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기업 방해 요소 제거”… 현대차 겪은 3대 리스크에 답 있다
[김기훈의 사회과학 상상력]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3월 21일 경제 6단체장을 만나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강하게 갖고 있다”며 “기업이 더 자유롭게 판단하고 자유롭게 투자하고 성장할 수 있게 제도적 방해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인프라를 만들고 뒤에서 도와드리고, 기업이 앞장서서 일자리를 만들며 투자해 기업이 커가는 것이 나라가 커가는 것 아니겠느냐”며 “방해 요소가 어떤 것인지 많이들 느끼고 아실 테니 앞으로도 조언해 달라”고 당부했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 취임 후 한국경제 재건을 위해 기업인들의 ‘야성적 개척정신’을 되살려 한국경제에 활기를 불어 넣어야 하는 임무를 안고 있다. 그러러면 기업인들에게 잘못된 정책으로 부담을 주는 정책 리스크(위험)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또 기업인들이 경영 과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난관 가운데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것은 지원해야 한다. 기업인들은 어떤 난관과 위기를 만나고, 이 가운데 정부가 하지 말아야 할 일과 지원할 수 있는 것들은 각각 어떤 것일까? 한국의 대표 기업가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1990년대 이후 20여년간 현대차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겪은 3가지 위기를 측근들 증언을 통해 분석, 정책 리스크와 지원 방안을 살펴보자.
위기 ① 세금 폭탄
정 회장은 1996년 1월 아버지인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뒤를 이어 현대그룹 회장에 오르면서 한국 재계의 리더로 등장했다. 이후 그가 처음 만난 난관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1998년 기아차 인수에 따른 막대한 세금 문제였다. 정 회장은 당시 현대차의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기업이 일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사업 규모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하고 기초체력이 있어야 한다”며 부도난 기아차 인수에 나섰다. 그리고 그 해에 1조2000억원을 들여 기아차를 인수했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기아차가 금융회사의 부채 4조8700억원을 탕감 받아 이익을 본 점을 들어 공적자금 회수 차원에서 이 채무면제 이익에 법인세 1조5000억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인수금액 1조2000억원에 법인세 1조5000억원을 합하면 부채탕감액 4조8700억원의 절반 이상을 회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회장은 현대모비스 등 계열사 자금을 총동원해 겨우 인수자금을 마련한 상황에서 세금까지 내면 기아차 뿐 아니라 현대차 경영도 불가능해진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국내 최고의 조세 전문 변호사를 직접 만나 “회사 명운이 걸린 문제”라며 해결책을 간곡히 부탁했다. 세금 체납으로 공장이 압류되면 가동이 불가능했다. 당시 기아차 사장은 아침에 일어나면 간절한 마음으로 그 변호사 사무실을 향해 매일 절까지 했다고 회고한다.
변호사는 한국에 전례가 없던 과세 사례였기 때문에 미국과 일본의 법률을 분석해 회사정리법과 세법의 취지가 충돌할 경우 회사정리법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승소해 세금을 면제 받았다. 정 회장 측근은 “만약 세금 문제가 해결 안됐다면 오늘날의 현대차 그룹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위기 ② 북한 리스크
정 회장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글로벌 진출을 꿈꿨다. 왜곡된 국내 노조를 바로 잡기 위해서도 글로벌 진출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첫 도전은 2002년 4월 첫 삽을 뜬 미국 앨라배마 공장 건설이었다.
그런데 착공 직후에 미국 의회 조사국의 동아시아 전문가인 래리 닉시 박사가 현대차 관련 보고서를 준비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유엔 결의에 따라 북한에 현금 혹은 물자를 지원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현금과 물자를 지원해 주는 현대아산재단의 출자자인 현대차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미국의 대외 정책에 어긋난다는 내용이다. 보고서가 발표되면 의회의 제재 결의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 회장은 보고서 제출 정보를 입수한 뒤 즉각 회사 간부들을 시켜 미국의 상하 양원을 찾아다니며 현대차 입장을 설명했다. 닉시 박사와 상하원 의원 40~50명, 상무부와 미국무역대표부(USTR) 간부들을 찾아다니며 사정을 설명했다. 아산재단에 현대차의 예전 출자 지분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아산재단과 현대차는 계열 분리되어 있고 임원 파견이나 채무 보증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미국에 고용을 늘리기 위해 앨라배마 공장을 짓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 노력 끝에 의회 결의안은 통과되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는 “의회 결의안이 통과됐다면 정 회장의 첫 해외 진출이 좌절되면서 유럽·중국으로의 사업 확장과 중소 차부품업체들의 동반 진출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정부가 대북 정책을 수립할 때 수출 기업들의 글로벌 경영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위기 ③ : 원자재 대란
정 회장은 고급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장력 철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철광석과 석탄으로 새 철을 뽑아내는 고로제철소인 한보철강을 2004년 인수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었다. 한보철강 인수는 현대차의 재무 능력을 고려할 때 일대 도박이었다. 정 회장은 높은 가격을 써내 낙찰 받았다. 과감하게 도전해 성공한 것이다.
문제는 이후였다. 자동차용 고급 강판을 만들 공장과 연구소에 착공했으나, 완공 후 사용할 철광석과 석탄, 신기술도 미리 확보해야 했다. 그런데 중국이 전세계에서 철광석을 사들이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덕분에 호주의 철광석 광산을 가진 BHP빌리튼이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됐다.
정 회장은 자원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공급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실무자들이 BHP빌리튼에 가서 철광석 10년 장기 공급계약을 맺으려 했지만, 공급 시기, 가격, 물량을 특정할 수 없다는 호주측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정 회장은 가격은 시장 상황에 따라 그 쪽에서 부르는 대로 주라며 다소 황당한 계약을 승인해 원자재 공급망을 겨우 확보했다. 정 회장 측근은 “원자재 대란은 정부가 적극 나서도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라면서도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처럼 자원 외교에 관심을 가졌다면 사정이 나았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인터뷰]
“오너경영 기업은 주식 상속세 유예해야 고용 안정”
조세 전문 변호사인 최선집 풍요로운경제연구소(풍연) 소장은 지난 1999년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 문제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과 첫 인연을 맺었다. 그 후 10년이 넘게 정 회장의 법률 자문가로 일하며 나눈 대화를 최근 책 ‘Known Unknown: 알려졌지만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로 펴냈다. 최 소장은 정 회장의 부탁으로 유언장 초안을 집필하기도 했다.
최 소장은 오너 경영인들의 주식 상속세에 대해 매우 실용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그는 “2세들이 경영 승계를 꺼려하는 경우가 많은데다 상속세 부담도 커서 경영 승계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창업주가 주당 500원에 주식을 취득해 상속 당시에 시가가 1000원이 되면 1000원의 50%인 500원을 상속세로 내야 한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 30%가 할증되면 세금으로 650원을 납부해야 한다. 350원 밖에 남지 않은 주식이 다시 3세로 넘어가면 같은 논리로 122.5원이 된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주식을 팔 경우 지분이 크게 줄면서 경영권이 불안해진다.
최 소장은 “기업가가 경영을 위해 갖고 있지 않으면 안되는 주식은 상속세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대신 나중에 경영을 포기하고 양도할 때 양도소득세를 물리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예컨대 상속세 없이 주식을 넘겨 받아 경영을 하던 2세 오너경영인이 경영을 중단하고 주식을 팔면 1세의 취득가격과 현재의 가격을 비교해 그 차액만큼 양도소득세를 매기면 된다는 설명이다. 이럴 경우 상속세 납부를 위해 주식을 팔면서 기업이 매각되는 바람에 발생하는 임직원 해고 등 구조조정의 후유증도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최 소장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5개 회원국 중 경영권과 고용 안정 때문에 상속세를 없앤 나라가 13개국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고용 안정을 강조하려면 주식 상속세 유예 조건에 직원 수를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는 조건을 다는 방안도 있다고 덧붙였다. 최 소장은 “정부는 인간의 이기심이 실현되도록 자극하면 결국 공공선이 된다는 아담 스미스의 주장에 맞는 정책을 펴야 성공 확률이 높다”며 “새 정부는 자식과 손자를 위해 밤새도록 일하는 부모의 이기심을 고용확대와 사회발전의 동력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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