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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티븐스 前 美대사 “같은 가치를 바탕으로, 같이 갑시다”

스티븐스 前 美대사 “같은 가치를 바탕으로, 같이 갑시다”

[새 정부에 바란다] 캐슬린 스티븐스 前주한미대사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
입력 2022.03.18 03:00
 

1987년 주한 미국 대사관의 국내 정치 담당 정무팀장으로 처음 한국 대통령 선거를 지켜본 뒤 나는 항상 한국 선거에 관심이 많았다.

2021년 12월 9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캐슬린 스티븐스(Kathleen Stephens) 前 주한미국대사가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이번에도 워싱턴 현지 시각으로 9일 아침부터 오후까지 사무실에서 한국의 개표 방송을 시청했다. 결과가 나온 뒤 양측 후보가 모두 신속히 나와서 다음 절차를 밟은 데 감명받았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품위 있게 승복했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기품 있게 수락 연설을 했다. 윤 당선인이 상대 후보에 대해 존중을 표하고, 야당과 협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야당도 그에 응하길 바란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슬프게 느껴지는 것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거의 모든 대통령이 퇴임 후 비극을 맞았다는 점이다. 망명하거나, 암살, 극단적 선택, 투옥 같은 일을 겪었다. 물론 그때마다 각기 다른 긴장 상황이 있었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럼에도 그것이 한국 정치사의 가장 큰 비극처럼 느껴진다.

윤석열 당선인이 공약한 것처럼 앞으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기를 희망한다. 지나간 문제나 과거의 잘못을 정리하기보다 화해와 미래에 더 비중을 두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미국에도 그 나름의 정치적 문제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미국 대통령은 퇴임 후 품위를 지키며 살아간다. 많은 미국인이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는 전직 대통령도 그렇다. 한국도 윤석열 대통령 취임을 맞아 그런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란다.

한국 전문가들 분석처럼 이번 대선에서 지역주의나 이념의 역할은 줄었지만, 세대 갈등과 젠더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한국 현대사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사람으로서 이것이 한국 정치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다.

한국에 ‘페미니즘’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 젊은이들이 극도로 경쟁적인 사회에서 엄청난 분노와 좌절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이 점에 대해서 윤 당선인과 참모들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무엇이 진정한 문제인지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국 정치와 사회가 매우 양극화돼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정책 공간을 보면 모든 한국 대통령이 직면하는 지정학적 상황은 똑같기 때문에 공통 영역도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본 한국 대통령들은 대한민국을 수호할 책임 있는 사람으로서 한국의 생존을 지키기를 원했고, 동맹인 미국과 강력한 관계를 확보하려 했다. 또, 긴장 완화와 궁극적 통일을 위해 북한과 화해하거나 관계를 개선하기를 바랐다.

우선순위나 접근법은 다를지라도 모두가 이런 것을 원했다. 지금 한·미 동맹에 대한 한국 국민의 지지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중국에 대한 우려도 보편적이다. 그래서 나는 윤석열 정부가 큰 틀에서 초당파적 외교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외교 안보 정책이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초당파적 방향으로 진행되기를 바란다.

북한의 도전, 가중되는 중국 상대 경쟁 같은 것은 4~5년 내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윤 당선인이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외교 정책을 갖는 것이 한·미 동맹에도 도움이 된다.

한국이 호주나 일본만큼 중국을 견제하는 데 동참하지 않는다는 시각이 있다. 물론 한국은 호주나 일본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민주주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윤석열 정부가 (중국에 대해) 좀 더 자신감을 갖기를 바란다. 윤 당선인에게 ‘같은 가치를 바탕으로, 같이 갑시다’란 말을 하고 싶다.

지난해 12월 한국에 머물 때 윤 당선인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나는 윤 당선인에게 한국이 많은 자원봉사자를 해외에 보내고 있고, 개발 원조도 상당한 규모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외국을 돕는 한국의 역할을 지지했다. 열정과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공급망, 기술과 안보 협력 등에 한국이 참여하는 일이 중요하다. 세계 무대에서 새로운 국제 무역과 통상 질서 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한국의 위상은 충분히 높다는 사실을 윤 당선인이 기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