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연봉·유연근무도 싫다"…'노동거부' 선언하는 MZ세대들
입력 2022.01.13 17:28 수정 2022.01.13 19:10 지면 A4
'일' 대신 '게으름' 택하는 노동 거부의 시대
팬데믹發 인력난, 노동 패러다임을 바꾸다
美 '안티워크' 회원 급증…기업 불매 운동까지 주도
작년 美 퇴사자 453만명 '최대'…英도 40만명 달해
팬데믹發 인력난, 노동 패러다임을 바꾸다
美 '안티워크' 회원 급증…기업 불매 운동까지 주도
작년 美 퇴사자 453만명 '최대'…英도 40만명 달해
지난해 초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의 월스트리트베츠가 미국 주식시장을 쥐락펴락했다. 이곳 이용자들은 기관투자가에 맞서 공매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게임스톱, AMC 등 밈 주식(투자 유행 주식) 가격은 급등락했고 ‘개미들의 저항’은 주식뿐 아니라 암호화폐 투자 열풍으로 이어졌다.
올해는 안티워크가 월스트리트베츠를 잇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환영받는 사람은 사표를 던진 노동자다. 유통업체 아마존과 미 최대 식료품체인 크로거 등을 겨냥한 불매운동도 이끌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극심한 인력난이 노동시장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3일 기준 레딧의 안티워크에서 활동하는 노동자는 160만 명에 달한다. 퇴사를 원하거나 노동 없는 휴식을 바라는 이들은 스스로를 ‘게으름뱅이’라고 부른다. 열심히 일해 직업적 성취를 누리는 대신 게으름뱅이가 되겠다는 것이다.
13일 기준 레딧의 안티워크에서 활동하는 노동자는 160만 명에 달한다. 퇴사를 원하거나 노동 없는 휴식을 바라는 이들은 스스로를 ‘게으름뱅이’라고 부른다. 열심히 일해 직업적 성취를 누리는 대신 게으름뱅이가 되겠다는 것이다.
2020년 10월 18만 명에 불과하던 안티워크 회원이 급증한 계기는 코로나19다. 작년 11월 기준 직장에 자발적으로 사표를 낸 미국인은 452만7000명에 이른다. 미 정부가 퇴직자 집계를 시작한 2000년 12월 이후 가장 많았다. 팬데믹 후 직장 복귀를 거부하는 사람이 늘면서 안티워크 회원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들의 ‘안티워크(반노동)’는 사표 제출에만 그치지 않는다. 작년과 올해 아마존, 켈로그, 크로거를 향한 불매운동을 진두지휘했다. 노동자의 ‘쉴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아마존 노동조합 설립을 위한 노동자들의 시위는 쇼핑 대목인 블랙프라이데이 거부 운동으로 번졌다.
노동 거부 움직임은 중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젊은이들 사이에서 탕핑(平·똑바로 드러눕기) 운동이 유행처럼 번졌다. 영국에서도 작년 3분기 40만 명에 육박하는 근로자가 사표를 냈다.
부모보다 가난한 젊은 세대…"일해도 성공 못한다" 인식 팽배
가족·건강 등 다른 가치관 찾아…장시간 근로·열악한 환경 못참아
1919년 스페인 독감이 잦아들자 미국 시애틀에선 대규모 노동 운동이 전개됐다.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자 노동자들은 긴 근로시간과 열악한 급여 조건을 개선해달라며 시위를 벌였다. 노동자 파업에 조선소가 문을 닫았고 소방관들은 줄퇴사했다.가족·건강 등 다른 가치관 찾아…장시간 근로·열악한 환경 못참아
시애틀의 노동 거부 운동이 100년이 지난 지금 미 전역에서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노동자들이 일터 복귀를 거부하면서다. 이들의 안식처는 미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의 ‘안티워크’다. 주축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다. 이들은 미국 근대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 세대보다 많은 부를 축적하지 못한 세대로 꼽힌다. 일해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허탈감, 팬데믹 후 바뀐 가치관, 노동가치 상승 등의 영향으로 ‘노동 거부’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돈’ 대신 ‘휴식’ 원하는 MZ세대
이들은 열악한 근로 환경을 참고 견디던 이전 세대와 달리 불합리한 직장 문화에 일침을 가하고 서슴없이 사표를 던진다. 소비 여력이 줄어도 개의치 않는다. 일부는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룸메이트를 구하고 식료품이 떨어지면 쓰레기통도 뒤진다. ‘돈’ 보다 ‘휴식’이 더 가치있다고 믿어서다.다양한 요인이 원인으로 꼽힌다. 우선 젊은 세대의 무력감을 들 수 있다. 포브스는 미국의 MZ세대를 근대 역사상 자신의 부모보다 재정적 풍족함을 느끼지 못한 첫 세대라고 했다. 치솟는 학자금 탓에 사회에 진출할 때부터 높은 대출의 덫에 갇힌다. 학자금 대출에서 겨우 벗어나도 집을 사고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게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집값이 가파르게 오른 데다 물가가 급등하면서 과거 베이비붐 세대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베이비붐 세대가 40대 초반이던 1989년 이들의 평균 자산은 11만3000달러였다. 하지만 2019년 밀레니얼 세대의 순자산은 9만1000달러로 20% 가까이 줄었다. 주택 구입에 드는 비용은 21만6000달러에서 32만8000달러로 급증했다. 학자금과 기숙사 비용 등 1년간 대학을 다니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1만300달러에서 2만4600달러로 두 배 넘게 늘었다. 젊은 세대는 가질 수 없는 부를 향해 달려가는 것 대신 반대 목소리를 내는 쪽을 택했다. 벤저민 허니컷 아이오와대 교수는 “기업에 묶여 기업의 이익에 기여하기보다 대안을 찾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수요-공급 미스매치도 영향
팬데믹은 MZ세대에 회사 문턱을 벗어날 계기를 마련해줬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직장 대신 가족과 함께하는 휴식시간이 늘면서 가정이나 건강 등 다른 가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 팬데믹은 그동안 당연했던 사회활동과 인간관계를 위험한 것으로 바꿨다. 사람과 만나는 활동 자체가 건강을 위협하는 행동이 되면서다. 모든 것이 위태롭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지나 모든 것이 위험한 2020년 팬데믹을 거치면서 노동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었다는 것이다.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가 젊은 세대의 노동 거부 움직임을 부채질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언제든 퇴사해도 다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 탓에 쉽게 직장을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전환기를 맞은 미국 등에선 새로운 일자리도 늘고 있다. 비대면 배달 사업이 확대되면서 급증한 ‘긱 노동자(단기 계약직)’도 그중 하나다. 아마존 등 온라인 유통업체는 넘치는 물류량을 소화하기 위해 직원을 상시 채용하고 있다. 팬데믹 경제에서 완전히 회복해 수요와 공급 간 미스매치가 완화되면 장기적으로 인력 부족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낙관적 전망도 상존하는 이유다.
○팬데믹 후 높아졌던 노동 가치
팬데믹이 끝난 뒤 노동 가치는 어김없이 상승했다. 일할 사람이 귀해져서다. 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으로 인구 3분의 1이 줄었다. 이후 농민과 상인의 지위는 급등했다. 세상의 중심이 신에서 사람으로 바뀐 르네상스가 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스페인 독감 이후엔 여성들의 노동 시장 진출이 본격화됐다. 1차 세계대전까지 겹치며 많은 남성이 목숨을 잃어서다.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미국 유럽 등에서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자 기업들은 임금을 올렸다. 8만~9만달러였던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 신입 직원 평균 연봉은 10만달러를 넘어섰다. 아마존 등은 직원들의 대학등록금을 지원하는 등 재교육 기회를 줬다. 일부 기업은 직원들이 집에서 운동을 하는 등 자기개발에 몰두할 수 있도록 실내운동 기기인 펠로톤까지 지급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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