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21.03.15 00:17 | 종합 27면 지면보기
조영달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
옛말에 “일구이언(一口二言)은 이부지자(二父之者)”라고 했다. 이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을 일컬어 아버지가 둘인 것과 같다는 뜻으로, 필요에 따라 쉽게 말을 바꾸는 일관성 없고 모순된 행동을 꼬집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과거 전통 사회에서 이 말은 그야말로 사람 취급을 하지 않을 정도의 돌이킬 수 없는 지탄이었다.
선거는 민주주의 교육의 학습장
민주주의 퇴보·지속의 갈림길
책임정치 실현될지 주시해야
우리는 이 옛말을 현재 진행 중인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통해 직접 목도하고 있다. 다름 아닌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얘기다.
우리가 지금 시장 보궐선거를 치르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겨우 1년 남짓한 임기의 시장을 뽑기 위해 약 800억 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서울과 부산의 전임 시장들이 도대체 왜 시장직을 사직하게 되었는가.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집무실에서 자신의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를 자인하고 2020년 4월 23일 시장직을 자진 사퇴하였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또한 강제추행 등 혐의로 논란이 되었고, 2020년 7월 10일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이처럼 4월 7일 다시 치르게 되는 시장 보궐선거는 시민의 투표로 선출된 공직자인 시장의 파렴치한 범죄로 인하여 막대한 행정력과 국민의 혈세를 쓰게 된 것이다. 이 사태는 ‘함량미달인 인물’을 추천하고 지원해 국민의 투표로 선출받게 한 정당의 정치적 책임과 과오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4·7 시장 보궐선거는 선출직 공직자와 그를 후원한 정당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하는 선거다. 민주정치의 양 축의 하나인 책임 정치의 실현이 핵심 쟁점인 것이다.
함께 다르게 3/15
지금 선거판을 수 놓고 있는 단일화 논의나 1년 임기인 후보들이 던지는 공약은 우리를 대표할 사람으로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의 문제와 관련이 깊다. 이러한 대표성의 문제는 4년마다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지방 선거에서는 중요한 문제다. 그렇지만 이번 보궐선거에서는 책임정치의 모습이 드러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한 축이 멈추게 될 것이다.
일례로 최근 전 대표가 성추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정의당은 이번 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하지 않기로 하여 책임정치의 대원칙을 행동으로 보여 주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규정은 더불어민주당의 당헌 제96조 제2항에서도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11월 3일 당헌 제96조 제2항에 ‘단, 전 당원 투표로 달리 결정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까지 달아가며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세움으로써 한 입으로 두말하는 ‘식언(食言) 정당’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더불어민주당이 내세운 논리는 “후보 공천을 통해 시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 있는 공당의 도리(더불어민주당 전당원투표 제안문)”다. 이 말을 연장해보면 선거에서 표의 우위를 확보할 수 있으면 민주정치의 대원칙조차도 묵살할 수 있다는, 참으로 무서운 결론에 이르게 된다.
선거의 결과에 따라 자칫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양대 축의 하나인 책임 정치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권력의 주인인 시민이 후보를 잘못 공천한 정당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선거는 더 이상 민주주의라고 볼 수 없다. 이는 대중주의 독재인 것이다.
다가오는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시민의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소중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선거를 기점으로 한국 민주주의는 퇴보와 지속의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시민들의 이성적 선택이 너무나 간절하다.
선거는 민주주의 교육의 살아있는 장이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민주정치가 사회에서도 그대로 실천되는가를 지켜볼 것이다. 잘못을 저질러도 책임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을 보면서 학생들이 교과서에 나오는 책임 정치를 배우길 바라는 것은 모순이다.
다시 한번 우리 스스로 자문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왜 다시 시장선거를 치르고 있는가? 이번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의 꽃’이 필 수 있기를 온 국민은 염원한다.
조영달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조영달의 함께 다르게] 우리는 왜 시장 보궐선거를 치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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