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원의 군사세계] 한국의 진짜 핵무장 잠재력은?
“한국은 핵무장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빠른 시일 내에, 심지어는 1년 이내에도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을 갖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미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서 이같이 밝힘에 따라 우리나라의 핵무장 잠재력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 핵무장 잠재력에 대해선 “6개월이면 가능하다”는 낙관론과 “1~2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신중론이 엇갈려왔다.
지난 2015년 미국의 핵군축 전문가 찰스 퍼거슨 미 과학자연맹(FAS) 회장이 발표한 이른바 ‘퍼거슨 보고서’는 조기 핵무장이 가능하다는 낙관론에 불을 지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핵무기 제조 능력은 북한에 월등히 앞선다. 한국 원자력 설비 용량은 세계 5위이고 운전 기술력은 세계 1위, 핵무기 제조 잠재력은 세계 10위권 내에 들어 있다. 이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에 버금가고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보다 높은 것이다.
◇ “월성 원전서 핵무기 4330개 분량 플루토늄 추출 가능”
한국의 레이저 우라늄 농축 기술은 세계가 주목할 만한 경지로 플루토늄이 없이도 단기간에 핵무장이 가능하다고 퍼거슨 보고서는 주장했다. 특히 경북 월성에 있는 4기의 가압중수로형 원자로에서 그동안 추출해 쌓아놓은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면 무기급 플루토늄 26t을 얻을 수 있다. 이는 핵무기 4330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월성 원자로에서는 매년 핵무기 416개를 만들 수 있는 2.5t의 준(準)무기급 플루토늄이 생산되고 있다. 증폭 분열탄이나 수소폭탄 제조에 필요한 중수소와 삼중수소도 상당량 확보돼 있다고 한다. 또 핵무기 제조 과정의 핵심인 고농축이나 재처리 시설도 자체 제작이 가능하고 핵물질, 핵탄두, 운반체도 자체적으로 확보돼 있다는 게 이 보고서의 판단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 등 일부 전문가들도 “한국은 마음만 먹으면 6개월 이내에 핵무기를 터뜨리는 기폭(起爆) 장치와 탄도미사일 등 투발 수단을 갖춘 핵무장이 가능하다”며 낙관론에 힘을 보태왔다.
그러면 실제로 6개월 내 독자 핵무장이 가능할까? 핵무기는 원료에 따라 우라늄탄과 플루토늄탄으로 나뉜다. 천연 우라늄 중 핵분열을 하는 우라늄 235는 0.7%에 불과한데 핵무기 원료로 쓰려면 이를 90% 이상으로 고농축해야 한다. 고농축 우라늄 1㎏을 얻기 위해선 1000t의 천연 우라늄이 필요한데 우라늄탄 1기 제조엔 고농축 우라늄이 15~20㎏가량 있어야 한다. 고농축 우라늄은 보통 원심 분리기를 활용해 얻지만 레이저를 활용한 최신 농축법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엔 원심분리기 시설이 없다. 다만 지난 2000년 최신 레이저농축법으로 0.2g의 순도 77% 농축 우라늄을 추출한 적이 있다. 이를 토대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레이저 농축 기술을 갖고 있어 언제든지 레이저농축으로 고농축우라늄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핵무기 개발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양으로 큰 의미가 없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플루토늄탄은 퍼거슨 보고서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월성 중수로 원전 때문에 독자 핵무장에 우라늄탄보다 유리한 방식으로 거론돼왔다. 중수로 방식인 월성 원전은 경수로 방식인 다른 원전에 비해 플루토늄 함량이 높은 폐연료봉이 나온다. 폐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뽑아내는 방법은 전기분해(건식), 습식 재처리(퓨렉스 등) 방식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기술적으로 크게 어렵지 않아 우리도 만들 수 있지만 현재 재처리 시설은 없는 상태다. 대규모 재처리 시설을 만드는 데에만 6개월~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플루토늄탄 1기 제조엔 과거엔 플로토늄 6~8㎏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기술 발전으로 4~6㎏ 정도면 가능하다.
◇핵기폭장치 등 개발 40년 이상 중단 상태
고농축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이 충분히 확보되더라도 이를 핵무기로 만드는 기폭장치 등 무기 기술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기폭장치 개발엔 100만분의 1초까지 타이밍을 맞추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 핵기폭장치 개발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비밀 핵개발 당시 추진됐지만 핵개발을 포기한 뒤엔 40년 이상 중단 상태다. 핵기폭장치 및 탄두 개발에는 국산무기 개발의 총본산인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참여할 수밖에 없는데 현재 국방과학연구소에 핵무기 관련 기구와 인력은 전무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핵개발에 대해서도 상당히 진척됐다는 시각과 함께 부풀려졌다는 평가도 있다. 한용섭 국제안보교류협회 회장(전 국방대 부총장)은 저서 ‘핵비확산의 국제정치와 한국의 핵정책’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핵개발이 마치 성공할 수 있었던 것처럼 ‘신화 만들기’가 있었고, 이 신화 만들기가 오히려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과 국제사회의 한국에 대한 불신 가중과 우리의 평화적 핵이용 정책 면에서 국익 손실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재처리 시설 도입 美와 협상 필요”
이에 따라 독자 핵무장에는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윤 대통령이 ‘1년 이내’를 언급한 것도 그런 기술 기반을 갖고 있다는 것이지 실제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핵자강론자’인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핵공학자와 기술자들을 선정해 팀을 만들고 시설을 건설하는 데에도 일정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3~6개월 내 핵무기 개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나친 낙관론에 빠져있기보다 우리 핵잠재력에 대한 냉철한 평가를 토대로 적극적으로 잠재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동북아외교안보포럼(이사장 최지영)은 지난달 30일 사용후핵연료 습식 재처리 시설의 국내 도입을 위해 미국과 협의해 나갈 것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외교부에 제출했다. 최 이사장은 “오는 2030년쯤 고리와 영광 원전 부지 내에 위치한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 시설이 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원자력 발전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워싱턴 선언’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 준수 등을 언급한 것이 핵잠재력 포기까지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핵잠재력 확보 추진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북 핵무기 보유량, 20~90기로 다양한 추정
현재 북한의 핵무기 수는 20~90기 범위로 추정하는 경우가 많다. 추정하는 전문가와 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작년 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6차 전원회의에서 핵탄두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라”고 지시해 북한의 비밀 고농축 우라늄 시설 등이 계속 활발하게 가동되며 핵무기 원료를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1월 한국국방연구원(KIDA) 박용한 선임연구원과 이상규 현역연구위원은 ‘북한의 핵탄두 수량 추계와 전망’ 보고서에서 “북한이 현재 보유한 핵탄두 수량이 80~90기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미국 핵군축 전문 민간연구소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발간한 ‘북한 핵무기 보유고-새로운 추정치’ 보고서는 지난달 북한이 핵무기 45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2022년 말까지의 북한 핵무기 수에 대해 “경우에 따라 북한이 만들 수 있는 핵무기는 35~65기 사이인데 중간값은 45기”라고 분석했다.
북한 핵무기는 숫자뿐 아니라 각종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전술핵탄두 등 소형화 측면에서도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북한은 지난 3월 ‘화산-31형’이라 불리는 소형 핵탄두 실물과 명칭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화산-31형은 직경 40~50㎝, 길이 90㎝가량으로 북한이 지금까지 공개한 핵탄두 중 가장 작다. KN-23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은 물론 600㎜ 초대형방사포, 무인수중공격정 ‘해일’, 화살-1·2 장거리 순항미사일, KN-24 미사일, ‘미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8종의 무기에 탑재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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