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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전기료 억제 '부메랑'…'자금시장 블랙홀' 한전의 딜레마

김소현 기자기자 스크랩

입력2022.10.28 18:38 수정2022.10.29 07:51 지면A1
 
눈덩이 적자에도 연 6조 설비투자
자금여력 부족해 한전채 계속 발행 불가피
물량 부담에 韓銀 지원 길 터줬지만 미봉책 불과
한국전력이 올 들어서만 23조원 넘는 규모의 공사채를 발행하면서 시중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28일 서울의 한 금융정보회사 모니터에 한전채 금리가 표시돼 있다. /임대철 한경디지털랩 기자AAA급 회사채를 무더기로 찍어내며 자금시장의 ‘블랙홀’이 돼버린 한국전력이 전력망 유지를 위해서만 2036년까지 연평균 6조원가량을 투자해야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 역대급 적자로 운영자금조차 부족해 회사채 발행을 늘리고 있는 한전이 투자금 조달에까지 나설 경우 회사채 시장 경색을 더 악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8일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한전의 ‘전력계통 효율화 종합대책’에 따르면 한전은 올해부터 2036년까지 송·배전 시설에만 총 90조원(연평균 6조원)을 투자해야 한다. 이는 전력망 유지를 위한 필수 투자로 한전 연간 투자액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한전은 대규모 적자를 내면서 투자 여력은커녕 운영자금조차 빠듯한 상황이다. 한전은 지난해 5조8600억원의 영업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는 상반기에만 영업적자가 14조원을 넘었다. 올해 연간 기준으로는 최소 30조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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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한전은 회사채 발행을 대폭 늘리고 있다. 한전이 올 들어 지난 26일까지 발행한 회사채는 23조49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10조3200억원)의 두배가 넘고,2020년(3조4200억원)과 비교하면 7배나 된다.
게다가 최근 금리 인상에 따라 한전채 금리도 뛰고 있다. 3년 만기 한전채 금리는 올해 1월 초만 해도 연 2.30% 수준에 불과했지만 최근엔 연 5.90%를 넘기도 했다. 국채 수준의 신용등급인데도 금리가 연 6%에 육박하는 한전채가 쏟아지면서 회사채 시장에서 블랙홀처럼 자금을 빨아들이자 다른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 애를 먹고 있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은행이 한국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맡길 수 있는 적격담보증권에 한전채를 추가했지만 대규모로 쏟아질 물량을 감안하면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매달 2.5조원씩 찍는 한전채…"적자탈출 못하면 자금시장 교란 지속"
막대한 채권 발행해 현상 유지…전력 구입비 올해만 84조원
시장에서 ‘자금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지만 한국전력은 자금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선 회사채 발행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전 관계자는 28일 “애초 일정대로 회사채(한전채)를 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규 발행과 차환 발행을 포함해 한전은 올 들어 10월까지 월평균 2조5000억원가량의 한전채를 발행했다. 지금 추세가 이어지면 올해 남은 기간 5조원 이상의 한전채가 쏟아질 수 있다.
정부 대책,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부와 한국은행도 한전채의 시장 교란을 차단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 일단 한은이 전날 시중은행이 한은에서 돈을 빌릴 때 맡길 수 있는 적격담보증권에 은행채와 함께 한전채 등 공사채를 포함한 건 자금시장 경색을 푸는 데 일부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채권시장에 나온 한전채가 무리 없이 소화될 수 있도록 돕는 대책일 뿐이다. 한전의 회사채 발행을 줄여줄 근본 대책은 아닌 것이다. 한전 관계자는 정부 대책에 대해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라고 했다.
정부에선 한전채 발행 대신 대출을 유도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한전이 국책은행 등에서 돈을 빌리면 회사채 발행 수요가 줄어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회사채 발행금리가 뛰면서 저렴한 자금 조달 수단이라는 회사채의 장점이 많이 희석됐다”며 “자금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한전이 은행 대출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 대출금리는 회사채 발행금리보다 높은 게 일반적이다. 가뜩이나 빚 부담에 허덕이는 한전이 채택하기엔 한계가 있다.
정부가 한전에 재정을 투입하는 방법도 현재로선 가능성이 낮다. 정부는 2008년 한전이 2조8000억원에 육박하는 영업적자를 냈을 때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6600억원가량을 지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올해 한전 적자가 3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메워주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울 뿐 아니라 1조~2조원 정도 지원으론 자금난을 해소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오히려 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전은 자본금과 적립금을 합한 금액의 두 배만큼만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는데 올해 회사채 발행 한도는 91조8000억원이다. 하지만 대규모 적자로 내년엔 이 한도가 30조원 밑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현재 한전 부채가 54조원에 달하는 만큼 올해 결산이 끝나는 내년 4월 이후엔 회사채 추가 발행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근본 해법은 전기요금 인상
한전채의 자금시장 교란은 탈원전과 전기요금 인상 억제의 후폭풍이다. 한전 적자가 늘어난 건 한전이 발전소에서 전력을 사오는 가격보다 가정이나 공장 등에 파는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전의 전력구매가는 올 들어 ㎾h당 200원을 넘을 때가 많았고 지난 27일엔 267.69원을 기록했다. 반면 한전의 전력 판매가는 연초 ㎾h당 108원에 불과했고, 최근 전기요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h당 127원대에 그친다. 한전이 전기를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증권사들이 예상하는 올해 한전 매출은 68조9000억원이다. 그런데 한전이 기획재정부에 제출한 재정계획을 보면 올해 지출 예정금액은 전력구입비 84조3110억원, 인건비 1조7931억원, 경비(경상경비 복리후생비) 3983억원, 기타사업비 7조9604억원, 기타경비 7864억원 등 총 95조원을 넘는다. 여기엔 투자비는 빠져 있다. 전력망 유지를 위한 투자까지 감안하면 자금 수요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근본 해법은 전기요금 인상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기요금이 ㎾h당 10원 오를 때마다 한전 매출은 연 5조원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한전채나 대출을 통해 한전이 자금을 조달한다고 해도 이자로 천문학적인 금액이 또 들어가 한전이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고통을 수반하더라도 전기요금을 과감히 현실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소현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