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양정철 “與 절박함 없어…정권 재창출 비관적 요소 더 많아”
황형준 기자 입력 2021-06-08 03:00수정 2021-06-08 07:22
[파워인터뷰]양정철 前 민주연구원장
박원순 시민장부터 ‘변화맹시(變化盲視)’…변화 흐름 못 읽어 여권 위기
靑-내각 ‘능숙한 아마추어’ 많아 기대했던 국정 성과에 못미쳐
조국 자서전 꼭 냈어야 했는지…당에 대한 전략적 배려 아쉬워
대선때 또 악역 맡아야 할지 고민
더불어민주당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양 전 원장은 지난해 4월 여당의 총선 승리를 이끈 직후 원장직에서 내려오며 야인으로 돌아왔지만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재집권을 위해 역할을 해 달라”는 당과 대선 주자들의 요청을 받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 더불어민주당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7일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여권의 위기 상황을 “변화맹시(變化盲視·change blindness)”로 규정하고 “박원순 전 시장 시민장(葬)부터 시작됐다. 부동산이나 한국주택토지공사(LH) 사태는 발화점에 불과했다”고 진단했다. 변화맹시는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는 현상을 뜻하는 심리학용어다.
그는 문재인 정부 4년에 대해 “위기극복 정부로 평가받을 것”이라면서도 “(청와대 참모와 내각에) 능숙한 아마추어가 너무 많았다”고 쓴소리를 했다. 또 민주당을 향해 “절박함이 없다”며 재집권 가능성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따져 보면 비관적인 요소가 더 많다”고 했다.
이번 인터뷰는 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양 전 원장이 언론 인터뷰에 응한 건 3년 만에 처음이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홍보기획비서관 등을 지냈던 그는 문 대통령의 대선 출마를 권유하며 2012년, 2017년 대선 캠프에서 브레인 역할을 맡았다. 2017년 5월 대선 승리 직후에는 백의종군을 선언한 뒤 뉴질랜드, 일본 등 해외를 떠돌며 문 대통령과 거리를 뒀다. 2019년 5월 민주연구원장을 맡아 지난해 4·15총선 승리를 이끌었지만 총선 직후 원장직에서 사퇴하고 올해 1월부터 3개월간 미국을 다녀오는 등 잠행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
● “‘선한 대통령’이 당시 시대정신”
사진=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4년간 백의종군해왔다. 남은 1년도 같은 원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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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이다. 지난 4년 그래왔듯 앞으로도(그리고 문재인 정부 이후에도) 공직을 맡거나 출마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게 (대통령과 청와대에) 도움되는 일이라 판단해 그랬고, 한편으로는 그게 나를 위한 일이라 생각한다. 공성불거(功成不居·공을 세웠으면 그 자리에 머물지 말라) 원칙도 중요하고 내 자유도 소중하다.”
―정권 출범을 사실상 기획했다는 평가다. 2016년 최순실 씨 등 국정농단 사건 터지기 이전에도 당선을 확신했나.
“당선을 확신한 건 꽤 오래전이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다.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 이후 박근혜 정부 탄생을 정권연장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중반을 넘어가면서 이명박 정권과 다를 게 없고 오히려 더 심하다는 인식이 퍼졌다. 특히 2014년 세월호 참사는 돌이킬 수 없는 문제였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대처하는 것을 보고 민심을 돌이키기 어렵겠구나 판단했다. 당시 야권으로서는 대안이 문 대통령밖에 없기 때문에 준비만 잘 하면 집권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했다. 선거 당일 당선 예측 방송을 대통령과 같이 보면서도 둘 다 별로 기쁘지 않았다. 마음이 무거웠다.”
2016년 6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때의 모습. 문 대통령 왼쪽은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오른쪽은 탁현민 현 대통령의전비서관
―문 대통령이 집권해야 한다고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나.
“시기마다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시대정신이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김대중 노무현 시기 뿌리내리기 시작한 민주주의적 기초와 가치가 근본적으로 다 허물어졌다. 박근혜 이명박 그 다음 대통령으로서, 리더로서 핵심 코드와 자질은 좋은 사람, 선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봤다. 지금도 문 대통령 지지율이 40%대 안팎이다. 전례 없는 일이다. 국민들이 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를 문 대통령과 분리해서 보는 경향이 있다. 대통령은 선하고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당정청 전체적으로는 오만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 힘의 근원은 대통령의 성정과 덕목 덕분이다.”
―세 번째 비서실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됐는데…
“내 의사와 무관한 얘기였다. 어떤 공직도 안 맡겠다고 그렇게 여러 번, 그렇게 세게 공언해 왔는데, 새삼 말을 바꿀 아무 이유가 없다.”
―예전 손혜원 전 의원이 문 대통령이 본인은 완전히 쳐냈다고까지 말했는데, 김정숙 여사한테 미움을 샀다는 이야기도 있다.
“답변할 가치가 없는 이야기다.”
● “청와대, 정부에 능숙한 아마추어가 너무 많아”
사진=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문재인 정부 4년을 평가해달라.
“문재인 정부는 위기극복 정부로 평가받을 것이다. 한국사회에 전례 없는 두 가지 메가톤급 위기를 잘 넘었다. 먼저, 탄핵과 그로 인한 헌정 중단 사태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인수위원회도 없이 출발한 정부가 인수위 기간을 알차게 준비한 이전 정부들보다도 훨씬 안정되게 초기 3년 할 일을 다 했다. 다음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그 감염증 위기는 전인류적, 전세계적 초유의 사태였지만 대체로 잘 대처해왔고 결국 잘 극복할 것이다. 외환위기 극복에 비견할 만하다. 다음 대통령이 전환기적 시대를 열 수 있는 조건을 갖춰놨다.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더 원대한 목표가 많았었는데…”
―뭐가 한계였나.
“이유를 따지자면 대통령은 최선을 다했지만 청와대와 내각의 참모진은 최선에 이르지 못했다. 능숙한 아마추어가 너무 많았다. 그 언밸런스 때문에, 대통령 스스로 당초 기대했던 국정 성과에 못미쳤다고 본다. 대통령이 답답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과도한 애정과 불필요한 책임감에서 냉정하게 하는 얘기다.”
―능숙한 아마추어라는 건 특정 참모들을 겨냥한 말인가.
“대체적으로 청와대와 내각 참모 진용의 국정운용 행태에 아마추어적 모습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참모의 덕목 중에 핵심은 책임감이다. 특히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여러 선택의 옵션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 전체를 통틀어서 청와대를 제일 잘 아는 게 대통령이었다. 참모들이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있어 운동장을 넓게 쓸 수 있는 많은 옵션을 드렸는지 잘 모르겠다. 대통령의 개인기와 역량에 참모들이 따라가는데 급급했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정권 출범 이후 꽤 오랜 기간 지지율이 고공행진할 때, 이후 닥쳐올 어려운 시기에 대한 대비가 부족한게 아쉽다. 지지율에 취했다고 할까. 능숙하고 익숙해서 무난하게 가는 것 같지만 선을 넘지 못하는 아마추어적 기질이 많았다고 보는 것이다.”
―능숙한 아마추어를 뽑은 건 결국 문 대통령 아닌가.
“시스템과 절차를 중시하는 문 대통령 특성상 어떤 자리에 누구를 콕 찍어 보내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을 했고 절차적 규범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법률가 출신이다. 인사수석과 민정수석, 그리고 인사추천위원회에서 걸러져 올라오는 사람에 대해 선택은 하지만 직접 어떤 자리에 누구를 콕 집어 사람을 쓰는 분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참모들이 가용 인적자원을 폭넓게 쓰도록 하지 못한 면에서도 협량함이 있었다고 본다.”
● “민주당 재집권, 지금으로선 예단 어려워”
사진=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4.7 재보선에서 민주당은 심판을 받았다. 그 이유를 어떻게 진단하는가.
“당정청 모두 안이했다. 우리 정치사에서 한 대통령 임기 중 그랜드슬램(2017년 대선 승리, 2018년 지방선거 승리, 2020년 총선 승리)을 달성한 건 처음이었다. 국민들께서는 밀어줄 만큼 밀어주신 셈이다. 정말 두렵고 무서운 마음으로 더 겸손하고 더 치열하고 더 섬세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오만하고 무례했다. 변화맹시의 시작은 박원순 전 시장 시민장부터 시작됐다고 본다. 부동산이나 LH사태는 발화점에 불과했다. 후보가 부족했거나 재보선 전략의 요인은 적다고 생각한다. 이미 그 전에 유증기처럼 민심의 불만이 가득 차있는 상황에서 각종 도화선이 생긴 것 뿐이다. 너무 많은 중도층 여론을 ‘태도 보수’로 돌려버린 게 패인이라고 본다.”
―부동산 문제 등이 아니고 박원순 전 시장 시민장이 위기의 시작이었다는 건가.
“변화맹시는 일종의 학술 용어인데 본인이 갖고 있는 선행적 경험이나 주관적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해 눈 앞에서 뻔히 벌어지는 변화조차 인식 포착 못한다는 뜻이다. 박원순 오거돈 전 시장 사건은 명백한 과오다. 특히 박 시장은 죽음으로 책임을 안고 간 것인데 민주당으로서는 아프고 힘든 일이지만 조용히 보내드렸어야 했다. 정작 가족들은 조용한 가족장을 희망했는데 민주당 의원들이 주도해 시민장으로 치렀다. ‘그 정도는 해도 된다’는 오만함이고 ‘이게 왜 문제가 되지’하는 무례함에 말없는 많은 시민들은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민심의 아래로부터 무서운 이반과 변화에 무감했던 괴리가 겹치면서 생긴 결과다.”
―민주당의 재집권 가능성은.
“지금으로서는 예단하기 어렵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비관적인 요소가 더 많다. 1987년 직선제 이후 집권당이 무난하게 정권재창출을 한 사례가 세 번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이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등 간난신고 끝에 가까스로 된 만큼 이를 제외한 노태우, 김영삼, 박근혜 전 대통령 당선이다. 이들 모두 전직 대통령과 같은 당이었지만 ‘다른 당 다른 대통령상(象)’을 연출했다. 세 사람은 획기적인 6.29선언(노태우), 첫 문민정부 기대감(김영삼),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는 다른 당 후보보다 더 큰 대척점(박근혜)에서 마케팅에 주력했다. 일종의 착시를 노린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정권교체에 가까운 정권재창출이었다. 지금은 그런 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야권에선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상대적으로 여권에선 흥행요소가 적다.
“대선까지 열 달 가까이가 남았는데 아마도 그 사이 여러 부침과 변화가 있지 않을까. 역대 대선 중 가장 변화무쌍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것 같다. 각종 경제지표도 나쁘지 않고 코로나19도 잘 극복될 걸로 보면 그게 큰 플러스 요인이다. 거의 모든 광역을 커버하는 폭넓은 후보군도 상대적으로 밀리지 않는다. 당 중심으로 대대적인 쇄신과 변화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 야권의 흥행요소라고 하는 게 언론 입장에서야 흥미롭겠지만 뒤집어보면 불안정성이다.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 “민주당, 절박함 없어…가슴 콩닥거릴 비전 제시해야”
사진=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현재 민주당 문제는 뭐라고 보는가.
“절박함이 없다. 스타일리스트 정치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너무 많다. 집권당으로서의 책임감 자각을 잊고 마이너리즘에서 못 벗어난 사람도 많다. 상대 당은 얼마나 절박하면, 30대 당 대표,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시킨 윤석열 전 총장 영입 시도 등 지금까지의 정치권 통례와 상식을 뛰어넘는 일에 진력하고 있다.”
―그걸 극복하려면.
“첫째, 경제 민생 이슈에 집중하고 매달려도 시간이 부족하다. 검찰 이슈, 언론개혁 이슈 등 개혁 과제는 정권 초기 과제다. 마무리에 접어들어야 할 이슈가 전면에 부각되는 건 효율적이지 못하다. 둘째, 문재인 정부를 뛰어넘어야 한다. 예를 들면, 현 정부 정책의 상징처럼 돼있는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부동산정책 등에서 한 발짝도 못 벗어난다면 중도 확장은 불가능하다. 담대하게 극복하고 뛰어넘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 셋째, 남 탓해서는 안 된다. 억울해도 (국민이) 때리시면 맞고 야단치시면 야단맞는게 정치인데, 절박감도 겸손함도 부족해보인다. 지난 총선 때 기본 프레임이 ‘미래로 가는 정당이냐 과거로 가는 정당이냐, 유능한 정당이냐 무능한 정당이냐, 일하는 정당이냐 싸우는 정당이냐’였다. 상대 당과 정반대 이미지로 승부하려 노력했다. 어느새 1년 만에 바뀐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중도층을 잡기 위한 정책이나 제안하고 싶은 게 있나. 당에선 가령 종부세 완화 등 부동산 세제 개편을 시도하고 있는데…
“대선 주자들의 ‘기본시리즈’ 논쟁도 좋지만 더 담대한 게 나와야 한다. 의정사상 초유의 180석을 보유한 집권당이라면 예산편성에 대한 전례 없는 새로운 디자인을 해 볼 수 있다. 또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뤄진 한미 미사일 지침 폐지는, 국방안보 이슈에만 그치는 일이 아니다. 한국이 우주 경쟁에 제대로 뛰어들지 못한 게 그 때문이었는데 이참에 당은 대한민국 우주시대를 제시하는 비전과 정책을 내놓아야 국민들 가슴이 콩닥거린다.”
―등 돌린 2030세대를 다시 민주당 지지로 돌릴 방안은.
“‘사람이 새와 함께 사는 법은 새장에 새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마당에 풀과 나무를 키우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2030을 생각할 때 딱 맞는 말 같다. 단선적이고 즉흥적인 대책에 골몰할게 아니라고 본다. 또 당내에 이미 훌륭한 젊은 의원들이 즐비하다. 그들도 많이 절제하고 다듬어져야겠지만 전면에 내세우기에 손색이 없다.”
―젊은 의원들을 어떤 방식으로 전면에 내세울 수 있을까.
“대선기획단이나 선대위에 선수(選數)에 얽매이지 말고 분야별 전문성 중심으로 신예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야권을 뛰어넘는 외부의 신선한 젊은 전문가 그룹을 대거 모시고 앞에 포진시켜서 우리 당의 대선을 이끌고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 “조국, 당에 대한 전략적 배려 아쉬워”
―민주당에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책을 계기로 옹호론이 퍼지고 있다.
“허물에 대해서 여러 차례 사과했고 허물에 비해 검찰수사가 과했으며 그로 인해 온 가족이 풍비박산 나버린 비극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 분 정도 위치에 있으면 운명처럼 홀로 감당해야 할 역사적 사회적 무게가 있다. 나 같으면 법원과 역사의 판단을 믿고, 책은 꼭 냈어야 했는지…. 당에 대한 전략적 배려심이 아쉽다.”
―조 전 장관 사태부터 갈등을 겪은 윤 전 총장이 이탈한 건 결국 여권 책임 아닌가.
“조국 전 장관에 대해선 검찰이 무리를 해도 너무 했다. 나중에 더 많은 진실이 차차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이후 검찰과의 일은 세련되고 합리적이지 못했다. 목표가 정당하다고 해도, 이번엔 ‘정권이 심하고 무리한다’는 인상을 줘버렸다. 박범계 장관의 신현수 전 민정수석 패싱 논란 같은 것이 대표적인 아마추어적 일처리다.”
―윤석열 전 총장과도 친분이 두텁다고 알려져 있는데…
“나는 민주당원이다.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통합의 정치를 펼쳐가기를 바랄 뿐이다.”
● 이재명 배제 위한 ‘친문 제3후보론’에 “웃기는 이야기”
사진=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는 양 전 원장을 여권의 킹 메이커라 부르며 다음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된 순간부터 여한이 없어졌다. 나에게는 이제 정치적 목표와 소망이 없는 셈이다. 많은 요청을 받고 있지만 이제 선거 치르는 일이 엄두가 안 난다. 선거 한 번 치를 때마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수많은 악업을 쌓게 된다. 정권재창출 대의 하나 때문에 또 뭔가의 악역을 해야 하나 고민이 깊다.”
―현재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여권 대부분 인사와 다 막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굴, 도울 생각인가.
“대통령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은, 처신을 조심할 수밖에 없다. 당내 경선에 문심 논란 같은 게 생겨선 안 된다. 대통령이 경선에 소환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나중에 후보되는 분을 중심으로 본선에서 승리하도록 힘을 모으는 게 지혜로운 태도일 것이다. 일치단결 팀워크를 깰 수 있는 앙금이나 여진이 없도록 섬세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 친문 제3후보 옹립 따위 전망은 웃기는 얘기다. 다만 내가, 우리 당 후보 선출 이후 뭘 도와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가장 탁월한 당 대표로 이해찬 전 총리를 뽑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 전 총리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돕는다던데…
“이 전 총리는 당의 원로고 대선배다. 당 안팎에서 자꾸 이 지사를 배제한 ‘친문 제3후보론’ 따위 얘기가 나오고 하니까 조금 더 전략적 배려를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나중에 후보들 간 앙금이 안 생기고 팀워크가 안 깨지게 좀 더 신경을 쓰는 것 아닐까 싶다. 정치 일선에서 떠났고 정권 재창출이라는 대의 하나로 헌신할 분이다.”
● “여야가 개헌 공약 내걸고 연정해야”
사진=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이번 정부에서 개헌 시도는 결국 무산됐다. 5년 단임 대통령제의 문제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여야 모든 후보들이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당선되는 분이 임기 초에 여야 합의로 개헌을 추진하는 게 이상적이다. 현재 여야가 극단적으로 부딪히는 사안의 80~90%가 진보 대 보수 가치의제가 아니다. 상대 당이 하니까 반대할 뿐이다. 통합의 정치로 가야 한다. 답은 연정밖에 없다. 3년 정도 해외 유랑에서 절감한 것은 ‘역시 노무현’이었다. 왜 고인께서 생전에 그토록 통합의 정치를 주창했고 조롱을 받아가면서도 대연정까지 추진하려 하셨는지, 앞서간 혜안이 와닿는다. 우리 쪽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어도 저쪽 당과 통합형 협치내각을 구성해, 진보 보수를 뛰어넘는 국가적 목표 중심으로 초당적 협력을 해야 한다. 만약 범야권의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더더구나 그렇게 가야 한다. 범진보가 190석인데 계속 대결적 정치구도로 가면 그쪽은 식물대통령 식물정부 되기 십상이다. 그게 무슨 비극인가.”
―통합과 연정을 얘기하는 건 의외다.
“문 대통령 정치 시작하신 이후 일관되게 ‘우리가 중도와 보수를 끌어안고 포용하고 같이 가지 않고서는 집권이 어렵다. 선거는 결국은 중도확장, 외연확장 경쟁인데 그러지 않고서는 집권도 국정운영 성공도 쉽지 않다’고 건의드려왔다. ”
―연정은 대통령도 같은 생각인가.
“우리 정치를 향한 내 개인적 충정이자 소신일 뿐이다. 대통령과는 연관짓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문 대통령도 대통령이 된 이후에 적어도 통합이나 포용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했다. 과거 두 번의 개각 때 야권 인사들에게 입각 제안을 했었다. 비록 성사는 안 됐지만 대통령도 통합이나 포용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전직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사면은 필요하다는 생각인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데 언급하는 게 조심스럽다.”
● “노무현은 탄산수, 문재인은 막걸리”
사진=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문 대통령 퇴임하면 함께 할 계획인가.
“그러고는 싶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어떤 정치행위도 하지 않고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싶다는 소박한 삶을 꿈꾸고 계시니, 내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 싶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비교하면.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질문처럼 느껴진다.(웃음) 비슷한 것 같지만 정말 다른 스타일이다. 서로 다른 매력 다른 장점을 가진 지도자다. 노무현이 장미꽃이라면 문재인은 안개꽃, 노무현이 인파이터 복서형이라면 문재인은 조정 선수형, 노무현이 탄산수면 문재인은 막걸리, 노무현이 카피라이터 기질이면 문재인은 시인적 기질이다. 두 분을 모신 게 행복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보는가.
“간헐적 정치인? 선거 때만 나타나 소소한 역할을 감당하고 곧바로 사라지는…그조차도 그만 하고 싶다.”
양정철 전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 |
△ 1964년 서울 출생 △ 한국외국어대 법대 졸업 △ 노무현 정부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 △ 노무현재단 사무총장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 경선 캠프 비서실 부실장 △ 민주당 민주연구원장 △ 일본 게이오대 법정대 방문교수 △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객원선임연구원 |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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