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인문정원] 탁자 위와 밑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입력 : 2021-09-03 22:50:28 수정 : 2021-09-03 22:50:27
인간은 시간 속의 변화에 영향
마치 불멸의 존재인 듯 살아가
터키의 작가 아흐메트 알탄의 책을 읽었다. 그는 체제 전복을 모의한 혐의로 감옥에 갇혔던 체험을 바탕으로 ‘나는 다시는 세상을 보지 못할 것이다’란 책을 썼다. 그는 수감 생활 중에 숨 막히는 듯한 두려움을 느꼈다. “나는 죽어버린 생명의 시체 안에 갇혀 있었다. 나는 움직일 수 없었고, 그것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생체 시계가 멈추고 갑자기 두려움에 빠진 뒤 스스로 새로운 시계를 발명해야 할 필요를 깨닫는다. 그는 걷고 걸음을 세며 분과 초를 분별하고 시간을 쪼개고 가늠하면서 시간의 압박에서 벗어난다.
과연 시간이란 무엇일까? 시간은 물질도 물질의 입자도 아니다. 시간은 “구조들, 즉 복잡한 층들이 모인 것”(카를로 로벨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이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대신 시간에 포박된 물질과 우리들이 흐른다. 인간과 물질은 늙거나 낡아간다. 불꽃은 피어올랐다가 사그라들고, 식물은 자라다가 성장을 멈춘 뒤 말라간다. 만물의 조락, 쇠잔, 소멸은 시간 때문이 아니라 엔트로피가 일으키는 변화의 결과일 뿐이다.
장석주 시인
인간은 우주의 수많은 물리계 중 하나에 속해 살아간다. 시간은 공간과 더불어 이 물리계의 한 축이다. 시간은 우리 바깥에도 있고, 우리 안에서도 재깍거린다. 시간은 자연도 아니요, 실재도 아니다. 시간은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 혹은 시간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같이 자주 의인화되면서 쓰인다. 그런 습관 때문에 시간을 실재로 착각하지만 시간은 실재가 없는 추상일 뿐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내적 의식에서만 그 추상은 존재한다. 말을 바꾸면, 시간은 인간의 척도 안에서만 시간화한다.
우리가 아는 시간은 1초, 1분, 1시간, 1일, 1년이라는 흐름을 이루며 흘러간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고, 지나가며, 경과하는데, 그것은 과거에서 미래로 움직인다. 마찬가지로 시간은 미래에서 과거로 역행하지 못한다. 컵이 산산조각 깨어졌다면 그 조각들이 다시 컵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동일한 장소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멈춰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움직이고 있다면 움직이는 친구는 그렇지 않은 친구와 견줘 덜 늙고, 그의 시간은 더 느리게 흐른다. 움직이지 않을수록 시간은 빨리 흐르고, 많이 움직일수록 시간은 더 느리게 흐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곳에서 시간이 똑같은 속도로 흘러간다고 믿는다. 하지만 시간은 위치, 장소에 따라 흐름이 다르다. 시간은 산에서 더 빨리 흐르고, 평지에서 더 느리게 흐른다. 정밀한 시계로 그 차이를 측정할 수가 있다고 한다. 고층아파트에 사는 사람의 시간과 저층 아파트에 사는 사람의 시간은 차이가 있다. 탁자 위의 시간과 탁자 아래의 시간은 다르다. 높은 곳에서 사람이 더 빨리 늙고, 낮은 곳에서 사람은 더 천천히 늙는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지구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르기 때문이다.
지구의 시간은 달의 시간이나 목성의 시간과 다르다. 우리의 위치뿐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물질의 질량,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 시간의 흐름은 달라진다. 우리가 평지의 거실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을 때와 비행기를 타고 수 백 킬로미터의 상공을 나는 시간은 다르다.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탓에 우주 안에 똑같은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다른 현재들이 동시적으로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시간은 에너지의 파동과 방향, 물질을 이루는 분자 구조의 변화를 이끌고 나아간다. 시간은 양자장의 복잡한 진동과 힘들의 순간적인 상호 작용에 영향을 미치고, 이 변화는 다시 인간을 덮친다.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인간은 시간이 빚은 존재이다. 아울러 시간은 인간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기본값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시간에 대하여 모르는 게 많다. 시간이 복잡하고 다층적인 층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시간이란 협소한 경험에서 얻은 아주 작은 조각의 지식뿐이다. 우리가 시간을 알건 모르건 가족이나 벗들이 죽는 이 행성에서 마치 자신만은 불멸의 존재인 듯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장석주 시인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마음 다스르기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교 못다닐 것 같다” 노인에 담배 셔틀 시킨 고교생 뒤늦은 후회 (0) | 2021.09.06 |
---|---|
조약돌 (0) | 2021.09.05 |
친구가 있다는 것은 (0) | 2021.09.02 |
지혜로운 삶의 10가지 방법 (0) | 2021.08.27 |
지혜로운 삶의 10가지 방법 (0) | 2021.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