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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그녀는 ‘베드신 감독관’... 중요 부위 보호대 챙겨 촬영장 간다

남지현 기자

입력 2021.04.19 20:39 | 수정 2021.04.19 20:39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제작하는 인도에서 첫 ‘애정씬 코디네이터(Intimacy coordinator)’가 탄생했다.

인도 최초의 애정씬 코디네이터인 아스타 칸나(26)./아스타 칸나 인스타그램 캡처

애정씬 코디네이터란 영화나 드라마의 애정씬 촬영 현장에서 미투(Me Too·성폭력 고발 운동) 대상이 될 수 있는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감독하는 일종의 애정씬 전문 현장 감독이다. 무술 감독이 액션씬 촬영 현장에서 액션 연기의 합을 짜고 배우와 감독 간 소통을 조율해 위험한 사고를 방지하는 것과 마찬가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애정씬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은 미국 할리우드 여성 배우들이 영화계 성폭력을 줄지어 폭로한 ‘타임즈 업(Time’s Up·이제 끝이다)’ 운동이 일어난 2018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미국 최대 영화 전문 유료 채널인 HBO는 2018년 드라마 ‘더 듀스(The Deuce)’를 제작하면서 처음으로 애정씬 코디네이터를 고용했다. 이후 HBO는 자사에서 제작하는 모든 프로그램의 애정씬 촬영 현장에 애정씬 코디네이터를 고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넷플릭스, 아마존 등 다른 제작사들도 HBO의 선례를 따르면서 할리우드에서는 애정씬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이 더는 낯설지 않게 됐다.

인도에도 이런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인도는 2017년 기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제작한 나라다. 인도 최초의 애정씬 코디네이터인 아스타 칸나(26)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일은 “현장에서 배우들이 성적으로 착취당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인 동시에 제작사를 보호하는 것이기도 하다”며 “현장에서 소통이 원활히 이뤄져야 5년이 지나서 갑자기 배우가 촬영 당시 불쾌한 경험을 했다며 고발하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아스타는 다양한 촬영 현장에서 활발히 일하고 있다. 모델 출신 배우 안잘리 시바라만은 최근 촬영에 들어간 한 넷플릭스 시리즈 촬영장에서 아스타 덕을 톡톡히 봤다고 BBC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안잘리는 “스포츠브래지어와 팬티만 입고 처음 보는 남자 배우와 난생처음 정사씬을 촬영해야 했는데 발가벗은 기분이 들었다”며 “촬영장에서 나를 대변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됐다”고 했다. 아스타는 안잘리의 이런 불안을 감독에게 전달했고, 감독은 배우의 상태를 고려해 원래 예정돼 있던 키스씬을 삭제했다. 정사씬을 촬영할 때는 아스타가 현장에 가져온 도넛 모양의 쿠션을 배우들 사이에 배치해 두 배우의 중요 부위가 서로 닿지 않게 하면서도 그럴듯한 정사씬을 연출해냈다.

아스타가 현장에 늘 지참하는 물건들 가운데는 중요 부위 보호대, 니플 패치, 살색 테이프와 도넛 모양의 쿠션 등이 포함된다.

발리우드에서 노골적인 애정씬은 그간 드물었다. 정부 규제와 심의 위원회의 감시망을 피해 어지럽혀진 침대를 보여주는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20년 사이 넷플릭스 등 콘텐츠 스트리밍 플랫폼이 다양해지며 발리우드 영화에도 정사씬과 누드씬이 늘고 있는 추세다.

아스타는 애정씬 코디네이터의 존재가 현장에서 늘 환영받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아스타는 “많은 인도 감독들이 아직도 내 방식대로 하든지 아니면 아예 안 하던지 식의 독단적 리더십을 고집한다”며 “그러나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