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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구

[박종인의 땅의 歷史] “흙으로 만든 국과 종이로 만든 떡을 누가 먹으랴!” [240] 실용주의 관리 서유구가 난세에 대처한 자세 ① 전주성 풍남문 /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12.16 03:00 “내 인생은 낭비” 관찰사 서유구 올해 복원된 전라감영 동헌 앞에는 낯선 돌이 두 개 서 있다. 하나는 가석(嘉石)이고 하나는 폐석(肺石)이다. 가석은 경범죄를 저지른 자를 그 위에 앉혀서 죄를 뉘우치게 하는 돌이다. 폐석은 억울한 백성이 그 옆에 서 있으면 관리들이 자초지종을 물어 사연을 풀어주는 돌이다. 행정과 사법을 동시에 담당했던 조선시대 지방관 통치 율법을 상징한다. 19세기 초 이 전라감영에서 만 19개월 근무했던 행정가가 있다. 1833년 4월 부임했을 때 나이는 만 69세, 고희(古稀)였다. 이 늙은 관찰사는 임기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이름하여 .. 더보기
[박종인의 땅의 歷史] “세상 보탬 되지 않는 자 가운데 글 쓰는 선비가 으뜸이다” [241] 실용주의 관리 서유구가 난세에 대처한 자세 ②/끝 전북 고창 청보리밭. 농민의 지혜가 담긴 땅이다. /박종인 박종인 선임기자 입력 2020.12.23 03:00 정도전과 서유구, 그리고 선비 고려 말기인 1375년 성리학으로 무장한 신진사대부 정도전이 전라도 나주 소재동으로 유배됐다. 유학자가 왔다는 소식에 노인 하나가 정도전을 찾았다. 마중 나온 종에게 유학자가 하는 일이 뭔가 묻자 종이 답했다. “음양과 오행, 초목의 크고 시듦, 삶과 죽음의 이치까지 통달해 아는 사람이외다.” 그러자 노인이 이리 답하곤 돌아가 버렸다. “실상이 없으면서 이름만 있으면 귀신도 미워한다고 했고, 스스로 어질다 하고 남을 대하면 남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알 만하구나.”(정도전 ‘삼봉집’4, ‘금남야인·錦南野人’..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