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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무대

"홍준표 지지는 대깨문 좌표"…여론조사가 낳은 요지경 촌극

최순실 게이트에서 대통령 탄핵까지

"홍준표 지지는 대깨문 좌표"…여론조사가 낳은 요지경 촌극

중앙일보

입력 2021.09.04 10:00

업데이트 2021.09.04 11:00

현일훈 기자

#1. “대깨문(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이 여론조사에 굉장히 개입하고 있어요. 좌표를 찍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일 KBS 라디오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그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돕고 있는데,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이 홍준표 의원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이에 대해 홍 의원은 “그런 것을 역선택(일부러 상대 당의 약한 후보를 지지함)이라고 하지 않고 확장성이라고 한다”(2일 페이스북)고 맞받았다.

#2. 최근 여론조사업체인 글로벌리서치는 대선 후보 여론조사 과정에서 “윤석열이 될 것 같죠?”라거나 “이재명?”처럼 유도 질문을 하는 식으로 조사결과를 왜곡하다 선거여론조사심의위에 적발됐다. 지지 정당이 없다는 응답자에게 “더불어민주당이요?”라고 물은 사례도 있었다. 선관위 관계자는 “과태료 3000만원을 부과했지만, 영업 중단 등의 제한은 없다”고 밝혔다.

이재명 경기자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 중앙포토

대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이 여론조사에 목을 매다 시피하면서 빚어지고 있는 요지경 사례다. 한 정치 원로는 “여론조사 결과가 하느님이 된 시대가 낳은 촌극”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지난 8월 한 달 동안 등록된 여론조사만 60건이다. 하루에 두 건 정도 공표된 셈이다. 90% 이상이 정치(대선 후보, 정당 지지율 등) 관련 여론조사였다. 문제는 조사의 정확성인데 여론조사마다 결과가 들쑥날쑥하게 나타난다.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비롯한 여야 주자들의 지지율 순위도 조사업체마다 제각각이다.

 

그러다 보니, 각 후보 캠프에서는 유리한 결과를 부각하며 아전인수식 해석을 늘어놓기 일쑤다. 관련해 홍 의원은 한국갤럽에 “조사결과가 유독 내게 불리하게 나타난다. 여론조사에 내 이름을 쓰지 말라”는 내용의 공문을 지난 7월 보낸 적도 있다.

최근 들어선 여론조사 100%로 대선 경선 1차 컷오프를 결정하는 국민의힘의 각 후보 진영이 특히 예민하게 반응한다. 국민의힘에서 역선택 방지조항(범여권 지지층은 여론조사에서 배제) 도입할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 것도 그 적용 여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바뀌기 때문이다. 차이는 있지만 조사대상을 국민의힘 지지층 및 무당층으로 좁힐 경우 ‘윤석열·최재형’ 후보에게 유리하고, 민주당 지지층까지 넓힐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홍준표·유승민’ 후보 지지율이 오르는 경향이 있다. 지금 양측으로 쪼개져 사생결단식으로 충돌하는 것도 밑바탕엔 이런 표계산이 깔려있다.

유승민,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가 지난 8월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 약속 비전 발표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런 풍경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도 오세훈·안철수 후보는 아름다운 단일화를 약속하며 100% 여론조사에 합의했지만, 당명·기호를 넣을지를 두고 옥신각신하더니, 결국 설문내용과 조사방식을 두고 충돌했다.

여론조사가 대선 경선에 도입된 건 2002년 11월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의 단일화부터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경쟁력 조사를, 정몽준 후보는 적합도 조사를 선호했다. 여론조사 두 곳 중 한 곳이 무효화 되는 우여곡절 끝에 승패(노 46.8%, 정 42.2%)가 가려졌다.

당내 경선 사상 가장 치열했다는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결과를 가른 결정적 요인도 여론조사였다. 당시 대의원·당원·일반 국민투표(비중 80%)에서 박근혜 후보가 이겼지만 나머지 20%짜리 여론조사에서 석패하면서 대선 후보자리를 이명박 후보에게 내줬다. 2012년 대선때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에서도 여론조사 문구로 양측이 맞섰다. 협상이 무산됐고, 그 직후 안 후보가 사퇴했다.

2002년 11월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 간 단일화 여론조사를 실시해 노무현 후보가 선출됐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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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표본의 대표성과 저조한 응답률에 따른 표심 왜곡 현상을 우려한다. 1000명을 조사할 때 연령별로 같은 수의 표본을 조사해야 하지만, 20대의 경우 50∼60대보다 응답률이 현저히 떨어져 대표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집 전화 여론조사는 젊은 층의 응답률이 떨어지는 반면 휴대전화 안심번호는 노년층의 답변이 저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2019년 한국통계학회는 동일한 설문(문재인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을 조사방식만 바꿔가며 실험 했는데, 기계(ARS, 부정 64.0%)가 물었을 때가 사람(전화면접, 부정 46.2%)이 물었을 때보다 부정평가가 17.8%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여론조사의 문제점은 이미 다 알지만 뚜렷한 대안도 없는 게 정치권의 현실이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여론조사가 때마다 ‘전가의 보도냐’는 문제 제기가 있지만, 대체재 역시 마땅치가 않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자체 선거인단 관리 등은 현실적으로 힘들다”며 “지금으로선 그나마 여론조사 결과라도 들이밀어야 겨우 승복하는 게 정치판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