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대선때 문 여는 한전공대…지방대 소멸 시대에 개교 논란
[중앙일보] 입력 2021.04.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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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오후 전남 나주시 한국에너지공과대학(한전공대) 예정부지인 부영CC에서 학교 건립을 앞두고 사전 준비 공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방대 소멸'이 현실화한다는 위기감이 대학가를 강타한 와중에 새 대학이 문을 연다. '한전공대'로 알려진 한국에너지공과대다. 영문 학교명을 'KENTECH(켄텍·Korea Institute of Energy Technology)'으로 정한 한전공대는 캠퍼스 건설과 교원 채용 등 내년 3월 개교 준비가 한창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있던 대학도 문 닫는 판에 새 대학을 세워야 하느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논란 속에 문 여는 한전공대의 설립과 운영, 예산과 학생 선발은 어떻게 될 것인지 짚어봤다.
이낙연이 쏘고, 文대통령 받아 탄생한 한전공대
김영록 전라남도지사가 2019년 7월 12일 나주 빛가람혁신도시 빛가람전망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전공대 부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한전공대는 정치인의 입에서 시작됐다.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한국에너지공과대법'이 통과되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당시 대표는 페이스북에 "한전공대는 저의 전남지사 선거 공약이었다"고 밝혔다. 전라남도에서 추진한 한전공대 구상은 이후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의 공약에 포함됐다.
지지부진하던 한전공대 설립은 문 대통령 당선 뒤 속도를 냈다. 2017년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들어간 한전공대 설립은 당초 2026년을 목표로 추진됐다. 하지만 지난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여당이 한전공대 설립 요건을 대폭 완화한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내년 대선 시기인 3월 개교로 앞당겨졌다.
10년간 1.6조 운영비…국민이 낸 전력기금도 쓴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지난 1월 정부는 시행령을 개정해 전력산업기반기금(전력기금)을 한전공대 운영에 쓸 수 있도록 했다. 전력기금은 국민이 낸 전기요금의 3.7%를 떼어내 조성한 기금이다. 정치권에선 비판이 나온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은 "급하지도 않은 대학을 대통령 대선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설립하기 위해 전력기금을 쓰는 것이 과연 상식적인가”라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한전공대) 법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명문대'를 만들기 위한 막대한 투자 계획도 비용 부담을 더한다. 2018년 한전은 ‘한전공대 설립 용역 중간보고회’를 열고 학생 1000명(대학원 600명·학부 400명)의 등록금을 면제해 준다고 밝혔다. 또 우수 교수진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과학기술원 교수 연봉의 3배 이상인 약 4억원을 지급할 계획이다. 모두 한전의 부담을 늘리는 내용이다.
일각에선 결국 정부가 한전공대 운영 부담을 떠안게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처음엔 한전이 운영하지만, 비용 부담이 커지면 과기부 소속인 과학기술원이나 국방부 소속인 사관학교처럼 국립대학으로 전환할 수 밖에 없다는 예상이다.
교육부 감독 안받아…정부평가도 '패싱'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6회 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 교육·사회·문화분야 대정부 질문에 출석해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한전공대는 교육부가 아닌 산업통상자원부가 감독한다. 정관 개정이나 이사 승인 등 일부 업무를 빼면 교육부의 관리를 받지 않는다. 교육부는 상임위 논의 과정에서도 참석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달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벤처중소기업위원회(산자위) 회의에는 산자부·전라남도·나주시 관계자만 참석했다.
이런 구조 때문에 한전공대는 교육부의 대학 구조개혁 평가인 '대학기본역량진단'도 받지 않는다. 다른 대학들은 이 평가에서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면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정원 감축 압박도 받지만, 한전공대는 예외다. 신문규 교육부 대변인은 "한전공대는 교육부의 감독을 받지 않는다"며 "역량진단이나 정기 감사 대상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수능·내신 안보고 100% 수시 모집 선발
고3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시행된 지난달 25일 광주 서구의 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예비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뉴스1
학생 선발 방식도 논란이다. 한전공대 입학은 100% 수시로 이뤄진다. 지난해 10월 윤의준 한전공대설립추진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내신을 반영하지 않고 자체 선발기준을 마련해 창의적인 인재를 선발하겠다"고 밝혔다. 해외 사례를 참고한다고 밝힌 한전공대는 현재 2박3일 합숙캠프에서 심층 면접·토론 등을 진행해 학생을 뽑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내신·수능 등을 배제한 선발 방식이 '부모찬스'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회 교육위원회 김병욱 의원(무소속)은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한전공대는 다른 대학보다 입학과 동시에 한전에 취업할 가능성이 높다"며 "한전에 입학과 취업이 연계되는 한전공대는 입시 공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부모 찬스’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대 "정원 줄이라더니 정부가 늘리나"
2021 정시모집 경쟁률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원서접수대행사 및 대학 공지 자료]
지방 대학 사이에선 한전공대 개교를 두고 볼멘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대학 평가에서 학생 충원율 지표를 사용하며 정원을 줄이도록 하면서 지방에 새 대학을 여느냐는 지적이다. 광주의 한 대학 관계자는 "지역의 숙원 사업이 이뤄진 건 반갑지만, 씁쓸한 점도 있다"며 "막대한 사업비를 차라리 기존 대학 혁신에 썼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급격한 학생 감소로 대학가에선 대규모 모집 미달 사태가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해 이미 대입가능자원(고3 학생 및 재수생 등)이 입학 정원을 넘어섰고, 2025년이면 정원보다 학생이 12만명 가량 부족할 전망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자발적 정원 감축을 강조해 온 정부가 오히려 정원을 늘린 셈"이라며 "대학 구조조정의 명분을 훼손됐다"고 꼬집었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내년 대선때 문 여는 한전공대…지방대 소멸 시대에 개교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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