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은 8평, 사병은 1평... 나라 위해 죽었는데 묘지도 차별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 대전현충원 ⑨] 묘역 부족하자 작년말에야 장군-사병 똑같이 1평
21.08.16 11:21l최종 업데이트 21.08.16 11:21l
▲ 최규하 전 대통령 묘지 전경 국가원수묘역에 안장된 최규하 전 대통령의 묘지 면적은 264㎡로 일반 묘지 3.3㎡의 80배에 달한다. | |
ⓒ 우희철 |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원수묘역에 안장된 최규하 전 대통령의 묘지면적은 80평(264㎡)이다. 지난해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고 백선엽 장군의 묘지면적은 26.4㎡(8평)이다. 지난 6월 대전현충원 소방관묘역에 안장된 김동식 구조대장(소방령)의 묘지면적은 1평(3.3㎡)이다. 김 구조대장은 쿠팡 이천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순직했다.
국립묘지 묘지면적이 대상별로 최대 80배 이상 차이가 나는 이유는 뭘까. 현행법(2005년 제정)에는 남은 묘지면적이 다 채워질 때까지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의 묘지 면적이 다르게 정해져 있다. 대통령의 직에 있었던 사람은 80평(264㎡) 이내로,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장군의 직에 있었던 사람 등은 8평(26.4㎡) 이내로, 그 외의 사람은 1평(3.3㎡)으로 대상자별로 다르다. 묘지 형태도 달라서 대통령과 장군 등은 봉분이 가능한 반면 일반 사병은 평분만 가능하다.
비석 크기, 비석 단가도 계급 따라 '차별'
대통령령에 따라 비석의 크기도 다르다. 국가원수 묘비는 148×475cm, 장군은 106×186cm, 일반 사병은 55×76cm다. 최규하 전 대통령 묘지의 경우 법으로 정한 비석(148×475cm) 외에도 공직 재임 시기 함께 했던 비서관 일동이 세운 큰 규모의 추모비가 함께 서 있다.
비석 단가도 다르다. 2019년 기준으로 병사는 56만7000원, 장군은 376만6000원, 대통령은 740만 원이다. 묘 1기당 잔디 관리비는 연간 기준으로 병사 묘역은 4880원, 장군 묘역은 4만 7000원, 대통령 묘역은 458만 원이다.
묘역 배치도 차별적이다. 대전현충원 묘역 배치도를 보면 묘지 정중앙 윗쪽에 국가원수묘역이 있고 오른쪽으로 장군 제1묘역과 장군 제2묘역이 있고, 사병 묘역은 가장 아래 자리잡고 있다. 특히 국가원수묘역은 별도로 유명 풍수지리학자가 현장을 답사한 뒤 선정했다고 전해진다. (묘역위치도 참조)
▲ 국립대전현충원 묘역위치도 | |
ⓒ 국립대전현충원 |
생전 신분에 따라 묘역 위치, 묘역 넓이, 비석 크기, 묘지 형태까지 다르게 한 이 규정은 "죽음에도 등급이 있냐"는 사회적 질문을 던졌다. 생전 직위에 따라 사후 예우를 차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후 예우 차별 없애자' 법률 개정안 매번 좌절
외국은 어떨까. 미국은 모든 국립묘지에서 대통령, 장군, 장교, 병사 등 모든 안장 대상자에게 사망한 순서대로 동일하게 1.3평의 묘지를 제공하고 있다. 비석도 4인치×13인치×42인치 크기의 대리석을 제공하여 준다. 신분에 따라 별도의 매장구역도 정하지 않고 묘지 사용 순서에 따라 장소가 지정될 뿐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 국립묘지'를 보면 모든 안장 대상자를 동일한 묘역에 안장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주한 미8군 초대 사령관인 워커 장군도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 34구역 일반 사병묘역에 안장돼 있다.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은 장군, 병사 구분 없이 묘지 면적이 1.5평이다.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죽음은 모두 고귀하므로 민주주의 정신에 입각한 평등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 나가자는 의미가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사후 예우 차별을 없애자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국가보훈처는 2017년 대전현충원의 기존 장교묘역이 꽉 차자 장교·사병 묘역을 구분하지 않고 통합 안장하기로 했다. 장교묘역과 사병묘역을 통합해 장병묘역으로 변경한 것. 대전현충원은 국립묘지를 조성한 이후 이때까지 장교묘역과 사병묘역을 안장자 신분에 따라 구분해 안장해 왔다. 또 순국선열·애국지사를 함께 안장해 오던 애국지사 묘역 명칭을 독립유공자묘역으로 변경했다.
지난 2018년 당시 김중로 바른미래당 의원은 국립묘지의 묘 면적을 대통령부터 사병까지 대상자 모두 1평으로 제한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자 2019년 하태경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이 같은 취지의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법 개정은 불발됐다.
와중에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11월 향후 장군, 장교, 병사 같은 계급 구분 없이 사망 순서에 따라 1기당 1평씩 배정한다고 밝혔다. 또 장군과 장병에 대해 비석 크기, 장례 방식 등에서도 예우 차이를 두지 않겠다고도 했다.
▲ 국립대전현충원 전경 국가보훈처는 계급 구분 없이 사망 순서에 따라 1기당 1평씩 배정하고 비석 크기 등에 대해 차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
ⓒ 우희철 |
하지만 이는 법 개정에 따른 것이 아닌 현실에 떠밀려 내린 조치다. 대전현충원의 한 관계자는 "대전현충원 장군묘역이 꽉 차서(850기 만장) 더는 장군 묘를 쓸 공간이 없다"며 "물리적으로 장군과 장병 묘역을 합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고 밝혔다. 예비역 장성은 많고, 묘를 쓸 공간은 부족해져 남은 묘지면적이 다 채워질 때까지 법률 규정이 자연스레 적용된 것이다.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등 묘지면적 기존과 동일
게다가 대통령 264㎡ 이내,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의 직에 있었던 사람 등은 묘지면적이 26.4㎡ 이내로 기존과 같다. 지난 4월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또다시 '사후 국립묘지 크기를 안장 대상자 모두에게 3.3㎡로 동일하게 하자'는 법률개정안을 낸 이유다.
대전현충원 묘역은 10만663기 안장 가능 면적 중 현재 95%인 9만5000여 기가 안장돼 있다. 남은 묘역을 보면 국가원수묘역 3기, 독립유공자묘역은 80여 기, 장병묘역 5000여 기가 남았다. 대전현충원은 이에 대비해 이달 초 납골식 봉안당(충혼당, 유골을 화장해 그릇에 담아 안치하는 곳)을 건립했다. 이곳에는 유골 4만9000기를 수용할 수 있다.
죽음 알리는 용어도 장군은 '서거' vs. 사병은 '사망'
죽음을 알리는 용어도 등급을 나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최규하, 백선엽 등의 묘비 뒷면에는 '서거'(逝去) 라는 단어가 사용됐다. 일반 사병의 묘비에는 단순한 죽음을 뜻하는 '사망'(死亡)이라는 단어가 사용됐다.
물론 적과 교전을 벌이거나 전투 중 숨진 '전사'(戰死)와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하다가 목숨을 잃은 '순직'(殉職)이라는 표현은 그 죽음의 사실 자체를 알려주는 용어이므로 문제가 없다 하겠다.
하지만 죽은 이를 기리는 애틋한 마음이 계급별로 다를 리 없다. 또 정치 지도자 등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사람에게만 사용한다는 '서거'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일률적으로 장군이면 '서거'이고 사병이면 '사망'이라는 계급에 따른 차별 표현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여론이다.
▲ 죽음의 종류도 여러 가지다. 누구는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고, 누구는 직무를 수행하다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장군이면 ‘서거’이고, 사병은 ‘사망’이라는 계급에 따른 차별표현은 바로 잡아야 한다. | |
ⓒ 심규상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미디어마당 사회적협동조합 누리집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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