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삼굴(狡兎三窟)>> 여제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던진 말입니다 ‘교토삼굴(狡兎三窟)’이란 ‘꾀 있는 토끼는 굴을 세 개 파놓는다 (꾀 많은 토끼가 굴을 세 개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면할 수 있었다..교묘한 지혜로 위기를 피하거나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는 뜻으로, 바로 맹상군의 이 일화에서 나온 말이다. 운(運)이란 없다. 준비(準備)와 기회의 만남이다 ! 사람들은 좋은 일이 생기고 일이 잘 풀리면 그저 운(運)이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은 절대로 운(運)을 믿지 않는다. 운(運)이란 말은 동양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양에서도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는 “뜻밖의 재미.기쁨”단어를 쓴다. 우리의 운(運)이란 말과 같은 뜻이라 해석해도 좋을 것 같다. 인생에서 대가(代價) 없이 요행(僥倖)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없다고 단언한다. 로또 복권도 사는 행위가 있어야 당첨될 기회가 있다. 요즘 TV 신문마다 집값폭락 불경기 기사다. 이런 소식을 볼 때마다 “절약해야지” 하는 생각이다. 돈벌이할 뾰족한 수나 재주가 없을 때는 절약이라도 해야 한다. 프랑스 생물학자 파스퇴르(Louis Pasteur)는 Coincidence only smiles on those who are prepared. “우연(偶然)은 준비된 자에게만 미소 짓는다”고 했다. 운(運)이나 요행(僥倖)도 항상 노력하는 사람에게 온다는 말이다. 농구에 “버저비터(Buzzer Beater)”가 있다. 시합 종료 신호와 함께 던진 공이 골로 성공한 것이다. 이것은 운(運)이 아니다. 평소때 연습과 시합 종료 신호와 함께 공을 던졌기 때문이다. 불교 용어인 “인과응보(因果應報)”는 자신이 행한 원인과 결과에 대한 보답이다. 삼장법사전(三藏法師傳)에 있는 이 말은 사람이 짓는 선악(善惡)의 인업(因業)에 응(應)하여 자신이 행한 대로 업(業)에 대한 대가(代價)를 받는 일을 말한다. 모든 만물은 인과응보(因果應報)다. 절대로 운(運)이 아니다. “교토삼굴(狡兎三窟)”이란 고사가 있다. 유향(劉向)이 지은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이야기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는 풍환(馮驩)으로 나온다. 맹상군(孟嘗君)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정치인이다. 풍환(馮驩)은 제(齊)나라의 재상(宰相)인 맹상군의 식객(食客)이었다. 맹상군은 왕족인 정곽군(靖郭君) 전영(田嬰)의아들로 이름은 전문(田文)이고, 맹상군은 그의 호이다. 풍환은 본디 거지였는데 맹상군이 식객을 좋아한다는 말에 짚신을 신고 먼 길을 걸어왔던 자다. 맹상군은 그의 몰골이 하도 우스워 별 재주는 없어 보였지만 받아주었다. 그러나 그는 괴짜였다. 맹상군은 그를 3등 숙소(宿所)에 배치했는데 고기 반찬이 없다고 늘 투덜댔다. 그래서 2등 숙소로 옮겨 주었는데 이번에는 수레가 없다고 불평을 하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1등 숙소로 옮겨 주자 그럴 듯한 집이 없다며 투덜댔다. 당시 맹상군은 설(薛:현재 山東省 동남지방)에 1만 호의 식읍을 가지고 있었다. 3천 명의 식객을 부양하기 위해 식읍 주민들에게 돈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도무지 갚을 생 각을 하지 않았다. 누구를 보내 독촉할까 궁리하고 있는데 1년간 무위도식(無爲徒食)으로 일관(一貫)했던 풍환이 자청했으므로 그를 보내기로 했다. 출발할 때 그는 “빚을 받고 나면 무엇을 사올까요?” 하고 물었다. 맹상군은 “무엇이든 좋소.여기에 부족한 것을 부탁하오.”라고 대답하였다. 설에 당도한 풍환은 빚진 사람들을 모아서 차용증을 하나하나 점검한 후 이자만 해도 10만 전을 받았다. 예상 외의 좋은 결과였다. 징수가 끝나자 그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맹상군은 여러분의 상환 노력을 어여삐 보고 모든채무를 면제하라고 나에게 분부하셨소.” 그리고는 모아 놓았던 차용증 더미에 불을 질렀다. 차용증은 모두 재로 변하고, 사람들은 그의 처사에 감격해 마지 않았다. 설에서 돌아온 풍환에게 맹상군이 “선생은 무엇을 사오셨는가?” 하고물어 보았다. 이때 풍환이 말하기를 “차시풍환왈 군지부족즉은의야 이소차서위군매은의래(此時馮驩曰 君之不足則恩義也以燒借書爲君賣恩義來:당신에게 지금 부족한 것은 은혜와 의리입니다. 차용증서를 불살라 당신을 위해 돈주고사기 힘든 은혜와 의리를 사가지고 왔습니다.)”라 하였다. 그러자 이말을 들은 맹상군은 매우 마땅찮은 기색이었다. 1년 후 맹상군이 제나라의 새로 즉위한 민왕(泯王)에게 미움을 사서 재상직에서 물러나자, 3천 명의 식객들은 모두 뿔뿔이 떠나버렸다. 풍환은 그에게 잠시 설에 가서 살라고 권유했다. 맹상군이 실의에 찬 몸을 이끌고 설에 나타나자 주민들이 환호하며 맞이했다. 맹상군이 풍환에게 말했다. “선생이 전에 은혜와 의리를 샀다고 한 말뜻을 이제야 겨우 깨달았소.” “ 교활한 토끼는 구멍을 세 개나 뚫지요[狡兎三窟]. 지금 경(卿)께서는 한 개의 굴을 뚫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아직 고침무우(高枕無憂:베개를 높이 베고 근심없이 잠.)를즐길 수는 없습니다. 경을 위해 나머지 두 개의 굴도 마저 뚫어드리지요.” 그래서 그는 위(魏)나라의 혜왕(惠王)을 설득하여 맹상군을 등용하면 부국강병(富國强兵) 을 실현할 것이며 동시에 제나라를 견제하는 힘도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마음이 동한 위의 혜왕이 금은보화를 준비하여 세 번이나 맹상군을 불렀지만 그 때마다 풍환은 맹상군에게 응하지 말 것을 은밀히 권했다. 이 사실은 제나라의 민왕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아차 싶었던 민왕은 그제서야 맹상군의 진가를 알아차리고 맹상군에게 사신을 보내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다시 재상의 직위를 복직시켜 주었다. 두 번째의 굴이 완성된 셈이다. 두 번째의 굴을 파는데 성공한 풍환은 세 번째 굴을 파기 위해 제민왕을 설득, 설 땅에 제나라 선대의 종묘를 세우게 만들어 선왕(先王) 때부터 전승되어 온 제기(祭器)를 종묘에 바치하도록 했다. 선대의 종묘가 맹상군의 영지에 있는 한 설혹 제왕의 마음이 변심 한다 해도 맹상군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이것으로 세 개의 구멍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주인님은 고침안면 하십시오” 이리하여 맹상군은 재상에 재임한 수십 년 동안 별다른 화를 입지 아니했는데 이것은 모두 풍환이 맹상군을 위해세 가지 보금자리를 마련한 덕이다. 이야기의 주인공 풍환을 《戰國策》제책편(齊策篇)〉에서는 ‘풍훤(馮諼)’으로 적고 있다. 이 고사는 불안한 미래를 위해 미리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로, 완벽한 준비 뒤에는 뜻하지 않는 불행은 찾아오지 않는다 |
늘청춘 카페에서 모셔온 글
'시대의 흔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처자" 한마디만 했다…日교도관 놀란 안중근 옥중생활 (1) | 2023.01.11 |
---|---|
尹지지 연설후 광주 친구에 “미워말라” 문자...돌아온 뜻밖의 대답은 (1) | 2023.01.09 |
文때 86그룹-시민단체 채웠던 자리, 尹은 기재부-검찰 출신 중용 (0) | 2022.12.30 |
감악산비, 제5의 진흥왕 순수비? 한 글자가 역사교과서 바꾸나 (0) | 2022.12.24 |
1942년 12월의 기억 (0) | 2022.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