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소비 줄어도 오르는 원윳값, 산정구조 개선 나섰지만… [농어촌이 미래다-그린라이프]
입력 : 2022-02-25 06:00:00 수정 : 2022-02-24 23:51:14
쿼터제만큼 생산비 연동제로 가격 정해
우유 소비 줄고 치즈·버터 수요 늘며 ‘균열’
유업계 “비싼 원유로 유제품 생산할 처지”
수입산 의존 늘어… 자급률 50% 아래로
정부, 원유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 추진
낙농가 “비용증가 따른 대책부터” 충돌
“지속가능한 낙농 위해선 타협안 찾아야”
국내 낙농산업이 위기에 처했다. 음용유 소비가 줄면서 국내 원유(原乳) 생산량이 적어지고 값은 오르면서 수입 의존도가 50% 이상으로 높아졌다. 정부는 이대로는 한국 낙농업이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유값 산정 방식을 바꾸고, 특화된 가공용 원유 생산 등을 추진해 가격과 품질 면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해법이라고 주문한다. 그렇지만 정부와 유업체, 낙농가의 의견 충돌로 타협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수요 줄어도 값은 오르는 ‘생산비 연동제’
현재 낙농산업은 쿼터제, 생산비 연동제, 정부의 차액 보전으로 유지되고 있다.
생산자들이 정해진 쿼터에 따라 생산한 원유는 낙농진흥회, 서울우유 등 22개 집유 주체를 통해 모여 유가공업체에 공급된다. 원유 생산자들은 쿼터 범위 내에서는 정상가격으로 납품할 수 있도록 보장받는다.
원유가격은 낙농진흥회에서 구입하는 가격에 따라 각 유가공 회사에서도 대부분 동일하게 책정되는데, 낙농진흥회는 생산비 연동제로 가격을 결정한다. 생산비 연동제는 원유가격을 생산비 증감에 연동해 조정하는 방식이다. 우유가 부족하던 시절 우유 생산을 늘리고 낙농가와 유업체 간 매년 실시하는 원유가격 협상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2013년 도입됐다.
문제는 우유 및 유제품 소비 구조가 변하면서 생겼다. 연간 국민 1인이 마시는 우유 소비량은 2001년 36.5㎏에서 2020년 31.8㎏으로 줄었다. 반면 치즈·버터·아이스크림 등 유제품 소비는 같은 기간 63.9㎏에서 83.9㎏으로 늘었다.
원유 쿼터제는 음용유 가격에만 적용되는데, 현재 운용되고 있는 쿼터량은 연간 222만t, 국내 음용유 소비량은 175만t(2020년)이다. 유업체가 쿼터 전량을 음용유 가격으로 구입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차액을 정부가 지원해 왔지만 2020년엔 336억원을 보전했음에도 유업체에서 205t밖에 구매하지 못했다. 나머지는 가공용으로 리터당 100원에 팔렸다.
늘어나는 가공 유제품 수요는 외국산이 채우고 있다. 가공 유제품 수입량은 2020년 243만4000t으로 2001년(65만3000t)에 비해 272.7% 늘었다. 이에 국내 우유 및 유제품 자급률은 같은 기간 77.3%에서 48.1%로 떨어져 현재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내산 원유로 가공 유제품을 제조하려 해도 비싼 음용유 가격으로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유업체들이 값싼 외국산을 찾을 수밖에 없다. 2020년 기준 국산 원유가격은 2020년 리터당 1083원 수준으로 미국 491원, 유럽 470원에 비해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더욱이 2026년부터 미국·유럽산 치즈와 음용유의 관세 철폐를 시작으로 시장개방이 확대될 예정이어서 저가 유제품 수입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 “제도 개선 시급”… 농가 “피해 대책부터”
국내 낙농산업의 지속적인 발전과 소비자, 국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우유값 결정 체계를 포함한 전반적인 낙농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와 낙농진흥회는 2020년 낙농진흥회 소위원회를 1년간 운영하며 유제품 생산원가 및 수급 상황 반영, 생산비와 기본가격 격차 해소 등을 논의했으나 견해차가 커 진전을 보지 못했다.
정부는 원유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하자는 입장이지만, 현재 일정한 생산량과 판매가격을 보장받고 있는 낙농가들은 손해 발생을 우려해 제도 개선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에 최근 정부는 생산자 수입 감소를 방지하기 위해 용도별 차등가격제 적용 물량을 단계적으로 조정하는 수정안을 내놨다. 도입 첫해 음용유 190만t, 가공유 20만t에 적용하고, 음용유는 현재 가격 수준인 리터당 1100원, 가공유는 농가로부터 리터당 800원에 구매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유업체에는 리터당 600원 수준에 공급하기로 했다.
음용유 생산량은 190만t으로 유지되면서 가공유는 현행 리터당 100원에 5만t 생산에서 리터당 800원에 20만t 생산으로 늘어 농가 판매 수입이 1500억원 이상 증가한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생산자단체는 여전히 반발하고 있다. 한국낙농육우협회는 지난 16일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국회 앞에서 무기한 농성 투쟁에 돌입했다. 협회 관계자는 “외국처럼 국경보호조치와 가공유 생산 지원을 통한 자국 낙농산업 보호 조치가 있어야만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할 수 있다”면서 “아울러 사료가격 폭등, 우유 유통 마진에 대한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낙농산업 경쟁력 약화를 막고 국가적 손실을 줄이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며 “당사자인 낙농가와 유업체의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앞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을 진행하고 지속해서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대부분 낙농 선진국도 용도별 차등가격제 채택
세계적인 시장 개방 추세에 따라 각국은 자국 낙농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
24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대부분 낙농선진국들이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채택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지역별 지정생산자단체와 유업체 간 교섭을 통해 용도별 가격을 결정한다. 가격 결정 시에는 일본 낙농유업협회가 합리적인 가격 산정을 위해 생산비와 재생산비, 소비 현황 등을 고려해 만든 공식을 활용한다.
미국 연방지역은 원유 용도를 4가지로 분류해 가격을 결정한다. 원유는 △음용유용 △액상크림·요구르트·빨리 상하는 유가공품용 △크림치츠·경질치즈용 △버터·건조유제품용으로 나뉘며, 농무부 산하 국립농업통계기관에서 가격정보를 취합해 기본가격을 계산하면 농무부가 최종 가격을 정한다. 캘리포니아는 주정부가 가격을 결정해 발표한다.
캐나다는 용도를 더욱 세분화해 클래스 1∼5와 7로 나눈다. 캐나다 낙농위원회가 매년 각 등급의 기본가격을 발표하고, 여기에 지역별(9개 권역) 집유·우유판매 조직인 MMB(Milk Marketing Board)에서 원유 성분 가격을 적용한 최종 가격을 결정한다.
영국은 낙농가와 유가공업체의 직접 계약으로 가격이 결정된다. 그 결과 낙농가의 원유 수취 가격은 유가공업체와 어떤 계약을 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기준가격은 원유 생산비를 근거로 낙농가와 유업체 간 계약에 의해 결정되며 원유 사용 용도에 따라 달라진다. 뉴질랜드는 우유가격위원회가 국제 원유시장 조사 결과와 국내 환경변화를 고려해 결정한다.
한국도 정부와 유업체·생산자단체 간 용도별 가격차등제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협의가 원만히 진행될 경우 도입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나아가 용도별 젖소 품종을 다양하게 도입하면 한국 낙농산업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기르는 젖소는 99%가량 홀스타인종이다. 네덜란드 북부 원산지로 650㎏ 정도로 체구가 크고 흑백 얼룩무늬를 갖고 있다. 한 마리당 하루 원유 생산량이 30㎏에 달할 정도로 많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길러지는 젖소다.
최근엔 ‘친환경 젖소’로 불리는 저지 품종도 관심을 끈다. 저지는 체구가 300∼350㎏ 정도로 사료 섭취량 및 분뇨 배출량이 적다. 저지는 홀스타인보다 원유 생산량이 적지만, 우유 속 지방구가 크고 빛깔이 노란색을 띠어 버터 제조에 적합하다. 제주시는 홀스타인을 저지종으로 교체하는 5개년 장기계획을 수립했다고 지난해 말 밝히기도 했다.
윤성식 연세대 생명과학기술학부 교수는 “한국 낙농산업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비자 수요에 맞는 가공유용 생산을 늘리는 동시에 합리적인 가격을 갖춰야 한다”면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물론 낙농가와 유업체의 자구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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