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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왜 민주당 먼저 환영식 하나"…정치공간 돼버린 박근혜 사저 [e즐펀한 토크]

"왜 민주당 먼저 환영식 하나"…정치공간 돼버린 박근혜 사저 [e즐펀한 토크]

중앙일보

입력 2022.02.26 05:00

업데이트 2022.02.26 08:52

 

24일 오후 대구 달성군 유가읍 쌍계리 한 저택. 최근 사면 복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퇴원 후 머무르게 될 ‘박근혜 사저’ 앞에 행인들이 지나고 있었다. 저택은 언론 보도를 통해 이곳이 사저가 될 것으로 알려진 뒤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관광명소처럼 변했다.

이때 건물 앞 공터에 현수막과 피켓, 음향장치를 손에 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산하에 있는 대구경북미래발전위원회 관계자들이었다. 이들은 공터에 자리를 잡고 푸른색 글씨가 적힌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2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퇴원 후 머무를 것으로 알려진 대구 달성군 유가읍 한 저택 앞 공터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산하 대구경북미래발전위원회와 박근혜서포터즈 회원들이 박 전 대통령 환영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현수막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님의 쾌유를 기원드리며, 대구에 오심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국민의힘이 아닌 민주당 대선 후보 측이 썼다고 하기엔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더구나 이날 환영식에는 민주당 선대위 산하 단체뿐 아니라 ‘박근혜 서포터즈’ 회원들도 함께였다.

이를 지켜보던 박 전 대통령 지지자 일부가 행사 주최 측을 향해 항의를 했다. “민주당이 여기에 와서 박 전 대통령 환영식을 여는 게 말이 되냐”는 입장이다. 아직까지 저택 앞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소속돼 있던 국민의힘 측은 환영식을 열지 않은 상황이어서다.

박창달 위원장은 “오랜 옥고 끝에 대구로 돌아오시는 박 전 대통령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면서 “오늘날 달성군의 발전은 박 전 대통령의 노력과 열정 덕분이기에 우리 모두는 그 감사함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2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퇴원 후 머무를 것으로 알려진 대구 달성군 유가읍 한 저택 전경. 김정석 기자

여야 가릴 것 없이 발길…‘정치공간’ 된 빈집
민주당 대선 후보 선대위 측이 상대 정당 출신 전직 대통령의 낙향을 환영한 것은 이 저택이 일종의 상징적인 장소로 떠올라서다. 지역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저택에 입주하게 되면 향후 이곳이 경남 김해 봉하마을처럼 정치공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지난 19일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선 후보도 이곳에서 유세를 했다. 우리공화당은 박 전 대통령이 탄핵 후 수감된 이후 ‘박 전 대통령 탄핵 무효화와 명예 회복’을 정당의 책무로 내세울 만큼 ‘친박(親朴)’ 행보를 이어왔다.

조 후보는 이 자리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저격하기도 했다. 그는 “이제 박 전 대통령이 뇌물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모든 국민께서 안다”면서 “문재인 정권의 정치보복 칼잡이 노릇을 한 윤 후보는 지금이라도 죄 없는 박 전 대통령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선 후보가 19일 오전 대구 달성군 유가읍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아 당원 및 지지자들과 주변을 돌아보고 있다. 뉴스1

매입 절차 마무리…막바지 입주 준비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유영하 변호사는 지난 17일 사저 예정지를 방문해 매입 잔금을 치렀다. 지역 정치권 등에 따르면 이날 박 전 대통령 측은 이미 지급한 계약금 2억5000만 원 외에 나머지 금액을 지불해 매입을 완료했다.

주택은 1676㎡ 부지에 지상 2층, 지하 1층 연면적 712㎡ 규모다. 8개의 방을 갖춘 건물 앞으로는 넓은 정원도 마련돼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주거용 건물과 3개 동의 부속 건축물이 딸렸다. 매입 가격은 25억 원가량이라고 한다.

2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퇴원 후 머무를 것으로 알려진 대구 달성군 유가읍 한 저택 전경. 김정석 기자

저택 인근에는 지지단체의 환영 현수막이 무더기로 게시됐다가 회수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통행을 방해할 정도로 많은 환영 현수막이 달렸던 이곳은 24일 오후에는 대부분 철거된 상태였다. 대신 건물 앞 언덕에 세로 7m, 가로 10m 크기의 대형 태극기가 설치된 것이 눈에 띄었다.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주말이면 지지자 1000여 명이 사저 예정지를 찾고 있다. 직장인 이지윤(37·여)씨는 “박 전 대통령이 과거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때 지역에 큰 도움이 됐는데 이번에도 대구에 활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주택을 매각한 전 주인에 대한 궁금증도 일었다. 기존 주택 소유주는 대구 한 중견기업의 대표 A씨다. 한때 일각에서는 그가 박 전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라는 의혹을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측은 “주택을 판 사람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며 “우연한 기회로 사들였다”고 선을 그었다.

오래 살지 않았어도 든든한 ‘정치적 기반’

대구시민들이 유독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큰 것은 비단 대구가 그의 고향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난 박 전 대통령은 유년시절을 대구에서 보낸 것은 아니지만 98년 보궐선거에서 대구 달성 지역구 국회의원이 된 후 내리 4선을 하면서 대구와의 인연을 쌓았다.

박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사무실로 쓰던 곳은 여전히 후임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사용하는 곳이다. 박 전 대통령이 구입해 살았던 화원대백아파트도 사무실 지근거리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9월 7일 오후 대구시 서구 서문시장을 방문해 신발을 구입하고 있다. 중앙포토

대구 최대 전통시장인 서문시장도 박 전 대통령에겐 빼놓을 수 없는 장소다. 2012년 대선 당시 야권 안철수 후보가 급부상하면서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리자, 그해 9월 28일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해 엄청난 환대를 받고 기운을 차리기도 했다. 또 탄핵 직전인 2016년 12월 마지막 외부 일정으로 찾은 곳도 서문시장 화재 현장이었다.

입주 후엔 靑 대통령 경호처가 경호

청와대 대통령 경호처는 최근 김문오 달성군수를 만나 향후 경호 관련 업무를 협의했다. 박주영 청와대 대통령경호처 경호지원단장은 “경호는 사면과 함께 시작됐다. 언제 퇴원할지 모르지만 퇴원하는 대로 곧바로 경호처에서 사저로 모시게 된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박 전 대통령은 탄핵 후 4년 9개월간 수감돼 있었기 때문에 다음 달 3월까지만 경호처가 경호하는 것으로 돼 있다. 다만 박 전 대통령 측의 경호 연장 요청이 있으면 계속해서 경호처가 경호를 맡게 된다.

2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퇴원 후 머무를 것으로 알려진 대구 달성군 유가읍 한 저택 뒤 담벼락 보수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김정석 기자

달성군은 현재 사저 주변 한국토지주택공사 부지에 승용차 100대, 대형버스 10대 주차 규모의 임시주차장과 간이화장실(2곳) 공사를 벌이고 있다. 방문객 안전을 고려해 사저 담장 옆 가드레일 철거와 주변 도로 폐쇄회로TV(CCTV) 점검도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담장에 설치됐던 철창살을 가림막으로 교체하는 공사가 이뤄졌다.

박 전 대통령의 실제 입주는 아직 시일이 정해지지 않았다. 지난 19일 박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한 조원진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이 회복이 좀 더뎌서 대선이 끝나고 퇴원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유영하 변호사 역시 퇴원 시기에 대해선 뚜렷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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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