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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동서 사상과 종교의 지평은 융합돼야 한다”

“동서 사상과 종교의 지평은 융합돼야 한다”

종교학자 길희성, ‘종교와 영성 연구 전집’ 4~6권 출간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입력 : 2021-08-05 11:54:54수정 : 2021-08-05 17:58:24게재 : 2021-08-05 17:56:20 (16면)

 전체를 아우르는 통전의 입장에서 볼 때 보편적 종교성은 동서양 구분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 사진은 서산 마애여래삼존상. 문화재청 제공

 

왜 중세의 종교 사상가들인가. 종교학자 길희성 서강대 명예교수가 출간한 ‘종교와 영성 연구 전집’ 4~6권을 보면서 생기는 물음이다. <지눌의 선 사상> <일본의 정토 사상-신란의 절대 타력 사상>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영성 사상>이 그 3권이다. 고려시대의 위대한 사상가 지눌(1158~1210), 일본 가마쿠라 시대의 독창적 정토 사상가 신란(1173~1262), 독일 신비주의 사상사 에크하르트(1260~1328)는 모두 중세의 사상가들이다.

 

중세의 지눌·신란·에크하르트 사상 통해 ‘영성 회복’ 추구

철학·신학·동양종교 아우르는 통전적 사상 중요성 강조

 

저자가 보기에 중세는 철학이 영성과 신비주의적 성격을 지닌 시대였다. 신학과 철학이 조화를 이루면서 영적인 힘을 느낄 수 있는 시대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데카르트 이후 근대철학에서는 지성과 영성이 이질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서구 근대 사상은 영적 빈곤을 겪었는데 이것이 서구 신학의 비극이라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이후 인간은 말할 수 없이 허전해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초월을 포기하고 ‘형이상학의 극복’을 전리품인 양 자랑하고 있는 서양 근현대 철학은 인간의 가장 깊은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윽한 명상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르동의 그림 ‘눈을 감은 사람’. 그리스도가 연상되기도 한다. 부산일보 DB

저자는 통전적 사상을 갈망한다고 한다. ‘통전(統全)’은 전체를 아우르고 조화시키고 통합한다는 것이다. 철학 신학 동양종교를 아우르면서 통합시키고자 한다는 것이다. 통전의 핵심은 깨달음의 종교인 불교와 구원의 종교인 그리스도교를 회통시킨다는 점이다.

찬찬히 하나하나를 살펴보자.

저자에 따르면 지눌은 한국 선불교의 이념을 제시한 걸출한 스님이다. 한국 불교사에는 걸출한 스승이 셋 있는데 원효 지눌 휴정이라는 것이다. 지눌은 화쟁의 달인 원효와 깊은 늪에서 한국 불교를 구한 휴정,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1000년 세월을 하나로 잇는 걸출한 사상가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뛰어난 분석력으로 선(禪)을 지적으로 명쾌하게 설명했다. <지눌의 선 사상>은 한국에서 지눌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고찰한 드문 저작이다. 위대한 선사 지눌이 도달한 곳은 ‘자신의 마음이 곧 부처’라는 깨달음이었다.

일본의 신란은 일본 불교의 주류를 이루는 정토 신앙의 대표적 사상가다. 신란 시대부터 일본 불교는 한국·중국 불교와 달라지면서 독특해졌다. 그것을 ‘가마쿠라 신불교’라고 하는데 신란은 아미타불을 통해 구원받는 타력 신앙을 극도로 몰고 감으로써 매우 독창적인 정토 사상을 전개한 인물이라고 한다. 저자가 보기에 타력신앙을 표방한 정토 불교는 그리스도교와 많은 유사점을 지녔다. 저자는 이런 데서 지평융합이 발생한다고 한다. 저자는 “‘오직 은총’ ‘오직 믿음’을 통해 구원받는다는 것이 불교 사상에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움과 흥분을 금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명상적 분위기의 반가사유상. 문화재청 제공

중세 독일의 에크하르트는 예수는 말과 행동을 통해 진정한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갈파한다. 그래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에크하르트에 따르면 예수와 우리는 모두 똑같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에크하르트는 “그대 안에 모든 진리를 가지고 있다”며 “하느님은 저기에 있지 않다. 하느님과 나, 우리는 하나다”라고 했다. 이는 부처를 밖에서 구하지 말라는 불교 조사들의 가르침과 통하는 것이다. 그것이다.

저자는 “동서양 사상의 대화, 그 가운데서도 불교와 그리스도교라는 두 위대한 종교 전통의 창조적 만남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에르하르트와의 만남은 실로 하느님의 계시라고 느껴질 정도로 감격적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마음이 곧 부처라는 지눌에서, 부처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신란을 거쳐 우리 마음속에 하느님이 있다는 에크하르트에 이르면 ‘통전적인 지평 융합’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저자는 1980년대 미국 신학자 코브의 주장을 가져와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이제 대화의 단계를 넘어서서 상호 변화되는 방향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기축시대의 기축사상이 있다. 인류문명사를 관통하는 철학과 사상, 세계적 윤리종교가 만들어진 시대다. 기축사상을 펼친 위대한 스승이 부처 공자 예수 등이다. 기축사상은 ‘옛날 생각’이 아니라 인류가 자기를 근원적으로 발견한 사상, 종교이다. 이것들은 충돌할 게 아니라 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전의 이름이 그것이다. 길희성 지음/동연/각권 280, 316, 384쪽/4·5권 각 1만 7000원, 6권 1만 9000원.

 <지눌의 선 사상>. 동연 제공

 

 <일본의 정토 사상-신란의 절대 타력 사상>. 동연 제공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영성 사상>. 동연 제공



[출처: 부산일보]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1080511545422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