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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당분간 가치주 뜬다는데… 거꾸로 반도체·BBIG 사들이는 서학개미

당분간 가치주 뜬다는데… 거꾸로 반도체·BBIG 사들이는 서학개미

권유정 기자

입력 2021.05.24 06:00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반도체를 비롯한 BBIG(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 등 성장주를 집중적으로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학개미들의 움직임은 올해 들어 글로벌 증시에서 성장주가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와중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성장주는 미국에서 물가가 급등하며 금리 상승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자 좋지 않은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금리가 낮을 때는 미래 현금 흐름에 의존하는 성장주가 각광받지만, 지금처럼 경기 회복 속도가 빨라지고, 금리가 오르는 시기에는 가치주가 선호되는 경향이 강하다.

일러스트=안병현

연초부터 지난 20일까지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가치주를 주로 담고 있는 러셀1000가치주(iShares Russell 1000 Value ETF)지수는 16.3% 상승했다. 이 기간 성장주 위주의 러셀1000성장주지수(iShares Russell 1000 Growth ETF)는 4.9% 오르는데 그쳤다.

임병효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요국에서 백신 접종 속도가 빨라지고, 하반기 집단면역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물가와 금리상승 환경이 이어질 수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며 “가치주를 보유하거나 투자비중을 늘리는 게 유리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가치주가 성장주보다 모처럼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 경기 회복 기대를 다 반영하지 않았다”며 “글로벌 경기 정상화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성장주 대비 가치주의 추가 상승 여력은 아직 남아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21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18일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투자자들의 순매수 규모가 가장 큰 종목은 ‘디렉시온 데일리 세미컨덕터 불 3X’(DIREXION DAILY SEMICONDUCTOR BULL 3X·SOXL)이다.

SOXL은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SOX)의 하루 상승폭을 3배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다. 수익과 손실 모두 3배로 나는 만큼 위험성이 크다. 서학개미는 이달 들어 이 상품을 9427만5771달러(한화 약 1067억2960만원) 순매수했다.

 

국내 투자자들이 SOXL 다음으로 많이 순매수한 종목은 아마존과 프로쉐어스 울트라프로 QQQ(ProShares UltraPro QQQ)다. 이들은 두 종목을 각각 5229만달러(592억원), 3475만달러(393억달러)씩 사들였다.

QQQ는 나스닥에 상장된 우량 기업으로 구성된 나스닥100지수를 3배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품이다. 지난 3월 31일 기준 애플(10.98%), 마이크로소프트(9.52%), 아마존(8.34%), 테슬라(4.25%), 페이스북(3.79%)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서학개미들의 저가매수 전략이 괜찮은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이들은 물가나 금리 상승 우려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당장은 가치주가 유리한 게 맞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반도체와 기술주가 시장 반등을 이끄는 주도주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상희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10월 이후 유지해왔던 가치주 우위 의견을 변경한다”며 “5~6월 시장이 흔들릴 때 성장주 편입을 추천한다”고 밝혔다. 그는 “금리가 급격하게 오르지 않는다면, 절대적으로 낮은 금리가 다시 한 번 성장주 주가 매력을 키울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상승 사이클에 대한 고점 우려로 조정받고 있는 반도체 관련 기업들의 주가 전망도 긍정적이다. 연초 이후 삼성전자 (80,100원 ▲ 600 0.75%)(-4%), SK하이닉스 (122,500원 ▲ 0 0.00%)(-8%) 등 국내 반도체 기업 주가는 코스피지수(2%) 상승률을 하회하는 부진한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사실 반도체 상승 사이클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하반기에는 실적개선 추세가 더 뚜렷해질 것”이라며 “과도한 우려가 선반영되며 상반기에 주가가 충분히 쉬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기 조정 후 재반등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한편, 전날 미국 증시는 대형 기술주 등 성장주를 중심으로 강세를 나타냈다. 4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 공개 이후 시장금리가 안정을 찾은 가운데, 주간 실업지표 호조, 암호화폐 시장 반등, 옵션 만기일을 앞둔 수급적인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