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하세요?-⑧]
- 방영덕 기자
- 입력 : 2021.02.13 21:01:57 수정 : 2021.02.14 09:16:49
[사진출처 : 연합뉴스]
로또 1등 당첨자들이 당첨되기 전 꼭 빚에 허덕이며 살아야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기자가 지금까지 만나거나 인터뷰 한 로또 1등 당첨자들은 대개 큰 빚을 진 채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이 많았다. 작년 6월 로또 1등에 당첨된 A씨의 사연을 처음 들었을 때 평범하다고 느꼈던 이유다. 지난 10일 만난 그는 당첨 전 별다른 빚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풍족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로또 1등에 뽑혀 탄 상금은 무려 35억원. 세금 33%를 떼고 난 뒤에도 23억원이란 막대한 돈을 수중에 넣게 됐다. 당장 갚아야 할 빚이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로또로 인생역전이 가능할 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기자가 다 흥분이 됐다. 그의 얘기를 더 들어봤다.
"당첨되기 전이나 지금이나 나홀로 사업을 조그맣게 하고 있어요. 처음부터 큰 돈을 벌려고 시작 한 게 아니어서...하지만 당첨된 후 마음이 한층 여유로워져서 그런지 돈이 더 잘 벌리는 것 같아요(웃음)."
외벌이였던 A씨는 로또 1등에 당첨되고 나서 오히려 맞벌이가 됐다. 아내가 하고 싶어했던 디자인 사업을 하게끔 도와주면서다. 큰 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혼자 벌다 둘이 버니 좋다고 했다. 아내 사업자금에 보태준 것 외에 대부분의 당첨금은 8개월째 그대로 통장에 넣어뒀다.
그가 말했다. "거창하게 무슨 인생역전을 하기 위해 로또를 구매한 게 아니에요. 친구들하고 재미삼아 산 게 시작이었고, 그러다 일주일을 마감한다는 느낌으로 혼자라도 만원어치씩 로또를 산 거죠." 그저 일주일 간 행복하자고 산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1등에 당첨된 게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본래부터 그는 마구잡이로 돈을 쓰는 타입이 아니다. 일례로 개인 사업을 시작하기 전 그는 오로지 체크카드만 썼다고 했다. 수중에 돈이 없는데 돈을 쓰는 것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개인사업을 하다보니 불가피하게 신용카드를 처음 발급 받아야 했고, 그게 5년전이라고 했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집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다고 했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지만 집주인이 좋아하지 않아 키울 수 없어 허전했고, 유기견을 후원함으로써 허전함을 채웠다. 실제로 남편이 로또 1등에 당첨된 후 아내가 한 일 중 하나가 바로 유기견보호 관련 후원금을 늘린 일. 둘 다 `안분지족(安分知足)` 유형에 가까웠다.
이유가 있었다. A씨가 조금만 돈을 벌어도, 로또 한 장에 일주일간 행복해도 좋아했던 이유 말이다. 부부는 둘다 `건강`을 크게 잃어봤다. A씨는 무려 1년간 병원에 입원했다. 하루에 3~4시간만 자면서 일하던 때 갑자기 하반신에 마비가 와서다. 잘 나가던 직장을 관둘 수밖에 없었다. 원인을 찾지 못해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아야 했다. "원인이라도 알면 희망이라도 생겼을텐데..."
그 때 결심했다. 건강만 다시 회복한다면 어떤 순간에도 감사하면서 살겠노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갑자기 아내가 아프기 시작했다. 큰 병은 아니었지만, A씨를 물심양면 뒷바라지 해왔던만큼 남편은 아내 병간호에 지극정성을 들였다. 한 번 건강을 잃으면 억만금을 줘도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코로나로 A씨의 수입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금전적으로 어려움이 커질 무렵, 거액의 로또 1등에 당첨이 됐다. 하늘이 도왔다. 당첨금을 탄 후에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란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인터뷰 내내 차분했던 그의 목소리가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여러 병원을 전전한 끝에 그는 병의 원인을 찾았고, 건강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 아내 또한 일상을 회복했다.
"정말이에요. 지금도 건강하게 오래 잘 사는 게 목표에요. 그래서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어요. 그러고보니 로또 1등 용지를 산 곳도 제가 운동 다니는 헬스장 근처 판매점이었네요. 운동하고 나와 아주 상쾌한 마음에 샀었죠(웃음)."
농담삼아 물욕이 정말 없는 것이냐고 물어봤다. 그것은 아니라고 했다. 아내와 함께 당첨금을 찾으러 간 날 즉시 ATM기에서 몇 백만 원을 인출해봤다. 수십억 당첨금을 받았지만 통장에 바로 입금되다보니 실감이 안나서였다. `차르르르르르르르륵` 정말로 그 많은 돈이 ATM기에서 뽑혀 나왔다. 그제서야 로또 1등에 당첨됐음을 믿게 됐다.
"그 때 뽑은 돈으로 아내에게 바로 명품백을 하나 선물했어요. 한번도 사준 적이 없었거든요. 아내가 너무 좋아했죠. 그런데 명품백을 안 들고 다니네요. 집에만 고이 모셔두더라고요(웃음)."
수십억 당첨금을 은행에 모셔둔 것은 그도 마찬가지. 기자가 보기엔 부부가 꼭 닮았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로또 1등 당첨을 경험했지만 이전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살려고 한다고 했다. 로또 구매도 계속했다. 일주일간의 행복을 위해 말이다. 인생을 살면 살수록 평범하게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임을 실감하는 요즘, 인생역전 대신 평범함과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마음이 더욱 그를 부럽게 만들었다.
[방영덕 매경닷컴 기자 byd@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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