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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으면 '문고리'인가"…'尹인사' 예측하게 하는 3가지 원칙

"옆에 있으면 '문고리'인가"…'尹인사' 예측하게 하는 3가지 원칙

중앙일보

입력 2022.03.12 05:00

업데이트 2022.03.12 09:30

지난해 11월 중순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여의도 당사에서 측근인 A 의원과 회의를 하던 중 갑자기 ‘문고리 권력’ 얘기를 꺼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의원님을 문고리 권력이라고 하는 겁니까.”(윤석열)

“후보님 옆에 계속 있으니까요.”(A 의원)

“그런 이유라면 말이 안되죠.”(윤석열)

이어 윤 후보는 “문고리라는 건 능력은 없으면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사람을 말하는 건데, 저는 의원님을 능력 때문에 뽑았습니다. 그건 이미 입증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했다. A 의원은 최근 기자에게 이런 에피소드를 들려주면서 “당시 윤 후보가 정색하고 말하기에 내가 ‘그럼 문고리 말고 문짝 정도로 하시죠’라고 눙치곤 다른 얘기로 넘어갔다”고 전했다. 현재 A 의원은 새 정부 요직 중용설이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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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인사 스타일이나 인사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사례로 이 에피소드가 최근 다시 회자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정치 신인으로 국정 경험이 없다'는 지적을 받을 때마다 “나는 정치권에 빚이 없다. 오로지 능력 우선으로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겠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 지난해 7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내 인사의 기준은 실력”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 국정운영 밑그림을 짜게 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범을 앞두고 윤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을 짚어봤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통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①인연 중시= 윤 당선인 주변에선 "한 번 믿으면 끝까지 믿고 쓰는 스타일"이란 평가가 많다. 실제로 최근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대통령직 인수위 인선에서도 이런 경향이 드러난다. 장제원 의원이 대표적이다. 장 의원은 지난해 아들인 장용준(예명 노엘)씨의 ‘무면허운전 뒤 경찰관 폭행사건’이 불거지자 캠프 총괄상황실장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이준석 대표가 지폈던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논란도 작용했다. 하지만 이번 인사에서 그는 당선인 비서실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윤 당선인은 지난 4일 부산 선거유세 도중 장 의원을 “제가 정치에 첫 발을 디뎌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저를 가르쳐주고 이끌어줘서 당 대선 후보가 될 수 있도록 가장 큰 역할을 해 준 분”이라고 말하며 강한 신뢰를 드러냈다. 대선 막바지 야권 후보 단일화 국면때 사실상 전권을 부여받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측과의 협상에 나선 이도 장 의원이었다.

당 선거대책본부 공보단장을 지낸 김은혜 의원을 인수위 대변인으로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김 의원은 당초 인수위 대변인직을 한 차례 고사했으나, 윤 당선인의 거듭된 요청으로 수락했다”고 전했다. 한번 믿은 자를 끝까지 믿는 윤 당선인의 스타일이 엿보인다. 후보 비서실장이었던 서일준 의원도 인수위 행정실장에 재기용됐다. 윤 당선인이 서울중앙지검장이나 검찰총장 시절에도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후배 검사를 중용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도 있다.

이런 류의 인사 스타일은 양날의 칼과 같은 측면이 있다. 자칫 가까운 이들만 챙긴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국민의힘 일각에선 측근들의 2선 후퇴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익명을 원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어느 순간엔 윤 당선인의 인사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핵심 측근들이 '인수위와 새정부 내각에서 요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 마련된 당선인 사무실에서 크리스토퍼 델 코르소 주한 미국대사 대리를 접견하며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②상호 견제= 한 사람에게 전권을 주지 않는다는 것도 윤 당선인의 인사 특징이다. 그의 한 지인은 통화에서 “권력 통제의 핵심은 권력 분산과 상호 견제라는 게 윤 후보의 지론”이라며 “대선 때도 ‘한 명에게 권력이 집중될 때 부패가 싹 튼다’는 취지의 말을 자주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윤 당선인은 선거 중 “정치는 한 두 명이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거나 “내게 있어 비선이나 핵심 측근(일명 ‘윤핵관’)이라는 건 없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선대위의 전권을 원하는 김종인 당시 선대위원장과 마찰음이 일었던 게 대표적 사례다. 윤 당선인 측에선 “김종인 전 위원장에게 총괄선대위원장 자리를 주되 ‘김병준ㆍ김한길’과 상호 견제하는 기능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게 당시 윤 후보의 생각이었다”고 전했다. 윤 당선인이 현재 인수위 외에 별도로 당선인 직속 국민통합위원회를 따로 구성하는 것을 두고도 “후보 시절 선대위 외 새시대위원회를 둔 것처럼 상호 보완적 관계를 유도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지지자들에게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③최근엔 "국민 눈높이"강조=익명을 원한 윤 당선인 측 인사는 “윤 당선인이 인사의 기준과 관련해 최근엔 ‘공정과 상식, 국민 눈높이에 맞게 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며 “인사 관련 조언을 특히 많이 해달라고 당부하더라”고 전했다. 윤 당선인은 대선 다음날인 지난 10일 당선인 일성으로 협치와 통합을 전면에 내세웠는데, 이런 기조가 새 정부 인선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국민의힘 주변에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합의한 공동정부 운영, 여소야대 상황에서의 여야 협력의 필요성 등 때문에 “새 정부 인사에서 대규모 탕평 인사가 단행될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윤 당선인은 대선 유세과정에서 “민주당에서 합리적으로 국정을 이끌었던 양식 있는 정치인들과 협치하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