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지원금 대상 70→80→88→90% 구멍가게도 이렇겐 안 한다
동아일보 입력 2021-09-11 00:00수정 2021-09-11 00:44
박완주 정책위의장이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1.8.5/뉴스1
국민의 88%에게 나눠주려던 5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놓고 대상에서 제외된 사람들의 이의신청이 폭주하자 더불어민주당이 지급 범위를 90%로 늘리기로 했다. 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경계선에 있는 분들이 억울하지 않게 지원금을 받도록 조치하는 것이 최대 과제”라며 이렇게 밝혔다. 대상이 2%포인트 늘면 예산은 3000억 원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1인당 25만 원씩 주는 이번 지원금은 “코로나에서 벗어날 상황이 되면 온 국민이 으쌰으쌰 힘을 내자는 차원에서 국민지원금 지급을 검토할 수 있다”는 2월 문재인 대통령 발언에서 시작됐다. 정부는 당초 소득하위 70%로 계획을 세웠지만 여당이 확대를 주장해 80%로 범위가 넓어졌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전 국민에게 지급하자는 졸속 합의와 번복을 거쳤고 맞벌이, 1인 가구는 더 주기로 하면서 결정된 게 88%다. 왜 70, 80, 88%여야 하는지 합리적 이유는 제시된 적이 없다.
이번 주부터 자신이 지급 대상인지 확인할 수 있게 되자 국민권익위원회 국민신문고에만 5만4000건의 이의신청이 접수됐다고 한다. 소득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대상을 정한 데 따른 불만이 많다. 가족 건강보험료를 합산하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이 많은 가구는 불리하다. 월급이 조금 높고 전셋집 사는 사람은 빠지는데 은퇴해 소득이 적은 부자 집주인은 지원금을 받는 일까지 벌어지자 여론 악화를 의식한 여당이 90%로 대상을 또 늘린 것이다.
혼란의 원죄는 작년 4·15총선을 앞두고 정치권과 청와대가 정치공학적 흥정을 통해 1차 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한 데서 비롯됐다.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로 현금을 뿌릴 계기가 마련되자 여당이 대상 확대를 요구하면서 소득하위 50%로 구상했던 기획재정부 기준이 무너졌고 선거를 앞둔 야당마저 100% 지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소득 최하위 20%, 또는 차상위 계층을 포함한 30% 정도로 대상을 제한하고 1인당 2, 3배를 지원했으면 소득보전 효과가 높아지고 나랏빚 부담도 줄었을 것이다. 표 계산에만 몰두한 정치권이 꼭 필요치 않은 계층에까지 돈을 나눠줘 ‘못 받으면 바보’란 정서를 만들었다. 구멍가게만도 못한 정치권의 주먹구구식 현금 뿌리기 정책이 우리 국민을 괜한 분란으로 몰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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