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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무대

끝내 실패한 윤석열 찍어내기…文 ‘레임덕 차단’ 둑 무너졌다

[중앙일보] 입력 2020.12.25 18:20 수정 2020.12.25 20:39

 

기자

오현석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효력정지 결정이 내려진 다음날인 25일, 김남국(왼쪽부터), 신동근, 김종민, 김용민 민주당 의원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긴급 대표단-법사위원 비공개 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뼈를 깎아야 하는 시기다. 미봉책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면 큰일난다.”

 
25일 친문 성향의 여권 관계자가 전날 법원의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효력정지 결정에 대해 한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재가(16일)한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결정이 8일 만에 뒤집히면서, 이날 여권은 충격에 휩싸인 모습이었다. 현 정부가 임기 3년 7개월여 중 1년 반 이상 ‘검찰개혁’에 전념한 탓에 이번 결정의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해 ‘조국 사태’ 이후 ‘윤석열 OUT’은 여권이 그린 검찰개혁 그림의 대전제였다. 이날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이번 사태가 문재인 정부의 변곡점이 될 것”(초선 의원)이란 관측이 나왔다.
 
야권에선 문 대통령의 ‘레임덕(lame duck·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이제 폭정의 굿판은 끝났다”며 “레임덕은 시작되었다”고 적었다.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이날 공동 논평을 통해 “대통령에게 ‘추미애 법무부 장관 즉각 교체'라도 건의해야 대통령 레임덕의 속도라도 조절할 수 있음을 더불어민주당은 깊이 생각하길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가 사태 수습 카드로 내놓은 건 “중단 없는 검찰개혁”이었다. 이낙연 대표는 이날 오후 “대한민국이 사법의 과잉지배를 받고 있다는 국민의 우려가 커졌다”며 “검찰권 남용, 불공정 수사, 정치 개입 등을 막기 위한 검찰개혁을 강력하게 체계적으로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민주당에선 윤 총장에 대한 ‘탄핵’ 주장도 나왔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윤 총장 탄핵안을 준비하겠다”며 “검찰과 법원이 장악한 정치를 국회로 가져오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이어 “민주주의를 지키고 대통령을 지키는 탄핵의 대열에 동료 의원들의 동참을 호소한다”고 적었다. 정치권에서 “이번 사태의 파장이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민주당 당직자)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직진만 고집하는 민주당의 분위기 때문이다.    
 

“尹 탄핵” 주장까지…검찰개혁 정당성 ‘흔들’

 
이번 윤 총장 복귀 결정의 파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 1심 판결 선고 다음 날 내려져 더 컸다. 지난해 ‘조국 사태’가 여권이 검찰개혁 드라이브를 본격화한 입구였다면 ‘윤 총장 징계’는 여권이 설계한 출구였다. 민주당의 한 수도권 의원은 “검찰개혁의 시작과 끝이 결과적으로 법원에서 부정당했다”며 “개혁의 정당성을 다시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당장 검찰 개혁의 마무리 수순이 꼬인 것도 민주당 입장에선 곤혹스런 문제다. 당초 여권에선 ‘윤 총장 징계→내년 1월 검찰 간부 인사’ 순서로 윤석열 라인 정리 작업을 마무리할 거란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윤 총장 업무 복귀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추가적인 인사 조치를 감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으로 친여 성향이 뚜렷한 인사를 택하는 데도 부담이 커졌다. 지난 18일 야당의 비토권을 삭제한 공수처법 개정 이후 처음 열렸던 추천위가 추 장관의 강한 주장에 따라 후보 결정을 28일로 연기하면서 당내엔 “추 장관이 친여 성향이 뚜렷한 제3의 후보를 추천할 것”이란 전망이 돌았다.
 
‘검찰개혁 시즌2’의 동력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민주당은 내년에 ‘수사·기소권 완전 분리’를 골자로 하는 법 개정에 착수할 방침이지만 여론의 뒷받침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검찰개혁에 여러 요소들이있지만, 제도화가 매우 중요하다. 국회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로드맵을 만들어서 조속히 제시하고 실천에 옮길 것”이라며 ‘속도전’을 예고했다.
 

‘정권 수사’ 속도 붙나

법원의 검찰총장 징계처분 효력 집행정지 신청 인용에 따라 업무에 복귀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25일 낮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권은 돌아온 윤 총장의 수사지휘 방향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윤 총장의 임기가 사실상 보장되면서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과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등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에 속도가 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라임·옵티머스 사건'을 어떻게 마무리할지도 윤 총장의 판단이 필요한 문제다. 윤 총장은 지난 1일 복귀 직후, 원전 수사 관련 공무원들의 구속영장 청구를 곧바로 승인한 전례가 있다. 이날 낮 12시 10분쯤 출근해 부재중 업무 상황을 보고받았다.
 
이와 관련 민주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만약 울산 사건에서 뭐가 있었다면 총선 전에 터뜨리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 일각에선 이날 “검찰개혁 중단보다 더 위험한 게 정권을 겨냥한 수사”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그동안 침묵하던 사건 관계자 중에 입을 여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며 “검찰개혁이 정권 겨냥 수사의 속도를 조절하는 일종의 둑 역할도 했는데, 그게 무너진 것”이라고 말했다.
 

중도층 이탈 빨라지나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이 벌어질 때마다 하락 추세를 보였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2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제3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원회의에 참석한 모습. 뉴시스

 

 


결국 레임덕 현상이 뚜렷해질지는 지지율의 향배에 달려있다. 한국갤럽이 이날 발표한 2020년 월간·연간 통합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 국정수행평가는 총선 직후인 5월만 해도 긍정 67%·부정 25%로 긍정평가가 압도적으로 높았으나, 7~11월에 3%포인트 이내 경합을 벌였다. (자세한 사항은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긍정·부정 평가가 오차범위 내로 들어온 7월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채널A 사건’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며 이른바 ‘추·윤 갈등’이 시작된 시점과 일치한다.
 
윤 총장의 징계를 둘러싸고 갈등이 극에 달한 12월엔 문 대통령 긍정평가 39%, 부정평가 53%로 ‘콘크리트 지지율’이라 불리던 40% 선도 무너졌다. 윤 총장의 복귀에도 여권이 “중단 없는 검찰개혁”을 선언하면서, 향후 중도층 이탈이 가속화될 거란 관측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당 입장에선 정권 지지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집권 후반기에 지지층을 결집하겠다고 선택한 것”이라며 “하지만 코로나19 백신 보급 문제와 향후 검찰의 ‘정권 수사’ 결과에 따라 지지율이 급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끝내 실패한 윤석열 찍어내기…文 ‘레임덕 차단’ 둑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