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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평론

[이기홍 칼럼]약발 다한 文정권 필살기… 친문 재집권 방법은?

이기홍 대기자 입력 2021-04-02 03:00수정 2021-04-02 03:04

 

TBS 김어준 프로, 권력의 방송 장악 상징인데
폐지 요구에 친문은 “방송독립 침해” 본말전도
부동산 사태도 정권의 정책실패 책임 희석 위해
투기, 前정권, 세계적 요인 탓 선전공세 강화할 것
하지만 부동산 민심이 보여주듯 프레임 조작 더는 안 통해

이기홍 대기자

2000년대 초 출근길 버스에서 항상 이어폰을 꽂고 EBS FM 라디오를 들었다. ‘모닝스페셜’이란 프로그램이었는데 팝송 영화 등 다양한 소재로 영어회화를 배울 수 있었다. 신도시에서 광화문까지 언제 왔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고 유익했다. 알고 보니 주변에 애청자가 수두룩한 인기 프로였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초 갑자기 ‘진보 언론인’ 손석춘 씨가 국제뉴스를 해설해주는 시사프로가 신설돼 그 시간대를 차지해버렸다. ‘황금시간대 전파를 왜 영어에 낭비하냐, 국민이 진보적 시각으로 세계를 볼 수 있게 교육시켜 줘야지’…우중(愚衆)을 깨우쳐야 한다는 좌파권력의 강박관념이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그래도 양반이었다. 문재인 정권처럼 대놓고 지상파를 프로파간다 도구로 이용하는 정권은 없었다.

진영 내에서도 가장 극단에 서 있는 자칭 논객, 개그맨 등에게 아예 황금시간대 프로그램을 주는 것은 전두환 독재도 엄두를 못 냈던 일이다. 5공 정권은 땡전뉴스 비판이 제기되면 곤혹스러워하는 척이라도 했다.

그런데 친문은 TBS의 김어준 프로그램을 폐지하거나, 교통정보에 충실하라는 요구에 대해 “방송독립 침해”라고 되레 호통을 친다.

 

김어준류의 인사들이 공영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사실 자체가 권력이 방송을 장악하고 있음을, 방송독립이 제로임을 증명하는 지표다.

공영방송은 물론 공기업이 대주주인 언론사마저 정권이 바뀌면 ‘투쟁 경력자’들이 요직을 꿰차고, 친정권 연예인들이 활개 치는 현상은 방송·통신이 정권에서 독립돼 있다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보수진영이 선거에서 이긴 뒤 민경욱, 전광훈 또는 유튜브의 태극기 논객들에게 황금시간대 프로그램을 맡기고 정부와 공공기관 광고를 몰아줘도 친문들은 지금처럼 감싸줄 것인가.

적색신호를 청색이라 우기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바꿔버리는 본말전도는 집권세력의 필살기다. 권력자가 화두를 던지면 ‘좌파 괴벨스들’이 진실을 뒤집는 프레임을 확산시킨다. 방송장악을 방송독립으로, 검찰장악을 검찰개혁으로, 성추행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킨다.

그런데 그 필살기의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부동산 적폐 프레임을 내걸었지만 여론이 미동도 않자 당정청이 연일 반성문을 읽는다. ‘검수완박’은 쑥 들어가고, 김상조도 바로 자른다. 선거를 앞둔 ‘연극성 고개 숙이기’지만 프레임 전술만으로는 상황을 조작하기 힘들어진 환경의 산물이기도 하다.

문 정권의 통치전략은 △내정은 갈라치기와 프레임 짜기 △외치(外治)는 남북이벤트와 친중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드라마 ‘조선구마사’ 파동이 보여주듯 우리사회는 문 정권 출범 초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반중정서가 팽배해졌다. 시진핑 정권의 동북공정 같은 패권주의 행보가 누적된 결과물이다. 문 정권도 더 이상 친중 행보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오매불망 남북이벤트도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운신할 공간이 거의 없다. 반일 프레임도 미국이 워낙 한미일 협력을 중시해 죽창가를 꺼내기에 제약을 받고 있다.

내치는 4년간 쌓은 신(新)적폐의 산에, 외치는 미국 정권 교체와 미중 갈등 벽에 막혀 옴짝달싹하기 어려워 진 것이다. 민심의 저수지는 고갈돼 학철부어(¤轍¤魚·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놓인 붕어)의 신세다.

친문 정권의 회생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합리적 진보로의 변신이다. 예를 들어 금태섭을 받아들이고 조국 추미애 윤미향처럼 진보가치를 욕보인 인물들과 손절하는 것이다.

하지만 집권세력은 그 반대방향으로 달려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강경파들이 더 높은 죽의장막을 칠 것이다. 제3자에겐 뻔히 보이는 해결책을 외면하는 것은 가치가 아니라 인물메커니즘으로 움직이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친문 재집권을 가능케 할 두 번째 길은 야권의 자멸이다. 윤석열 효과 등으로 정권교체 가능성을 바라보고 있지만, 야당이 자만해 구태가 조금이라도 재연되면 친문에게 대선을 상납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부동산 분노가 대선에 미칠 영향을 너무 단순하게 예측해선 안 된다.

국민들의 분노는 △집값 폭등에 대한 절망감과 △정권 내부의 투기·위선에 대한 분노로 구분된다.

그런데 후자는 시간이 흐르면 수그러들 수 있다. 정권의 위선과 부패에 대한 호된 채찍질의 파도가 지나가면, 결국 남는 문제는 집값 폭등의 책임 소재와 해결방안이다.

문 정권은 집값 폭등 책임을 만성적 투기, 전 정권, 세계적 통화량 증가 등으로 돌리는 논리를 끊임없이 확산시킬 것이다. 정책실패 때문이라는 인식이 굳어지면 영영 만회하기 힘들지만 외부 요인 탓으로 돌리면 뒤집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대선을 앞두고 유주택자와 무주택자, 비싼 집과 덜 비싼 집 사이의 대립을 극대화시킬 방책을 쏟아낼 것이다. 가진 자를 징벌하고, 덜 가진 자에게 주거복지 물량공세를 쏟아붓는 쪽이 유리해질 것이라는 계산을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집값폭등과 LH사태를 계속 보편적 투기 문제로 희석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야당이 부동산 실정(失政)의 반사이익으로 대선을 쉽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야당이 지금의 우세가 결코 자신들이 잘해서가 아님을 잠시라도 잊고 분열하거나 기득권 구태 DNA가 재발하는 것, 그것이 친문 재집권을 가능케 할 첩경이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