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비싼 운임을 지불해도 배를 구하지 못해 난리였는데, HMM마저 파업하면 중소기업 수출은 완전히 발이 묶입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 파업만은 막아줘야 합니다."(부산 소재 수출기업 관계자) 23일 HMM의 해원노조(선원노조)가 창사 이래 첫 파업을 결정하면서 수출 업계에서는 '물류 대란'을 넘어 '물류 마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도 선복(선박의 화물 적재공간)이 부족해 부산항 신항의 컨테이너 장치율(야적장에 컨테이너 화물이 쌓여 있는 정도)이 90%를 웃돈다. 그러다 보니 선박 입항이 지연되고 하역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부산항 신항은 부두 운영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해외 선사들과 장기 운송 계약을 맺고 있는 대기업보다는 비정기 단기 운송 계약(스폿)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해원노조는 파업 결정과 함께 단체로 사직서를 제출한 뒤 스위스 해운 업체 MSC로 이직하기로 했다. 해원노조 관계자는 "MSC가 선박을 최소 300척에서 최대 500척까지 추가 도입할 예정"이라며 "조합원 453명이 모두 이직하는 데 물리적인 어려움은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해원노조는 사측이 전향적인 방안을 갖고 오면 다시 협상에 나설 수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이와 함께 컨테이너선 운항 일정 등을 관리하는 육상직원들도 파업 결정을 앞두고 있다. 해원노조보다 먼저 쟁의권을 확보한 육상노조는 이번 주중 조합원을 대상으로 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할 계획이다.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해원노조가 파업 결정을 내린 점을 감안하면, 육상노조도 파업에 찬성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HMM 전체 직원 수는 1644명이고 그중 육상직원이 1019명, 해상직원이 625명이다.
애초 사측은 임금 5.5% 인상과 월 급여 100%의 격려금 지급 등이 담긴 방안을 노조에 제안했다. 하지만 노조는 임금 25% 인상과 성과급 1200%를 요구하며 맞섰다.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자 두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이후 사측은 채권단을 설득해 임금 8% 인상과 격려금 300%, 연말 결산 후 장려금 200% 지급 등이 담긴 최종안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조가 강경하게 대응한 것은 지난 10년간 해운업이 불황을 겪으면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육상직원은 2012년 이후 8년간, 선원직원은 2013년부터 2019년까지 2016년을 제외하고 6년간 임금이 동결됐다.
국내 수출 기업들은 이날 파업 결정에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컨테이너선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져 운임이 추가로 오를 수 있다는 점은 물론이고, 고객사 납기를 제때 맞추지 못할 수 있다는 걱정이 크다.
실제 국내 수출입 컨테이너 물동량에서 HMM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전국 항만에서 처리된 컨테이너 물동량은 1051만TEU다. 이 기간 HMM의 컨테이너 수송량은 전체의 18.4%인 193만TEU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 이관섭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은 "물류 대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HMM 파업이 현실화하면 수출 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며 "이른 시일 내에 양측이 원만히 합의에 도달해 기업의 불확실성을 해소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파업 결정으로 HMM이 받는 타격도 상당할 전망이다. 연말 성수기를 앞두고 제대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화물 운송에 차질이 생겨 화주들에게 배상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사측은 "실제 파업에 이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끝까지 협상하겠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사측이 조만간 중노위에 중재를 신청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중재 기간에는 파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을 벌어 노조와 추가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는 수출 기업의 물류 애로 해결에 중점을 두고 중노위 중재를 거치지 않고서라도 노사가 대화로 풀어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 박동민 기자 / 송광섭 기자 / 박동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