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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추억어린 대모산 약수

 

 

 

 

 

 

 

 

 

 

 

다시 마셔보는 대모산 약수


대모산은 개포동 앞을 가리고 있는 안산이다. 정상을 산책하려면 개포동 주공4단지 아파트 쪽에서 대모산 정상으로 바로 올라가는 코스가 있고,  일원역이 있는 수서 아파트에서 대모산 자연공원입구를 들어서서 산허리를 감고 돌아 정상을 거쳐  다시 더 산행하려면 구룡산으로 가는 코스가 있다.
처음부터 구룡산 정상을 목표한다면 개포동 쪽에서 산을 타고 정상을 향하는 것이 코스가 짧고 쉽다.  비교적 완만한 코스로서 아름답고 강남의 시가지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산책로로서 평탄한 산행이 된다.

데모산은 정상은 구룡산 행 코스에서 옆에 비껴있다. 정상에는 해발 291.6m라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대모산은 산모양이 늙은 할미와 같다 하여 할미산 또는 대고산(大姑山)으로 불리다가, 조선 세종 때 태종의 헌릉이 자리하면서 어명에 의해 대모산(大母山)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옛부터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산모양이 여승의 앉은 모습과 같다 하여 대모산이라 하였다는 설과 구룡산 봉우리와 더불어 여성의 앞가슴 모양과 같다 하여 대모산이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광수산(光秀山)이라고도 불렸던 모양이다.

지금의 대모산은 강남구가 많은 시설투자로 지금은 서울 근교 어느 공원 떨어지지 아니하는 편의 시설들로 시민들에게 휴식을 제공하고 있으며, 공원 내 조림에도 많은 정성을 드리었고 우리야생화를 잘 활용하여 공원을 찾는 방문객들에게는 아름답고 기쁨 선물이 되고 있다.

개발 전 대모산은 원래 수서동 작은 자연 부락의 앞산으로서 보잘 것 없는 야산 이였다. 90년도 수서가 개발되기 전 자연부락의 주민들은 500년 전 경북 달성군 현풍에서 살던 밀양박씨가 이곳에 이주하여 삶의 터전을 잡아 살아온 우리농촌 전형적인 박씨 집성 농촌 이였다.
이곳이 얼마나 외진 곳인지 6.25사변 중 북한이 수도 서울을 점령하여 통치하여도 이곳까지는 행정이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그 만큼 서울과 동떨어진 외딴 마을 이였다.
블로그의 기억으로도 인근에 살아온 기억으로는 마을은 농토가 적고 교통이 외진 그런 마을이라 삶을 살아가기엔 눈물겨운 애환이 서려있던 마을 이였다.
지금은 주민들이 이주단지로 옮겨가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마을은 개발되어 서울에서 최고급 아파트 단지로 변한 지금을 생각해 보면 쌍전벽해 라는 말은 여기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당시에 있었던 것은 제대로 남아 있는 것 아무것도 없고 지형마저 변하여 아파트로 채워 버렸지만 그래도 나를 기쁘게 하는 것 하나 있었다.

일간지에서 서울시내 약수터에 이런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서울시는 올 2∼3월 서울시내 약수터 총 323곳의 수질을 자치구 및 공원관리사업소와 공동으로 검사한 결과 323곳 중 65곳(20.1%)이 마시기에 부적합한 시설로 판정됐다고  밝혔다. 부적합 시설 65곳의 주된 오염 원인은 ‘미생물 오염’(62곳), ‘건강상 유해물질 검출’(3곳), ‘심미적 영향물질 검출’(1곳) 등이었다.

반갑게도 맞이해주는 약수는 수질 검사표에 적합으로 표시되어 있었으며. 이곳을 떠난지 십년 세월이 흘러갔지만 지하 암반에서 흐르는 맑은 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고 물맛도 여전하였다. 이것이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로 아직 거두어 가지 아니함에 감사함을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었다.

이 약수터를 떠올리면 가슴을 저미는 추억이 있으니 비가 오나 눈이오나 먼 길을 마다하지 아니하시고 약수 물을 길어다 주시던 아버님의 애정 어린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것이 인생이 살아가는 한 단면이며, 나 또한 이런 모습으로 살다 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산천이 변하고 세상이 바뀌어도 우리의 삶의 정서에 무슨 변화가 없겠서요?

세월에 따라 인걸은 살아지고 산천도 인간이 개발이란 끝없는 과욕으로 자연은 파괴되어 내가 접하고 살았던 당시의 농촌마을 고유한 멋은 찾을 길 없이 변해버린 환경이 너무도 허전하고 가슴 아프게 하였다.

찌 들리는 가난 속에 살아왔지만 그래도 정과 한이 서려있던 당시의 마을의 모습이 그리워짐은 나만이 가지는 사치스런 생각일까?
땅거미 짙어오는 약수터를 뒤로한 채 꼬리를 물고 이어오는 지난날의 추억들을 나뭇가지마다에 사념의 꼬리를 달아두고 집으로 발길을 돌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