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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문화

바삭한 돈가스·두툼한 함박… 혀에 감기는 반가운 추억의 맛

[아무튼, 주말]
경양식 애호가의 단골
조영권 피아노 조율사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입력 2021.03.13 03:00 | 수정 2021.03.13 03:00

 

 

 

 

 

서울 충무로 '그릴데미그라스' 대표 메뉴인 함박스테이크와 비후가스. 그 뒤로 식전빵이 보인다. 이 식당에서는 식전빵을 감자·달걀 샐러드와 함께 내준다./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퍄노조율사’. 음식에 관심 있는 이들 사이에서 꽤 이름 난 블로그다. 피아노 조율사 조영권(51)씨가 28년 동안 전국 각지로 출장 가서 직접 먹고 검증한 식당 수천 곳의 정보가 쌓여있다. 중국집, 칼국숫집, 냉면집, 만둣국집 등 허름하고 비싸지 않으면서 혼자서 한 끼 해결하기 알맞은 곳들이다. 그러면서 맛도 빠지지 않는다. 미식가들이 그가 블로그에 올리는 식당을 믿고 찾는 이유다.

조씨가 전국 맛있는 경양식집 28곳을 소개한 ‘경양식집’(린틴틴)을 최근 펴냈다. 2년 전 중식 노포(老鋪) 38곳을 모은 ‘중국집’에 이은 두 번째 책이다. 조씨는 “40~50대라면 누구나 경양식집에서 외식한 추억이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젊은 손님들은 덜 찾고 가게를 이어받을 후계자를 구하지 못해 문 닫는 곳이 많아 차츰 잊혀가는 경양식집과 경양식을 끄집어내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는 경양식집 4곳을 꼽았다.

그릴데미그라스

“경양식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 정착한 양식이잖아요. 이 가게는 한국식과 일본식의 중간 경계에 있어요. 책에 소개한 다른 경양식집들과 비교하면 가격은 좀 비싸지만 고기 등 식재료는 최고가 아닐까 싶어요. 먹어보면 느껴져요.”

서울 충무로에 있는 이 경양식집은 소·돼지·닭고기 모두 국산 냉장만 쓴다. 냉동·외국산은 새우프라이에 들어가는 새우뿐이다. 재료에 대한 주인 김재우씨의 고집 때문이다. 기본 메뉴나 음식 맛은 다른 경양식집과 비슷하지만 곁들이는 샐러드나 소스는 일본을 다니면서 보고 먹은 것들을 접목해 이곳만의 메뉴로 만들어 차별화했다. 돈가스는 없고 소고기로 만드는 ‘비후까스’(비프커틀릿)만 있다.

함박스테이크 2만원, 비후가스 2만6000원, 그라탕 2만원. 서울 중구 삼일대로2길 50, (02)723-1233

케냐

“음식도 음식이지만 분위기에 매료됐어요. 언덕 위에서 통창으로 내려다보는 수원 시내 풍경이 훌륭해요. 푹신한 파스텔톤 소파에 테이블 간격도 널찍하니 쾌적하면서 추억의 올드팝과 은은한 커피향이 가게 안을 가득 채우고 있고요. 사모님이 굉장히 친절하셔서 더욱 기억에 남아요.”

케냐에서 오래 살다가 돌아온 부부가 운영하는 경기도 수원의 경양식집. 돈가스와 생선가스 등 기본 메뉴는 물론이고 곁들여 나오는 밥, 그리고 조영권씨가 “경양식집의 필수”라고 꼽는 깍두기까지 맛있다. 후식으로 나오는 커피도 원두 4가지를 직접 로스팅·블렌딩해 내린다.

 

TRAVERSE

 

돈가스 8000원, 생선가스 1만1000원, 케냐정식 1만2000원. 경기 수원시 팔달구 향교로137번길 72, (031)245-9922

마야

“국도변 휴게소 2층에 있는 경양식집입니다. 경기도 이천으로 출장 가다가 우연히 발견했지요. 휴게소라고 하면 대개 빨리 먹을 수 있는 우동·김밥·라면 같은 걸 판다고 생각하는데 이 집은 천천히 즐길 수 있는 분위기라 휴게소 식당 같지 않아요. 여기서 20년 넘게 해왔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죠.”

입맛 까다로운 화물차 운전기사들에게 인정받은 집이다. 매콤하게 볶은 오징어·새우·홍합 등 해산물을 올린 돈가스가 독특하다. “돈가스에 딸려 나오는 밥을 남겨놨다가 볶은 해산물에 비벼 먹으면 ‘오징어 덮밥’을 먹는 느낌이에요. 음식 하나 가격으로 두 가지를 먹는 기분이죠.”

돈가스 9000원, 매콤한 해물 돈가스 1만2000원, 치즈 오븐 스파게티 9000원. 경기 이천시 부발읍 경충대로 1687 응암휴게소, (031)637-0437

가미

“커피 좋아하는 후배가 ‘드립커피 장인이 운영하는 경양식집이 부산에 있다’고 알려줘 출장 갔다가 찾아갔어요. 브레이크타임(점심·저녁 사이 쉬는 시간)에 갔는데, ‘인천에서부터 소문 듣고 왔다’고 하니까 돈가스도 만들어주시고 커피도 내려 주셨어요. 돈가스도 커피도 훌륭했어요. 커피를 얼음에 차갑게 내린 것과 따뜻한 것 2가지로 내려 주셨는데 ‘따끈한 커피보다 냉커피가 향이 오래간다’고 알려주시더군요.”

부산 여러 호텔에서 오래 일한 요리사가 운영하는 경양식집답게 모든 음식이 제대로다. 그러면서도 가격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저렴하다. 미국인 커피 전문가에게 배웠다는 주인이 직접 볶은 커피 원두만 사러 오는 손님도 있다.

돈가스 5000원, 함박스테이크 6000원, 정성스런 드립커피 3000원. 부산 부산진구 중앙대로743번길 6 지하 1층, (051)808-7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