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 섬&산 100]] 50년 전 우리 모습이 남아 있다, 교동도
입력 2022.01.28 09:58
1970년대 풍경 간직한 섬, 나들길 9~10코스 걷기 여행
이미지 크게보기1970년대 시골 같은 쓸쓸한 풍경의 교동도를 걷는다. 여행자에게 일상에서 벗어났음을 알려 주는 기분 좋은 공허가 곳곳에 깃들어 있다.
‘저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 싶었다. 북한 마을을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검은 옷을 입고 걷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보였다. 항상 뉴스로만 보았던 북한을 망향전망대 망원경으로 보았다. 생각보다 가까웠고, 우리나라 1970년대 풍경 같았다. 북한이 가까운 섬 교동도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군 검문소를 두 번 거쳤을 뿐인데 공기가 바뀌었다. 더 정확히는 소음이 줄었다. 추수가 끝난 농경지는 황량했고, 육중한 침묵이 지그시 공기를 누르고 있었다. 간간이 흙먼지를 날리며 지나는 차량만 시간의 흐름을 일깨워 주었다. 2014년 교동대교가 생기기 전까지 섬 특유의 고립성이 있었고, 민간인 통제구역이었기에 1970~1980년대로 온 것 같은 묘한 느낌이다.
강화군 일대의 운치 있는 코스를 엮은 걷기길, 나들길 9코스 ‘다을새길’로 향한다. 다을새는 교동도의 삼국시대 이전 지명인 ‘달을신達乙新(하늘에 닿을새)’의 소리음이며, 신라가 강화도를 차지한 후 교동도라 불리게 되었다. 1,000년 넘는 세월 동안 ‘오동나무가 우뚝한’ 교동도喬桐島라 불렸으니 뿌리 깊은 섬인 것.
이미지 크게보기월선포에서 화개사로 이어진 겨울 숲을 걷는다. 평범한 숲이지만 깊은 정적이 푹신한 소파처럼 도시인의 피로를 풀어준다.
민통선 바다를 건너왔다고 하여 산과 바다가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했으나 그건 편견이었다. 월선포엔 태풍의 눈 같은 바다가 있었다. 헤라클라스의 풀무질 같은 거대한 힘의 물결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바다가 아닌 폭우가 내린 다음날의 강줄기 같았다. 바다 건너엔 석모도 상주산이 솟구쳐 있었으나 살아 꿈틀거리고 있는 힘의 물살이 시선까지 빨아 당기고 있었다.
햇살이 흐르는 수면에 찬란히 빛나는 것이, 거대한 은갈치가 휘감아 흐르는 듯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바다가 월선포에 있었다. 교동대교가 생기기 전엔 육지와 섬을 잇는 유일한 통로였으나 지금은 빛바랜 ‘선착장 대합실’ 간판만 분주했던 옛 시절을 추억한다.
이미지 크게보기나들길 9코스는 교동도의 대표적인 명소와 최고봉인 화개산을 잇는다.
인하대산악부 유한흠(25), 블랙야크 익스트림팀 김민선(27)씨와 함께 나들길 나들이를 시작한다. 중국 쓰촨성 출신의 중국인 유학생인 유씨는 북한산 인수봉만 30여 회 넘게 선등으로 오른 친한파 대학산악부원이다. 모처럼 낯선 곳에 여행 왔다며 즐거워한다.
시골길 따라 평범한 배경 속으로 든다. 이따금 지나는 주민들은 나들길 여행자는 익숙하다는 듯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해발 260m의 화개산은 교동도에선 압도적인 높이라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띈다. 나들길 표지기는 서서히 화개산 가까이로 이끈다.
이미지 크게보기BAC 인증지점인 화개산 정상에서 점프샷을 찍은 유한흠(오른쪽)씨와 김민선씨. 화개산은 북한 땅이 보이는 교동도 최고봉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인 교동향교
흙길과 포장길이 번갈아 이어진다. 앙상한 가지와 버려진 건물이 눈에 띄는 평범한 풍경 속에서 물씬 쓸쓸함이 묻어난다. 도시에서 온 여행자에게 시골 걷기길이 가진 특유의 황폐한 분위기는 희귀한 것에 가깝다. 빌딩숲과 규칙적인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을 쓸쓸한 풍경 속에서 만끽한다.
빈 터만 남은 쉼터, 안양사지다. <동국여지승람>에 이름이 올랐을 정도로 이름 있는 절이었으나 축대만 남았다. 지금은 아름드리 벚나무가 주인인양 거대한 품을 자랑하며 서있다. 안내판이 없었다면 전혀 몰랐을 숲 속이다. 사람의 시간이 자연의 흐름에 묻히는 건 금방이다.
이미지 크게보기교동도에는 나들길 9코스(16km)와 10코스(17km)가 있다. 낮은 산과 논두렁, 저수지를 이은 걷기길이다.
리기다소나무와 해송, 노간주가 겨울에도 초록을 유지한 숲을 빠져나오자 만석꾼네 기와집 같은 교동향교다. 고려 인종5년(1127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다. 고려 충렬왕 12년(1286년)에 유학자 안향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공자와 그의 제자 10인의 초상을 가져와 전국 최초로 모셨다고 하여 향교 중의 으뜸인 ‘수묘首廟’라 칭한다. 공자를 모시고 있어 예의를 지키라는 의미로 대성전으로 들어서는 문은 머리가 닿을 만큼 낮다. 건물은 1980년대에 복원된 것이다.
짧은 오르막 포장길을 올라서자 화개사다. 고찰답게 정돈된 잔디밭과 승천하는 용을 닮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기품 있다. 원래 나들길은 여기서 화개산 정상으로 이어지지만, ‘공사 중’이란 팻말과 함께 우회로로 표지기가 이끈다.
간벌이 필요해 보이는 빽빽한 굴참나무 숲을 지나자 갈림길에서 능선으로 방향을 꺾는다. 정상으로 이어짐을 가파른 경사에서 대번에 알 수 있다. 숨이 가빠오다 정점에서 고요가 찾아오는 사점死點을 넘을 사이도 없이 오르막이 끝난다. 정상부에 펼쳐진 거대한 공사판, ‘화개산 전망대’를 짓고 있는데 보통 산에서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아니라 크레인까지 동원되어 건물을 짓고 있다. 사면 아래는 임도와 각종 시설물 공사를 하느라 모두 파헤쳐져 있다. 친환경적인 방법도 있을 텐데 산 절반을 깎아내 관광을 위한 토목공사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이미지 크게보기해류가 거센 강물처럼 휘감아 도는 월선포 앞 바다.
왕실의 유배지로 사랑 받다?
공사판을 지나자 다시 이어진 산길에 ‘청동기 암각화’가 있다. 안내판이 없었다면 모르고 지날 법하지만 자세히 보니 바위에 구멍과 선을 그은 것이 드러난다. 대략 3,000년 전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순 없으나, 바위에 새길 정도라면 간절한 바람이 있지 않았을까? 상대적으로 암각화는 초라한 대접이다.
짧은 오르막을 올라서자, 스트레스가 풀리는 정상이다. 헬기장처럼 너른 터에 산불감시초소와 정상 표지목, 망원경이 있다. 북한과 인접해 불빛이 적은 덕분에 별 조망 야영 터로도 인기 있다. 오후로 갈수록 미세먼지가 자욱해 북녘 땅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미지 크게보기월선포선착장. 월선포는 다리가 생기기 전 강화도와 교동도를 잇는 중요한 통로였다.
화개산성과 약수터를 지나 하산길로 이어진다. 나들길은 공사 중인 산기슭을 지나 마을로 인도한다. 연산군 유배지는 공사로 인해 임시 폐쇄되었다. 조선시대의 교동도는 한양과 가까우면서도 물살이 빨라 탈출이 어려운, 왕족들의 유배지로 각광 받던 곳이었다. 연산군이 이곳에 유배되어 사망했고, 광해군, 임해군, 영창대군, 능창대군, 숭선군, 익평군, 영선군, 화완옹주 등이 유배되었다.
마을길은 곧장 교동도의 번화가인 대룡시장으로 이어진다. 이곳 시장은 6·25 때 강 건너 황해도에서 교동도로 피란 온 실향민들이 휴전 후 돌아 갈 수 없게 되자, 고향을 추억하는 마음으로 황해도 연백군에 있다는 연안시장을 본떠서 만들었다. 지금은 실향민 2세들과 외지에서 온 이들이 시장을 지키고 있다.
시장 골목에 들어서자 복고 분위기가 물씬하다. 교동이발관은 부친이 하던 이발소를 아들이 이어받아 이발소 인테리어 그대로 분식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남산포 지나 월선포로 이어진 해안 둑방길. 갈대와 바다가 무심히, 그러나 광대하게 펼쳐지는 여운 깊은 길이다.
오래된 신발가게, 작고한 시계 수리 장인을 모형으로 그대로 되살린 시계방, 달걀 노른자 동동 띄운 쌍화차가 있는 다방, 강화 향토음식인 젓국갈비 전문 식당, 황해도식 냉면과 고기국밥집, 수십 년 역사의 꽈배기집 등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옛 정취가 남은 교동도 최고의 관광지다.
16km의 나들길 9코스를 전부 걸으려면 하루가 짧다. 다시 찾을 것을 일행과 약속하며 시장을 지나 육중한 침묵의 시골길로 든다. 해가 저물어 갈수록 논 곳곳에서 짚 태우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서울에서 1시간 거리지만 일상의 간극은 여느 시골보다 크다.
이미지 크게보기나들길 절반은 포장된 찻길이지만 시골다움이 물씬 풍겨나 도시인에겐 휴식이 되기도 한다.
운치 있는 저수지 사이를 지나 고풍스런 교동읍성을 지나 다시 해안길이다. 월선포로 돌아가는 갈대가 물결치는 해안 둑방길, 분홍으로 물든 하늘이 여행자의 마음을 황홀경으로 몰아넣는다.
몸은 녹초가 되었는데 마음은 간질간질 만족감이 차오른다. 수평선까지 닿을 것 같은 이토록 긴 길에 노을과 나만 남았다. 종일 걸어 몸과 마음이 완전히 이완된 여행자에게만 털어놓는 교동의 깊은 속내. 월선포로 돌아가는 깜깜한 길이 두렵지 않다.
이미지 크게보기나들길 10코스 죽산포에서 겨울 바다를 음미한다.
이미지 크게보기죽산포선착장을 걷는 유한흠(왼쪽)·김민선씨. 교동도 남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조용한 포구다.
교동도 가이드
교동도에는 강화나들길 9코스와 10코스가 있다. 9코스 ‘다을새길’은 월선포에서 시작해 교동향교~화개사~화개산 정상~대룡시장~남산포~교동읍성~ 동진포~월선포선착장으로 원점회귀하는 16km 코스다. 길 곳곳에 이정표와 표지기가 있어 한눈만 팔지 않으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화개산의 나들길 코스는 원래 화개사에서 정상으로 이어진 길이었으나, 공사로 우회로로 연결된다. 정상 부근 역시 대규모 공사가 진행 중이므로 통과 시 주의해야 한다. 월선포선착장부터 화개산 정상~대룡시장까지는 그늘 좋은 숲길이 대부분이고 대룡시장~남산포선착장까지는 논 사이의 포장도로가 대부분이다. 교동읍성을 지나 낮은 언덕을 지나면 월선포선착장까지는 해안가 길을 걷는다. 하이라이트 코스만 걷는다면, 교동향교에서 대룡시장까지 걷는 4km가 알맞다. 다만 월선포, 망향전망대는 교동도를 찾았다면 들를 만한 명소다. 나들길 9코스는 총 16km이며 6시간 정도 걸린다. 10코스는 교동도 남서쪽을 잇는 시골길 17km 걷기이며, 9코스에 비해 볼거리가 적고 지루하다.
교통
대중교통은 일단 강화도 버스터미널까지 온 후 교동18번(강화버스터미널↔월선포) 버스를 타야 한다. 주말에는 1시간 10분 간격(06:10~20:30)으로 운행한다. 강화터미널을 출발해 대룡시장을 거쳐 월선포까지 운행한다. 자가용 이용 시 교동대교 앞 검문소에서 간단한 출입신청서를 작성하고 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출입증은 나갈 때 반납한다.
BAC 인증지점
화개산 정상 표지목 좌표 N37 46.768, E126 17.757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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