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미원조 썸네일형 리스트형 [한명기의 한중일 삼국지] 임진왜란·한국전쟁·BTS, 중국의 속내는 그대로였다 [중앙일보] 입력 2021.01.01 00:25 | 종합 23면 지면보기 항왜원조와 항미원조를 넘어 임진왜란의 판세를 바꿔놓은 제2차 평양성 전투를 그린 ‘평양성 전투도’(부분). 1593년(선조 26) 1월 명나라 이여송이 이끄는 명군과 조선군은 평양성을 탈환하는 데 성공한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임진왜란 당시인 1593년 1월 3일(음력), 선조는 의주 용만관(龍灣館)에서 명군 참모 유황상(劉黃裳)을 접견했다. 두 사람은 필담을 주고받았는데 유황상은 선조에게 일본이 쳐들어온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선조는 “명나라를 치는 데 동참하라는 일본의 협박을 거절하는 바람에 침략을 받았다”고 답한다.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다가 먼저 침략을 당했으니 명이 조선을 원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뉘앙스가 담긴 대답이..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