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고 털고 이젠 韓銀 발권력까지…기막힌 포퓰리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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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9.09 17:41 수정 2021.09.09 17:41 지면 A39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윤호중 원내대표가 그제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한국은행에 시중은행의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채권을 매입하라고 요구해 논란을 빚고 있다. 그는 한은에 ‘포용적인 양적 완화정책’으로 전환할 것도 촉구했다. 한은이 발권력을 활용해 돈을 살포하라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생명인 중앙은행까지 퍼주기에 동원하려는 것이냐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민주당은 구체 방안까지 제시했다. 한은이 직접 채권을 매입하거나,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의 자금조달을 돕기 위해 지난해 설립해 회사채를 매입해 온 채권매입전문기구(SPV)의 역할을 소상공인 지원으로까지 확대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SPV에서 매입하는 회사채는 자본시장에서 발행된 채권(債券·bond)으로, 은행이 보유한 자영업자 대출채권(債權·debt)과는 전혀 다른데 이를 구분 못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어떤 형식이든 여당의 요구는 재난지원금이 필요할 때마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에 의존하는 길을 터놓는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여당은 지난해부터 한은의 발권력을 이용해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내용의 법안을 수차례 발의해 온 마당이다. 자영업자 손실 보상을 위해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한은이 인수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중앙은행을 정부의 현금인출기쯤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한은의 대출채권 인수는 중앙은행의 고유한 통화정책 운용 권한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 예상되는 부작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치권 압력으로 발권력을 남발하면 통화정책 신뢰성을 훼손한다. 자영업자의 신용등급은 회사채 등급보다 낮다. 채권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손실은 돈을 찍어 메워야 한다. 시중금리와 물가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이는 서민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이다. ‘물가 안정’이라는 한은의 최우선 목적과도 맞지 않는다. 한은의 매입대상 채권을 ‘국채’ ‘정부 보증 유가증권’ 등으로 한정한 한은법(68조)에도 어긋난다. 법조차 무시하는 여당의 초법적 행태에 아연할 뿐이다. 한은이 여당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도 당연하다.
코로나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재정정책으로 대응하는 게 맞다. 퍼주기 정책 남발로 나라곳간을 털고 빚만 쌓아놓은 채 툭하면 중앙은행 발권력을 동원하겠다는 발상은 기막힌 포퓰리즘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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