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SK 사령탑 된 ‘서울대 이공계 82학번’들...“‘말’ 아닌 ‘실력’으로 세계 1등 만들었다”
[송의달의 재계 프리즘]
1982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과 자연과학대학에 입학한 ‘서울대 82 이공계생’들이 한국 경제 현장의 최고 사령탑이 됐다.
졸업 정원제가 처음 도입된 ‘서울대 81학번’의 경우 초유의 입학 정원 미달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전국 단위 학력고사로 선발된 ‘서울대 82학번’은 6000명 넘는 모집 정원을 모두 채웠다. 그래서 이들에 대해 “질(質)과 양(量) 측면에서 앞뒤 학번들과 남다르다”는 지적이 많다.
◇삼성 5대 ‘電子 계열사’ CEO 중 3명
서울대 82학번들은 전두환 정권 시절 잦은 시위에도 불구하고 한 차례의 휴교 조치 없이 4년간의 학사 일정을 마쳤다. 이는 시위와 휴교령(令) 등이 반복되던 1970년대 이후 대학가에서 드문 일이었다.
이 가운데 ‘서울대 이공계 82학번’들은 최근 단행된 2021년말 인사에서 최고위직으로 발돋움했다. 세계 1위 IT기업인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수장(首長)과 LG그룹 2인자인 최고운영책임자(COO) 자리 등을 꿰찬 것이다.
특히 삼성그룹내 ‘5대 전자(電子) 계열사’(삼성전자·디스플레이·전기·SDI·SDS)의 핵심 CEO 가운데 3명이 서울대 공대 82학번 출신이다. 5대 전자계열사의 매출액 합계는 삼성그룹 전체 매출액의 89%(연결재무제표 기준)를 차지한다. 그만큼 CEO 자리는 막중(莫重)하다.
‘서울대 이공계 82학번’들은 최근 인사에서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업종 CEO가 됐다. 해당 기업과 대한민국의 국부(國富)를 넘어 나라의 운명과 직결되는 분야를 책임진 것이다.
◇삼성전자 ‘투톱’ 중 한명...서울대 공대 82학번
이달 7일 삼성전자의 ‘생명줄’인 반도체 부문(Digital Solution, 약칭 DS) 총사령관에 임명된 경계현(58) 사장이 이에 해당한다. DS 부문은 삼성전자 회사 총매출액과 이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메모리반도체와 파운드리(시스템반도체)를 포괄한다. 직전 김기남(63) 부문장의 직함은 부회장이었다.
경 신임 사장은 한종희(59) 세트부문(가전과 휴대폰 부문)장과 전문 경영인으로서 ‘투 톱’ 체제를 이룬다. 재계의 한 고위 임원은 “삼성의 전자(電子) 관련 계열사 사장이 삼성전자 핵심 사장으로 이동한 사례는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이는 경 사장이 탁월한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놀라운 경영 성과...‘경계현 매직’
강원도 춘천 생으로 강원고를 졸업한 그는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거쳐 1988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94년 같은 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20년부터 삼성전기 대표이사를 맡은 뒤 눈부신 경영 성과로 ‘경계현 매직(magic)’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작년 1월 경 사장의 취임후 삼성전기는 지난해 매출 8조2087억원, 영업이익 829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4%, 11.9% 성장했다. 올해는 3분기까지 매출 7조5361억원, 영업이익 1조1286억원을 올려 이미 지난해 영업이익을 넘어서며 창사후 사상 최대 실적을 확정했다.
경 사장의 ‘필살기(必殺技)’는 두 개이다. 첫 번째는 ‘기술 리더십’이다. 그는 세계 최초 다이렉트 램버스 D램 개발(1997년), 세계 최초 3차원 V낸드 개발(2013년), 세계 최초 UFS(Universal Flash Storage) 3.0 및 128단 낸드 탑재 SSD출시(2019년) 등을 주도했다. 그 성과로 2014년 ‘자랑스런 삼성인상(賞)’을 받았고 2016년엔 ‘한국을 빛내는 70인의 서울공대 박사’에 선정됐다.
◇兩大 강점...‘기술 리더십’과 ‘소통·공감력’
두 번째는 ‘소통과 공감력’이다. 그는 작년 2월말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스튜디오에 출연해 실시간(實時間) 생중계로 직원과 대화하는 ‘썰톡(Thursday talk)’을 열었다. 방송 채팅창에 직원들이 질문하면 경 사장이 직접 답하는 방식이다. 자신의 패션 스타일부터 성과급 배분, 사무실로 음식 테이크아웃 같은 주제까지 제약 없이 소통했다.
추첨을 통해 건강용품과 휴가비 등을 지원하는 ‘럭키볼 이벤트’, 점심시간을 활용해 직원들의 사연과 노래를 틀어주는 음악방송 등도 했다. ‘나도 일하고 싶고 누구나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최고의 성장기업’이라는 회사 비전(vision)도 심층 인터뷰 등을 거쳐 직원들과 ‘함께’ 만들었다.
삼성 관계자는 “경 사장의 수평적 조직 문화 구축과 직원 중심 소통 경영이 그룹 전체에 화제가 됐다”고 말했다. 그의 앞에는 큰 과제가 여럿 기다리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 수성(守成)을 넘어 대만 TSMC와의 파운드리(비메모리반도체) 전쟁에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인공지능(AI) 등 반도체 분야 신성장 동력 육성과 미래 기술 확보도 미룰 수 없다.
◇반도체 세계 1위 ‘일등공신’...장덕현 사장
경 사장의 뒤를 이어 삼성전기 사장에 임명된 장덕현(57) 사장도 서울대 공대 82학번으로 전자공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플로리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성전자에만 30년여 근무하고 있는 장 사장은 삼성의 한 세대에 이르는 반도체 세계 1위 독주를 가능케 한 일등공신 중 한명이다. 1964년생인 그는 이달 현재 기준 삼성그룹 전자(電子)계열사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최연소에 해당한다.
그는 2010년 세계 최초 20나노미터(nm)급 낸드플래시 상용화를 주도해 세간에 이름을 알렸다. 메모리사업부 솔루션개발실장, 시스템LSI사업부 LSI개발실장, 시스템온칩(SOC)개발실장, 센서사업팀장 등을 맡아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 등 다양한 제품 분야에 정통하고 해박하다.
◇美 마이크론 등 근무...최주선 사장
작년 1월부터 삼성디스플레이 CEO를 맡고 있는 최주선(58) 사장은 장덕현 사장과 서울대 전자공학과 82학번 동기(同期)이다. 그는 카이스트(KAIST)에서 전자공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와 미국 마이크론에서 경력을 쌓은 뒤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메모리사업부에서 DDR D램 표준의 기반이 되는 SD램의 핵심 개발자중 한 명으로, 한국인 최초로 국제반도체 학술회의 ISSCC의 메모리분야 소위원회 의장으로 활동했다. 최 사장은 삼성의 차세대 먹거리인 QD디스플레이 사업화에 주력하고 있다.
◇LG그룹 권봉석 부회장도 서울대 공대 82학번
지난달 말 단행된 LG그룹 인사에서 지주사인 ㈜LG의 대표이사에 발탁된 권봉석(58) 부회장도 서울대 공대 산업공학과 82학번이다. 그룹 총수인 구광모 회장을 보좌하는 최측근인 그는 그룹 2인자이던 권영수 부회장의 후임이다.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과는 부산 대동고와 서울대 공대 모두 동기동창 사이다.
2007년부터 모니터사업부장으로서 LG전자의 LED모니터 세계 1위 등극에 크게 기여했다. 2014년 말부터 LG전자의 TV 사업 담당인 HE사업본부장을 맡아 올레드 TV를 시장에 안착시켰다. 2014년 ㈜LG 시너지팀장을 맡아 그룹내 기획통으로 분류되는 그는 당시 시너지팀 부장이던 구광모 현 LG그룹 회장과 같이 근무했다.
LG그룹 관계자는 “승부사 기질의 소유자인 권 부회장은 ‘선택과 집중’의 전략적 사고와 분석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후배들이 가장 일하고 싶어하는 상사로도 꼽힌다. 그는 LG전자 사장 시절까지 오전 6시30분 이전 출근, 오후 6시 칼퇴근을 했다.
권 부회장은 휘하 조직을 경영전략부문과 경영지원부문으로 나눴다. 미래 신규 사업 발굴과 투자, 혁신을 담당하는 경영전략 부문을 지렛대로 LG그룹의 기존 역량과 캐시카우(Cash Cow·수익창출원)를 강화하면서 디지털 시대 업그레이드에 힘쓴다는 방침이다.
◇SK그룹 배터리 부문 CEO...지동섭 사장
SK그룹에서 배터리 사업을 전담하는 신설법인 ‘SK온’ 대표이사에 올해 10월 1일 선임된 지동섭(58) 사장은 서울대 물리학과 82학번이다. 서울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1990년 유공에 입사해 SK텔레콤 미래경영실장, 전략기획부문장 등을 거쳐 2016년 SK루브리컨츠 사장에 임명됐다. 2019년 말부터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 대표를 맡고 있다.
지 사장은 SK그룹 안에서 손꼽히는 ‘전략통’으로 SK텔레콤 전략기획부문장, SK㈜ 사업지원실장 등을 지냈다. 루브리컨츠 사장으로 3년 재임하면서 평균 영업이익률 13.5% 이르는 발군의 실적을 냈다. SK온이 올해 10월말까지 수주해 놓은 배터리 물량은 220조원에 달한다. 전기차 배터리는 한국 산업계가 중국과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다투는 미래 먹거리이자 핵심 성장 엔진이다.
우리나라에서 82학번은 베이비 붐 세대(1955~1963년생)의 막내이자 386운동권의 맏형 격이다. 이들 가운데 서울대 82학번 ‘문과생’들은 20여년 전부터 정치, 시민사회, 노동, 사상 같은 분야에서 이름을 떨쳐[양명·揚名]왔다.
◇한국 기업 ‘세계 일류’로 만든 주인공들
이들과 달리 최근 인사에서 대기업 최고 수장(首長)이 된 ‘서울대 이공계 82학번’들의 공통 분모는 ‘실용’과 ‘실력’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정보화 시대 초기이던 1980년대 후반~90년대 초에 당시로선 인기 직장이 아니던 기업을 택했다. 석사 또는 박사학위를 받으며 전문성과 학습능력도 몸에 익혔다.
이들은 20~30년 넘게 글로벌 경제 전쟁터를 누비며 삼성전자와 LG, SK 등을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고도의 전문 지식과 글로벌 감각,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한국 대기업을 세계 일류로 견인한 실질적인 주인공이 이들인 것이다.
기업분석 연구소인 ‘CEO스코어’의 김경준 대표는 “말’ 보다는 ‘실력’으로 매진해온 서울대 82학번 이공계생 CEO들이 없었다면 지금 같은 한국 기업들의 도약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이들이 어려움을 뚫고 앞으로도 큰 역할과 사명을 성취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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