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1.03.25 03:18 | 수정 2021.03.25 03:18
어떤 재벌그룹 회장이 사석에서 “탄탄한 중견기업 오너가 제일 부럽다”고 하는 것을 들었다. 재벌 회장은 정부·언론 등 온갖 곳으로부터 감시받고 규제당한다. 재벌가(家) 문제는 조그만 잘못이라도 사회문제가 되기 일쑤다. 돈이 있다고 어디 가서 마음대로 쓰기도 힘들다. 그러니 사회적 감시망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중소기업 오너가 부러울 만도 하다.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하냐”는 것이다.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복막염으로 응급수술을 받았다. 충수(맹장)가 터져 복막염으로 번진 것이다. 충수염은 불결한 위생 환경에서 자주 생기는 질병이다. 이 병이 대한민국 최고 부자에게 걸리고 제때 치료를 못 받아 터지기까지 했다. 며칠간 극심한 복통이 왔는데도 교도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혼자 앓았다고 한다. 교도관에게 알리면 “특혜” 소릴 들을까 봐 참았다는 것이다.
▶반도체·휴대폰 세계 1위 기업 총수인 이 부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이 외신에도 관심거리다. 2017년 초 그가 수감되자 블룸버그통신은 “삼성 상속자의 새로운 집무실은 연쇄 살인범도 수감된 교도소”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최근 몇 년간 외신엔 그가 검찰 포토라인에 서있거나 포승한 양손을 가린 채 이송되는 사진만 실렸다. 그는 ‘국정 농단’ 사건이 터진 2016년 말 이후 4년간 법원·검찰이 있는 서초동으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특검 조사 10회, 구속영장 실질 심사 3회를 받았고 재판을 83회나 했다. 수감 기간만 해도 총 420일이 넘는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는 국정 농단 사건보다 더 복잡하다는 ‘삼성바이오 회계 부정' 혐의로도 기소돼 곧 재판이 시작될 예정이다. 이 사건은 방대한 기록에 증인만 200명이 넘어 비슷한 규모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과 비교된다. 2019년 초 시작된 양 전 대법원장 1심 선고는 내년 상반기나 돼야 나올 전망이다. 이 부회장 재판도 대법원 판결까지 적어도 5년은 걸릴 것이라고 한다. 2016년 11월 압수수색부터 시작됐으니 꼬박 10년 세월을 수사와 재판으로 보내는 셈이다. 그때면 환갑 언저리다.
▶한국의 상속세는 세계에서 가혹하기로 유명하다. 이 부회장이 물려받은 주식가치만 18조원인데 그중 65%가량인 약 12조원을 상속세로 내야 한다. 이 부회장의 보유 지분을 다 팔아도 10조원 정도다. 이건희 회장이 남긴 미술품을 처분하면 2조~3조원을 추가할 수 있다. 은행 대출까지 받는다고 한다. 이래도 사람이 행복할까. 이 부회장은 한국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으면 “저도 그중 한 사람일겁니다”라고 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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