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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기자가만난세상] 보고 싶은 할머니

입력 : 2021-02-26 22:54:59 수정 : 2021-02-26 22:54:58

 

지난 설 연휴, 봄날 같던 포근한 기운이 거리에 가득했지만, 도착한 요양병원 1층은 어두컴컴했다. 평소 같았으면 오가는 사람으로 붐볐을 병원 현관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로는 면회가 금지되면서 들어갈 수 없는 ‘금단의 공간’이 돼버렸다. 미리 전화한 덕분에 병원 현관 유리문 앞에 직원 한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할머니의 이름과 병실을 알려준 뒤 명절에 만든 부침개와 식혜, 나물 반찬, 과일 등을 잔뜩 담은 바구니를 건넸다. 올해로 미수(88살)인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3년째 입원 중이다.

“아이고. 왜 면회가 안 됩니까.” 음식을 건네고 돌아오는데 한 아주머니가 병원 현관문 앞에 쭈그려 앉아서 하소연하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한 번만 보고 싶다”며 울먹이자 직원은 어찌할 줄 모르면서 “이러시면 안 된다. 일단 앉으세요”라고 달랬다. 아주머니는 현관문 앞 의자에 앉아서 눈물만 훔쳤다.

이창훈 정치부 기자

할머니가 입원한 요양병원은 코로나19 최초 슈퍼확진자로 알려진 ‘신천지 31번’ 환자가 다녀간 예식장 바로 맞은편에 있다. 요양병원은 코로나19 1차 대유행 전인 지난해 1월부터 면회를 차단했다. 코로나19가 대구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할 때, 요양병원 내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할 때마다 마음을 졸였다. 지난해 7월 잠시 코로나19 확산이 잠잠할 때 병원에서 지정한 면회 장소에서 20분가량 짧게 할머니를 만난 게 가장 최근이다. 통화할 때마다 “괜찮아”, “잘 지내”라고 말씀하셨지만 ‘할머니를 못 보면 어떡하나’하는 불안한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했다.

26일 전국 요양병원·요양시설, 정신요양·재활시설의 만 65세 미만 입원·입소자와 종사자를 상대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할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기대와 함께 아쉬움이 교차했다. 백신의 안전성 논란에 정부가 만 65세 이상의 고령자는 우선 접종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최근 스코틀랜드에서 발표한 화이자·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회 접종의 효과를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80세 이상에서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바꿨다. 비대면으로 일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함께 모이는 것이 당연하다던 명절의 풍속마저 바꿨다. 가족은 무엇이며, 직장과 학교라는 형식 이전에 ‘업(業)과 공부’의 본질에 대한 화두가 우리 사회에 제시됐다. 그러나 비대면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은 정(情)이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없는 상황,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야만 했던 무수한 그리움과 슬픔은 ‘대면’이 아니고서는 풀릴 수 없다.

“아이고, 우리 새끼 왔네.” 어릴 때부터 그리고 다 커서도 할머니를 찾아뵈면 항상 처음으로 듣는 말이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가족들이 다시 면회하게 되면 가장 듣고 싶은 인사가 아닐까. 요양병원·요양시설 종사자들의 백신 접종이 끝나면 고령 환자들의 백신 접종도 어서 시작되기를, 가족의 입장에서 간곡히 호소한다.

 

이창훈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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