념을 갖고, 동서양 학문에 통달한 지식을 갖췄으며, 숭고한 덕행으로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는 인격을 갖추고, 높고 먼 곳을 내다보는 시야를 갖고, 백번 꺾여도 휘어지지 않는 의지를 갖고, 온갖 냇물을 다 받아들이는 바다와 같은 도량과 대세를 파악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중국의 민주혁명은 걸출한 지도자 집단에 의지해야 한다. 바로 지금 이들이 필요하다.”

베이징 시내 자금성 서쪽 ‘중난하이’ 호수 가운데 있는 잉타이(瀛台) 섬. 중난하이는 중국 최고 지도자들이 모여있는 구역이다. 잉타이는 청대 이래로 황제가 근무하거나 외빈을 맞던 곳이다./조선일보DB

◇목표는 중국의 ‘세계 1위國’

이 말은 그의 학습이 이론적 유희(遊戲)를 넘어 중국 민족의 굴기(崛起), 즉 강대국화라는 ‘목적성’을 갖고 있음을 웅변한다. 그는 “2000년 넘는 역사의 중국이 근대에 쇠락한 ‘중국 현상’을 연구해 중국이 강성(强盛)해지는 방법을 찾는 게 학자의 책임”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왕후닝은 이와 관련해 1986년 논문에서 “중국은 공산당중앙의 권력 집중 강화를 통해 개혁을 심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공산당의 독재와 지속적인 집권(集權) 노력이 필요하다”는, 그의 평생 지론인 ‘신권위주의(新權威主義·neo-authoritarianism)론’의 모태가 됐다.

그는 32세이던 1987년 13차 공산당 대회부터 1997년 15차 대회까지 학자로는 유일하게 세 차례 연속 정치 보고 기초 작업에 참여했다. 후진타오 시대에 왕후닝과 함께 ‘철(鐵)의 3각(角)’으로 불린 링지화(令計劃), 천스쥐(陳世炬)는 시진핑 집권 직후 실각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왕후닝은 상층부로 더 약진했다. 불면증을 겪으면서도 일에 몰두하며 신중하게 처신(處身)한 덕분이다.

왕후닝은 대외 정책도 바꾸었다. 중국 외교의 오랜 기조(基調)인 ‘다극(多極) 체제론’을 밀어내고 ‘미국에 맞짱 뜨는 새로운 대국’으로써 중국의 부상(浮上)을 주창했다. 시진핑이 총서기가 된 2012년부터 본격화한 ‘신형대국관계론(新型大國關係論)’이 그 이론적 토대이다. 이런 사고의 맹아(萌芽)는 1991년 그가 쓴 <미국은 미국을 반대한다(원제목은 美国反对美国)>에 담겨 있다.

 
미국의 취약점을 해부한 왕후닝의 1991년 저서. 2021년 1월 6일 미국 워싱턴 DC 연방의사당 난입 폭동 사건으로 미국의 극심한 내부 분열상이 노출되자, 이 책의 중고본(中古本)은 30년 전 출판 정가의 3000배가 넘는 한 권당 1만6600위안(약 281만원)에 거래됐다./Amazon

◇“약점 많은 미국, 내리막길 걸을 것”

왕후닝은 이 책에서 “4년마다 순조로운 정권 교체를 하는 미국의 내면을 보면 개인주의와 향락주의, 기술주의에 빠져 있어 몰락해 세계 패권국 지위를 잃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흑인과 원주민, 여성들이 미국에서 겪는 현실은 미국이 평등 사회가 아님을 보여준다...미국 정당들은 시장에서 후보자라는 일용품을 행상처럼 팔 뿐이다...미국에선 기술이 사람을 정복했다. 우리가 미국을 압도하려면 반드시 과학·기술 분야에서 추월해야 한다....고유의 정신과 가치관이 붕괴된 미국은 지속하기 어렵다.”

이런 미국관을 바탕으로 왕후닝은 “중국이 국력을 집중하면 미국을 밀어내고 세계 1등 국가가 될 수 있다”면서 시진핑으로 하여금 ‘중국몽(中國夢)’과 ‘일대일로 (一帶一路)’, ‘전랑외교(戰狼外交·wolf-warrior diplomacy)’를 채택토록 했다. 왕후닝의 전략은 한동안 적중했다. 중국의 경제력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웃돌고, 국제적으로 ‘G2′ 대우를 받는 게 증표이다.

◇시진핑 ‘일존 체제’ 구축도 앞장 서

왕후닝은 더 나아가 당헌(黨憲) 개정(2018년)과 ‘역사 결의(歷史決議·2021년 11월)’ 등을 통해 시진핑을 마오쩌둥(毛澤東) 이후 최고의 위인으로 격상하고 시진핑의 장기 집권과 ‘일존(一尊) 체제’ 구축에 앞장섰다. 그 결과 왕후닝에 대한 시진핑의 의존도는 더없이 높아졌다.

하지만 ‘중국의 미국 추월’이 가시권에 들고 시진핑의 3연임(連任)이 무르익어가는 시점에서, 중국이 체감하는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깊고 크다. 신호탄은 2018년 3월,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무역 전쟁을 선포하면서 쐈다. 2021년 1월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도 강력한 대중(對中) 압박·견제 기조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여기에다 유럽연합(EU)과 아시아, 인도, 호주 등에서 반중(反中) 감정은 사상 최고로 치솟았다. 이런 현상은 왕후닝이 밀어붙인 대외 전략과 사업들이 세계 각국에서 큰 반발과 저항을 초래한다는 방증이다.

미국 퓨리서치 센터가 2021년 봄 18개국 국민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반중 감정은 평균 69%에 달했다./Pew Research Center

◇국제 고립...국내에선 ‘反시진핑’ 움직임

중국의 국가 프로젝트인 ‘일대일로’의 경우, 불공정한 ‘독소 조항’과 대출 덫 등으로 아시아·아프리카 각국의 반발을 사 사업이 크게 위축됐다. 2015년 1252억달러이던 중국의 ‘일대일로’ 투자액은 2020년 470억달러로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호주 로위 연구소(Lowy Institute)는 2022년 3월 보고서에서 “중국의 미국 추월 꿈이 멀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최신호는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경제가 시진핑의 장기 집권 꿈을 좌절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쥬드 블량세트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중국 석좌(Freeman Chair in China Studies)는 "앞으로 2030년까지 중국이 직면할 대외 안보 환경은 매우 비관적이다"며 최근 중국의 외교 난맥상을 '포린 어페어' 2022년 3월 16일자에서 밝혔다./Foreign Affairs

중국 내부도 심상치 않다. 차이샤(蔡霞) 전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와 화위안(華遠)그룹의 런즈창(任志强) 회장 같은 태자당(太子黨·당정군 고위층의 자녀들) 내부에서 “시진핑을 바꾸자(換習)”는 반(反)시진핑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주룽지(朱镕基) 전 총리를 포함한 공산당 원로들은 시진핑의 장기 집권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제로 코로나’ 정책 장기화에 따른 수요 위축과 공급 충격, 31년 만에 가장 낮은 성장률 등으로 중국 경제가 3중(重) 위기를 맞는 것도 부담이다.

◇왕후닝의 한계점...역풍·반발 잇따라

대내외 급변 상황에서 왕후닝의 대응은 예전의 명민(明敏)함을 잃고 한계점을 보이고 있다. 2021년 2월 말 <대국전역>(大國戰疫·중국의 전염병에 맞선 싸움) 선전물 홍보 사건이 대표적이다.

코로나 19 발발 1주년을 맞아 2021년 2월말, 왕후닝이 주도해 중국공산당 선전부가 내놓은 홍보선전물 <대국전역>/홍콩 明報

왕후닝은 중국공산당 선전부를 통해 코로나 19 대응을 자찬하고, 시진핑의 ‘위민(爲民) 정tls’을 찬양하는 홍보선전물 <대국전역>을 내놓았으나 쏟아지는 악평(惡評) 때문에 일주일 만에 예약 판매를 취소했다.

신장(新疆)위구르 인권 탄압을 규탄하는 서방에 대해 왕후닝은 외국 제품 불매 운동과 보복 같은 민족주의적 조치로 맞불을 놓았으나, 이 역시 국제 사회에서 역풍을 낳았다. 중국 정치평론가 허젠(何堅)은 “‘정치 분장사(扮裝師)’인 왕후닝이 최고지도자를 미혹해 잘못된 판단과 의사결정으로 이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 하반기 왕후닝 경질될 가능성”

이런 맥락에서 ‘중국몽’을 내건 시진핑과 그의 핵심 책사인 왕후닝이 동반 몰락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올 하반기 열리는 중국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왕후닝의 생존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왕후닝의 전략 구상이 오판(誤判)으로 판명나는 사례가 잦아진 데다가, 올해 만 67세인 그가 ‘칠상팔하(七上八下)’를 적용받을 수 있어서다. ‘칠상팔하’는 공산당대회 당해연도 기준으로 67세 이하면 중앙정치국 상무위 진입이 가능하고, 68세 이상이면 불가(不可)하다는 암묵적인 정년 규정이다.

왕후닝을 대체할 후계자도 윤곽을 드러냈다. 당 중앙정책연구실의 장진취안(江金權·63)주임과 린샹리(林尚立·59) 부주임이 유력 후보이다. 장진취안은 후베이성 조직부 부처장, 중앙기율위원회 국유자산 감찰조장 등을 거쳐 2020년 10월 주임으로 승진했다. 왕후닝의 제자인 린샹리는 푸단대 국제정치학과 교수로 있다가 2017년 중앙정책연구실 비서장을 거쳐 2021년 부주임으로 승진했다.

주룽지(朱镕基) 전 총리(가운데)가 2017년 10월 19차 중국공산당 대회 개막식에서 시진핑 총서기의 연설을 듣고 있다. 주룽지는 시진핑의 무제한 장기 집권 연임에 반대 의견을 밝혔다고 월스트리저널이 2022년 3월15일자에서 보도했다./뉴시스

중국 분석가인 박승준 최종현학술원 고문은 “시진핑의 장기 집권 추진에 대한 원로들의 반감(反感)과 불만이 큰 데다 국제적 고립과 경제 상황까지 악화돼 시진핑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올 하반기 20차 당대회에서 왕후닝이 희생양으로 몰려 경질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중국을 저개발국에서 세계적 강대국 반열에 올려 놓은 그가 중국공산당 ‘수석 붓대(筆桿子)’ 자리에서 내려 온다면, 중공의 국가 전략과 통치 이념은 어떻게 달라질까? 그가 권좌에 건재한다면, 중국공산당과 시진핑의 앞날은 평탄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27년간 승승장구해온 왕후닝이 퇴진한다면, 엘리트 한 명 교체를 넘어 중국의 대국관(大局觀)이 바뀌는 시발점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