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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

[사설] 그리스의 고통스러운 부활, 포퓰리즘은 반드시 대가 치른다

조선일보

입력 2023.05.17. 03:14
 
2015년 7월 그리스 아테네 중심 신타그마 광장에서 국제 채권단의 경제 개혁안을 반대하는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경진 기자

지난 2012년 국가 부도 사태로 신용 등급이 최하위로 추락했던 그리스가 재정 긴축에 성공해 신용 등급 회복을 눈 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2019년 포퓰리즘 좌파로부터 정권을 넘겨받은 중도 우파 정부가 무상 의료, 연금 제도 등을 수술하며 강도 높은 구조 개혁을 펼친 덕이다. 적자에 시달리던 기초 재정 수지가 흑자로 돌아섰고, 50%를 넘던 은행의 부실 대출 비율도 7%로 떨어졌다. ‘유럽의 문제아’로 불리던 그리스가 극적으로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포퓰리즘으로 흥청대던 그리스가 치른 대가는 혹독했다. 재정 파탄으로 유로존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몰리자 우파 정부는 임금과 연금부터 대폭 삭감했다. 물가를 감안한 그리스의 올해 평균 임금은 2007년의 72% 수준이다. GDP는 위기 전보다 25%가량 떨어졌다. 이렇게 국민들이 고통스럽게 허리띠를 졸라맨 끝에 수출이 늘고 외국인 투자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2021년 그리스 수출은 2010년 대비 90% 늘었고, 외국인 직접투자는 20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경제 성장률은 재작년 8.4%에 이어 지난해도 5.9%에 달했다. 그래도 위기 전 수준을 회복하려면 10년 이상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포퓰리즘 중독증을 낳은 파판드레우 좌파 정권은 40여 년 전 집권하자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주라”며 최저임금과 연금 지급액을 끌어올렸다. 공무원 철밥통 일자리도 두 배나 늘렸다. 당시 그리스 국민은 60세 이전에 은퇴하고 퇴직 전 임금의 80%를 연금으로 받았다. 버는 것보다 많이 쓰는 재정은 단 한 세대 만에 파탄났다. 포퓰리즘 맛을 본 국민은 모든 개혁에 저항했다. 나라 재정은 파탄하든 말든 제 밥그릇만 지키려 했다. 그 혼란 끝에 더 물러날 곳이 없는 벼랑 끝에 몰리고 나서야 그리스 국민도 재정 긴축을 일부 수용하게 됐다.

우리도 불과 25년 전에 국가가 부도에 몰리는 외환 위기를 겪었다. 온 국민이 눈물 젖은 노력 끝에 위기에서 벗어났는데 포퓰리즘 정치인들이 나타났다. 선거용 인기 선심 정책으로 나라 살림을 거덜 내고 있다. 국가 부채가 1000조원을 넘고, 1분마다 1억여 원씩 빚이 늘어나는데도 재정을 망치는 포퓰리즘 법안들이 쏟아진다. 재정 적자를 일정 수준으로 묶는 최소한의 장치인 ‘재정 준칙’도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있다. 우리도 그리스 꼴이 되지 않는다는 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