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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평론

[박제균 칼럼]文·盧정권이 퍼뜨린 ‘나라 탓’ ‘나라 만능’ 바이러스

[박제균 칼럼]文·盧정권이 퍼뜨린 ‘나라 탓’ ‘나라 만능’ 바이러스

박제균 논설주간 입력 2021-08-09 03:00수정 2021-08-09 04:58

 

국민 불만 숙주로 번진 바이러스
코로나보다 더 질기고 달콤해
시민정신 좀먹고 국가 이성 마비
권력자엔 포퓰리즘 독재 길 터줘

박제균 논설주간

돈은 많지 않아도 먹고살 만큼은 벌었다. 가정도 그럭저럭 꾸려 큰 걱정은 없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불편하다. 내 인생은 왜 이거밖에 안 됐을까. 더 큰 사람이 될 수는 없었나.

어느 날 그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나라 탓이다.” “반칙과 특권이 지배해온 이 나라가 당신을 그렇게 만들었다.” 듣고 보니 귀가 확 열리는 말이다. 나보다 잘난 거 하나 없는 인간들이 잘 먹고 잘산다. 내가 이거밖에 안 된 건 다 이 나라 탓이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 인생에 크고 작은 불만이 있다. 필자도 그렇다. 그렇다고 남 탓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답도 없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란 분이 정상에서 외쳤다. ‘당신은 잘못 없다. 나라가 잘못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누구보다 큰 스피커를 가진 대통령의 외침은 사람들의 불만을 숙주 삼아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나라 탓’ 바이러스다.

노무현의 뒤를 이은 문재인과 운동권 좌파세력은 나라 탓 바이러스의 슈퍼전파자 노릇을 했다. 툭하면 나라 탓, ‘이명박근혜’ 탓을 우려먹었다. 세월호 나라 탓은 무려 7년간 9번이나 진상조사가 이뤄질 정도. 정점은 국정농단 사태 때 나온 ‘이게 나라냐’.

 

정권을 잡은 문 대통령은 취임사부터 나라가 다 해줄 것처럼 했다.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나라’가 열릴 것처럼. 그 결과가 어떤가. 참담함은 이루 나열하기 어렵다. 그래서 반문(反問)한다. 툭하면 나라 탓하더니 5년이 다 되도록 만든 나라가 이거냐고.

 

어느 진보좌파 지식인의 표현대로 ‘제대로 공부한 적 없고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는 민주 건달들’은 국가를 운영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평생 남 탓을 하면서도 자신들이 그렇게 무능한지는 몰랐을 터. 문 정권이 남긴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걸핏하면 ‘나라 탓’을 입에 담는 정치인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나라 탓’ 바이러스가 유행하면 반드시 따라붙는 변이 바이러스가 있다. 우리가 집권하면 다 해준다는 ‘나라 만능’ 바이러스다. 그런데 국가가 어떻게 모든 걸 다 해줄 수 있나. 불가능한 목표를 입에 올리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당신의 불만이나 분노를 불쏘시개 삼아 권력을 잡거나 유지하려는 포퓰리스트 선동가들이다.

단적으로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보라. 인간 본성에 역주행하는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사회주의 정책을 쓴다 해도 될 일이 아니다. 사회주의 중국의 부동산 빈부격차는 한국보다 심각하다. 북한에서조차 평양 아파트는 선망의 대상이다. 인간 본성과 시장 논리에 맞는 정책으로 한정된 부동산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국정담당자의 실력이다.

그런데 무능한 권력일수록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데다 오만하다. 그러니 가장 손쉬운 ‘나랏돈 빼먹기’로 실정(失政)을 분식(粉飾)하려 든다. 그러다 10조 원이 넘는 고용보험기금을 4년 만에 거덜 내고, 북한이 두려워하는 첨단전투기 F-35A의 도입 등을 위한 국방예산까지 손대는 것이다. 이 시점에 북한 지령을 받은 간첩들이 F-35A 도입 반대 시위를 벌인 것은 과연 오비이락(烏飛梨落)인가.

 

이쯤 되면 문 정부의 무능과 실정 시리즈에 국민들이 넌더리를 낼 만도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라 탓’ ‘국가 만능’ 바이러스가 코로나보다 질기고, 그만큼 달콤하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고금(古今)의 포퓰리스트 정치인은 당대에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40%가 넘는다는 문 대통령 지지율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대선에 나선 주자들도 ‘기본소득’ ‘기본주택’이니 ‘토지공개념 개헌’ ‘택지소유 상한제’ ‘반의 반값 아파트’ 같은 나라 만능 바이러스를 유포하고 나선다.

이런 바이러스는 개인의 자유 의지와 시민정신을 좀먹어 자유시민을 국가 의존형 인간으로 전락시킨다. 이 바이러스가 창궐하면 국가 이성은 마비되고, 사회적 담론은 수준 이하로 떨어진다. 작금의 쥴리 논란 등이 그 조짐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국민이 이 바이러스에 집단 감염되면 권력자에게 국가주의, 포퓰리즘 독재의 길을 터준다. 역사상 많은 나라가 이렇게 패망했다. 대한민국이 그 기로에 섰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