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아내가 몰래 집으로 데려온 내연남, 주거침입 아니라고?
입력 2021.12.01 13:00
[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46)
사람의 주거에 침입하는 범죄를 ‘주거침입죄’라고 합니다. 물론 각종 차단기나 현관 잠금장치가 겹겹이 설치된 다른 사람의 집을 무단으로 들어가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도 주거침입죄로 재판을 받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데요. 2020년만 하더라도 2000여명이 주거침입죄의 죄로 재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대법원은 상당히 오래전인 1984년 남편 부재중에 혼외 성관계를 가질 목적으로 아내의 승낙을 받아 남편 주거에 들어간 내연남에 주거침입죄를 인정한 적이 있습니다(대법원 1984. 6. 26. 선고 83도685 판결). 위 판례는 특히 배우자가 혼외 성관계의 불륜을 저질렀다는 심증만 있고 구체적인 간통의 물증까지는 확보하지 못한 경우 구제 수단으로 유용했는데요. 간통죄는 현장을 잡지 않고는 직접 증거를 찾기 어렵지만, 주거침입죄는 내연남이 남편 집을 출입한 사실만 확인되면 직접적인 간통 증거 없이도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2015년 2월 간통죄를 위헌으로 결정했습니다(헌법재판소 2015. 2. 16. 선고 2009헌바17 등 결정). 따라서 불륜을 저지른 배우자는 더 이상 간통죄로 처벌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83도685 대법원 판례가 여전히 유효한 상황에서는 배우자가 상간자를 집안으로 들였다면 여전히 주거침입으로는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거침입죄의 장기(3년 이하의 징역)는 간통죄의 장기(2년 이하의 징역)보다 중하였기에, 83도685 판결에 따른 주거침입죄는 간통죄 폐지 이후 불륜을 형사처벌로 복수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방법이었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내연남이 주거 내에 있는 아내로부터 현실적인 승낙을 받아 들어온 것이라면 통상적인 출입방법이지, 주거침입을 구성하는 ‘침입’은 아니라고 판결했다. [사진 pixnio]
그런데 대법원은 최근 37년 만에 치열한 논의 끝에 전원합의체 판결로 그러한 경우도 주거침입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바꿨습니다(대법원 2021. 9. 9. 선고 2020도12630 전원합의체 판결). 사실관계는 1984년의 대법원 판례와 동일했습니다. 아내의 내연남은 아내가 열어 준 현관 출입문을 통해 남편의 주거에 3회 출입했고, 이를 알게 된 남편은 내연남을 주거침입죄로 고소했는데요. 1심과 2심도 엇갈렸습니다. 1심은 내연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를, 2심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반면 3심인 대법원 다수견해는 내연남이 아내가 주거 내에 있는 상황에서 아내로부터 현실적인 승낙을 받아 들어온 것이라면 통상적인 출입방법이지, 주거침입을 구성하는 ‘침입’은 아니라고 판결했습니다. 물론 내연남의 출입은 부재중인 공동거주자인 남편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 명백하므로 주거침입죄가 되어야 한다는 유력한 반대의견도 있었습니다.
위 사건은 대법원에서 공개변론을 할 정도로 사회적 파장이 컸던 사건인데요. 대법원은 간통죄를 형사적으로 처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거침입죄가 간통죄로 대체되는 결과를 우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간통이 적법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간통한 경우 이혼의 원인이 되거나 민사상 불법행위가 성립되어 손해배상을 해주어야 합니다.
한편 대법원은 같은 날 주거침입에 대한 또 다른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했습니다(대법원 2021. 9. 9 선고 2020도6085 전원합의체 판결). 가정불화는 맞지만, 앞 사건과는 결이 다른데요. 아내와의 불화로 일시 별거 중인 남편이 부모와 함께 신혼집에 출입한 사건이었습니다. 신혼집에는 처제만 있었는데요. 처제가 신혼집 문을 열어주지 않자 남편과 시부모가 물리력으로 걸쇠를 부수고 집 안으로 들어간 겁니다. 당황한 처제는 그 즉시 112에 신고했고 경찰까지 출동했습니다.
대법원은 앞 사건과 동일한 논리에서 남편의 주거침입은 무죄로 확정했습니다. 아내는 공동주거권자인 남편의 출입을 용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남편과 함께 들어간 시부모였는데요. 1심과 2심은 시부모를 주거침입의 유죄로 보고 150만원, 200만 원의 벌금을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다수의견은 시부모의 주거침입 또한 무죄라고 판단했습니다. 시부모는 공동거주권자인 남편의 아파트 출입에 편승 가담한 것이기 때문에 남편의 출입행위에 수반된 것이라고 봤습니다. 이런 결과는 당연한데요. 아내가 초대한 내연남의 주거침입이 안 되는데, 남편과 함께 집에 들어간 시부모의 주거침입이 인정될 리는 없을 겁니다.
이러한 대법원 판례에 대해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대법원 입장에선 간통이 위헌으로 결정된 상황에서 주거침입에 대한 입장정리와 필요한 후속 조치였을 것이다. [사진 pixabay]
위 두 사건은 모두 공동주거권자인 아내의 초대를 받거나 공동주거권자인 남편과 함께 주거에 출입한 경우입니다. 주의할 부분은 이처럼 공동주거권자가 관여한 것이 아니라면 설령 가족 관계에 있다 해도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최근 대법원 판결로도 확인되었는데요(대법원 2021. 10. 28. 선고 2021도9242 판결).
남편이 남편과 다툰 후 집을 나간 아내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 장인 집에 휘발유로 추정되는 물건을 소지한 채 출입한 사안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사위인 남편은 따로 사는 처가의 공동거주권자가 아님을 분명히 했습니다. 실제로 남편은 장인에게 협박 문자를 보내 실제로 처가 식구들이 사위를 피해 집을 비우기까지 했는데요. 남편이 처가에 들어간 것은 주거침입이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위 전원합의체 판결들로 주거침입죄로 처벌될 경우는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대부분의 주거침입이 위와 같은 가정분쟁 등에 근거한 경우일 텐데, 공동주거권자 한 명만 개입되면 처벌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대법원 판례에 대해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대법원 입장에서는 간통이 위헌으로 결정된 이상 주거침입에 대한 입장 필요한 후속 조치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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