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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

[사설]‘성범죄 정치인·정당엔 불이익’ 법안 깔고 뭉개는 국회

동아일보 입력 2021-01-28 00:00수정 2021-01-28 03:02

 

정치권의 권력형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입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는데도 국회가 관련 법안들을 제대로 심의조차 하지 않은 채 뭉개고 있다. 동아일보가 19∼21대 국회에서 발의된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을 전수 분석한 결과 성범죄 연루자의 피선거권을 제한하거나 재·보궐선거 귀책사유 정당에 선거비용 책임을 묻는 법안이 11건 발의됐다. 하지만 단 한 건도 처리되지 않은 채 폐기됐거나 낮잠을 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으로 실시하게 된 보궐선거에는 모두 838억 원의 혈세가 들어간다. 성추행이 없었다면 치르지 않았을 비용이다. 여기에 여성 인권 옹호에 적극적이었던 정의당의 대표마저 소속 의원을 성추행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정치권의 성도덕에 대해 국민은 크게 실망한 상태다.

 

성범죄 연루자에 대한 피선거권 제한은 20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짧게 논의된 적은 있다. 그러나 “선출직이기 때문에 국민이 판단하면 된다”는 등의 이유로 폐기됐다. 반면 국회는 공무원 군인 경찰관 교사에 대해선 임용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법안을 연달아 통과시켰다. 남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자신들에겐 한없이 관대한 내로남불 행태다. 그 결과 21대 총선 때 당선은 안 됐지만 성범죄자가 6명 출마하기도 했다,

재·보선 비용 문제도 여야 모두 말만 앞세울 뿐 구체적인 논의로 이어진 적은 한 번도 없다. 2017년 당시 더불어민주당 정당발전위원회는 부정부패로 재·보선 원인을 제공한 경우 해당 정당과 후보자에게 무공천 및 선거비용 보전 등 책임을 묻는 방안을 법제화하겠다고 했지만 흐지부지됐다. 민주당은 또 21대 국회 들어 국민의힘이 비슷한 취지의 ‘박원순, 오거돈 방지법’을 발의하자 논의를 외면했다. 국회가 이런 식이니 상대방의 문제가 자기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심전심으로 구체적인 논의를 뭉개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것이다.

 

여야 정치권은 이제라도 성범죄 연루자들이 정치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제도화하고 성범죄 사건 등에 따른 보궐선거 발생 시 공천 금지 또는 선거비용 문제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 권력형 성범죄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인내심은 한계를 넘은 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