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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껌딱지' 강산이 숨진 뒤…엄마 건곤이는 방사장 문만 쳐다봤다

껌딱지' 강산이 숨진 뒤…엄마 건곤이는 방사장 문만 쳐다봤다

중앙일보

입력 2022.01.30 10:00

업데이트 2022.01.30 11:11

8일 숨진 아기 호랑이 강산. 에버랜드

지난 9일 오후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홈페이지에 ‘부고’가 올라왔다. 지난해 11월 숨을 거둔 세계 최다산 기린 ‘장순이(1986년~2021년)’에 이은 두 번째 부고다.

숨진 동물은 태어난 지 196일 된 아기 호랑이 ‘강산(암컷)’이었다. 에버랜드 동물원 타이거밸리에 사는 한국호랑이 태호(6·수컷)와 건곤(6·암컷) 사이에서 태어난 5남매 중 막내다. 전 세계 100여마리 밖에 남지 않은 귀한 한국 호랑이가 공교롭게도 ‘호랑이해’ 벽두에 사망하면서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숨지기 직전까지 뛰어놀았던 강산이

고(故) 강산을 포함한 아기 호랑이들은 탄생과 함께 스타가 됐다. 호랑이는 통상 한 번에 2~3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건곤이가 지난해 6월 27일 5마리를 낳자 큰 화제가 됐다. 오둥이 호랑이는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였기 때문이다. 에버랜드는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 공모를 통해 아기 호랑이들에게 ‘아름(암컷)’, ‘다운(수컷)’, ‘우리(암컷)’, ‘나라(수컷)’, ‘강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강산이는 가장 덩치가 작았다. 유난히 어미를 따라다녀 '엄마 껌딱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장난기가 많아 언니, 오빠 호랑이에게 먼저 다가가 장난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고 한다. 동물원 방문객들 사이에선 '막내 호랑이'로 불리며 사랑을 받았다.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타이거밸리에서 엄마 호랑이 건곤이와 아기호랑이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그러던 지난 8일 오후 5시. 강산이는 여느 때처럼 방사장을 뛰어다니다 언니·오빠들과 저녁을 먹기 위해 실내사육공간인 내실로 들어갔다. 사육사들이 아기 호랑이들을 위해 준비한 손바닥 반 정도 크기로 자른 쇠고기들이 펼쳐져 있었다.

장난꾸러기 호랑이들은 얌전하게 먹이를 먹지 않았다. 고기 한 덩어리를 놓고 싸우고, 여기저기 끌고 다녔다. 밥을 먹다가도 옆에 있는 호랑이를 툭툭 건드리고 고기를 뺏어 물고 도망갔다.

강산이는 먹을 땐 먹고, 놀땐 노는 성격이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언니·오빠들이 고기를 물고 달아나자 기다렸다는 듯 함께 뛰어다녔다. 이후 걸음걸이가 느려졌고 4분 뒤 쓰러졌다. 이를 발견한 사육사가 곧장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숨을 거뒀다. 사인은 급성 기도폐쇄로 인한 호흡곤란. 먹던 고기가 기도를 막았다.

인공 포육했으면 살았을까

강산이가 숨진 뒤 동물원엔 “어떻게 고기가 목에 걸릴 수 있느냐”는 문의가 이어졌다. 아기 호랑이들은 12월 초까지만 해도 다진 고기를 먹었다. 하지만 체중이 30㎏을 넘기면서 덩어리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호랑이는 치아 발달을 위한 저작(음식을 입에 넣고 씹음) 활동 등을 위해 생후 6~7개월부터 덩어리 고기를 먹는다고 한다. 야생의 호랑이도 이 시기에 덩어리 고기를 먹는다.

에버랜드 동물원 타이거밸리 인근에 마련된 강산이 추모 공간. 관람객들이 쓴 추모 편지가 놓여있다. 에버랜드

더욱이 오둥이는 자연 포육으로 길러졌다. 사육사들은 호랑이 가족을 항상 지켜보고 관리하지만, 개입하진 않는다. 고양잇과인 호랑이는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선 새끼를 기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건곤이는 모성애가 강해 새끼들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김수원 사육사는 “자연 포육한 오둥이는 야생성이 강해 밀착 관리가 어렵다”며 “만약 강산이를 인공 포육했다면 건곤이 등과 분리 작업을 하지 않아도 돼 대응 시간이 단축됐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야생에선 1년 이내에 호랑이 새끼의 70~80%가 굶주리거나 질병, 사고로 죽는다”며 “야생보다 동물원이 더 안전하긴 하지만 사람도 종종 음식물이 목에 걸려 죽는 것처럼 모든 사고를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엄마와 언니·오빠는 방사장만 바라봐

강산이가 숨진 이후 엄마 건곤이와 남은 아기 호랑이들은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건곤이는 방사장으로 나오거나 내실로 들어갈 때마다 “한 마리가 없다”는 듯 문 앞을 계속 서성였다. 아기 호랑이들도 방사장과 내실을 왔다 갔다 하며 강산이를 찾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바위 등에 걸터앉아서 방사장을 쳐다보는 모습도 포착됐다. 아기 호랑이들의 장난도 평소보다 줄었다.

호랑이들이 제 모습을 찾기까진 일주일이 걸렸다. 임순남 한국호랑이보호협회장은 “야생에선 아무리 많이 낳아도 새끼 호랑이 1~2마리만 살아남는다. 야생에선 생존법을 어미가 강한 놈만 키우기 때문에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임 회장은 “다른 호랑이들의 심리 상태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지난 8일 숨진 아기 호랑이 강산이 추모 공간. 관람객들이 쓴 추모 쪽지가 붙어있다. 에버랜드

강산이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건 사육사들이었다. 김 사육사는 “오랜 기간 일했지만 돌보던 동물이 하늘로 떠났을 땐 너무 마음이 아프다”라며 “강산이의 죽음은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그런지 충격이 더 컸다”고 말했다. 사육사들은 남은 호랑이들을 돌보며 겨우 마음을 추스리고 있다고 한다.

사육사들이 쓴 편지엔 “강산아 사랑해”

강산이의 사망 후 에버랜드는 타이거밸리 근처에 작은 추모 공간을 마련했다. 관람객들이 붙인 추모 쪽지만 수백 장에 이른다. 강산이를 돌보던 사육사들도 추모 편지를 썼다.

용인 에버랜드에 마련된 아기 호랑이 강산이 추모 공간에 사육사들이 쓴 편지가 놓여있다. 에버랜드

“(아기 호랑이들) 모두 소중하지만 젤 먼저 찾게 되는 게 막내 강산이었어. 앞으로 너를 볼 수 없지만,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널 기억하고 너와의 추억을 간직할 거야.”(김수원 사육사)

 “강산이를 만나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어. 언젠가는 또 만나게 되길 바라며 하늘나라에서도 잘 지내고 행복하게 지내야 돼.”(이지연 사육사) 

 “이젠 커가는 너의 모습을 볼 순 없지만 작은 몸으로 뛰어가며 장난치던 모습, 간식 시간에 다가와 인사하던 너의 눈빛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이원영 사육사) 

최모란 기자 choi.moran@joongang.co.kr,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