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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이야기

“시장통은 겨울… 상인들 입금액 4분의 1토막”

 

신협 출장 수납 은행원들이 경동시장 경기 들여다보니…

입력 2022.07.25 03:00
 
대명신협 이상원(43·사진 맨 오른쪽) 과장과 윤희철(37·오른쪽에서 둘째) 주임이 19일 오전 경동시장 점포를 돌며 출장 수납 업무를 보고 있다. 이들이 수납한 돈은 5000만원 정도였다. 이 과장은“코로나 이전에, 많이 받을 때는 하루 2억 정도였다”고 했다. /남강호 기자

“드디어 다음 달이 적금 만기구나. 나 이번 달은 진짜 힘들어서 어렵게 준비했어.” 지난 19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청과물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67)씨는 5만원짜리 40장을 대명신협 이상원(43) 과장에게 건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과장은 매일 경동시장 골목을 돌면서 출장 수납을 하는 인근 2곳의 신협 지점(대명·경동신협) 직원 중 한 명이다. 총 8명인데, 회색 유니폼에 운동화를 신고 가방을 메고 아침부터 경동시장과 청량리시장에서 1인 이동 지점 역할을 한다.

혼자 가게를 지키는 시장 상인들과 매일 만나니 현장 체감 경기를 누구보다 빨리 느끼는 게 이 출장 수납원들이다. 이날 이 과장이 받은 금액은 상품권을 포함해 5000만원 정도에 그쳤다. 코로나 이전에 경기가 좋을 때에는 하루 2억원을 넘겼다고 한다. “요즘은 이 정도도 비교적 많이 들어온 날에 낀다”고 했다. 2000만~3000만원에 그치는 날도 많다고 했다. 약령시장을 담당하는 경동신협 정재영(30) 주임은 이날 2000만원 정도를 받았는데, 많이 받을 때의 3분의 1정도밖에 되지 않는 금액이라고 했다. 정 주임은 “여름은 약재상들엔 비수기이기도 하지만, 코로나 거리 두기가 해제된 것이 별로 체감이 안 된다. 받는 금액을 보면 아직 겨울에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이다”라고 했다.

◇시장 상인들의 PB(프라이빗뱅커)

오전 시간이라 아직은 한산한 시장. 상인들은 이들이 오자 기다렸다는 듯 준비한 돈을 입금하고, 필요한 돈을 찾았다. 5만~10만원 정도의 소액을 매일같이 맡기는 상인이 절반 이상이었고, 전기료 등 공과금 수납을 하는 곳도 있었다. 돈을 찾고 맡긴 내역을 통장에 손으로 일일이 적는 정겨운 풍경도 남아 있었다.

출장 수납원들은 매일같이 아침 9시부터 오후 3~4시까지 하루 6~7시간 동안 맡은 구역을 돌며 출장 수납 업무를 본다. 경동시장과 청량리시장에서 이들이 관리하는 점포는 약 1200개 정도고, 수납원들은 평균 하루에 점포 120~150개를 돈다.

얼핏 보기에 출장 수납원들의 업무 대부분은 입출금, 송금, 잔돈 교환, 공과금 수납 등 기본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출장 수납 직원들이 담당 상인들의 PB(프라이빗뱅커) 노릇을 하고 있다. 출장 수납 10년 경력의 이상원 과장은 “상인 고객들이 가족들의 계좌 관리도 한꺼번에 맡기는 경우가 많아, 고객들 집안 사정까지 대략 다 알게 되는 것 같다”며 “심지어 곗돈 계좌까지 관리하면서, 때 되면 곗돈을 계원별로 봉투에 넣어 돌려드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이 과장은 “신용 상태가 좋지 않은 상인들을 위해 대출을 받아주었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며 “신용 상태상 원래는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분들도, 수납원들이 봤을 때 상환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어느 정도 재량으로 대출을 내 주기도 한다”고 했다.

◇시장 골목 경기는 여전히 차갑다

청량리종합시장이 자체 집계한 올해 매장별 월평균 매출은 약 150만원 정도라고 한다. 코로나 거리 두기 시절에는 100만원까지 떨어졌다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코로나 지원금이 뿌려졌을 때 잠깐 한 달 정도 150만원 정도의 매출이 나오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때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다.

코로나 이전엔 월 매출이 약 200만원 정도였다고 한다. 청량리종합시장 상인회의 홍보이사를 맡고 있는 이상열(45)씨는 “요즘 시장의 하루 유동 인구는 5000명 정도밖에 안 된다. 코로나 이전에는 1만 3000명 정도였으니 60%가 줄었다”고 했다.

건강식품 판매업체 ‘경동상사’를 운영 중인 함승철(41)씨는 “약재상의 경우 수입품을 주로 다루게 되는데, 가격이 폭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내가 파는 품목 중에선 특히 건과일 수입 가격이 평소 가격의 50%가 넘게 뛰었다”며 “우리는 500원, 1000원도 큰 마음 먹고 겨우 올리는데, 손님들이 ‘왜 이렇게 비싸졌냐’ 하면서 발걸음을 돌릴 때 마음이 찢어진다”고 했다.

현금 사용이 줄고, 모바일 뱅킹이 늘면서 이런 출장 수납은 점점 사라져 가는 추세다. 은행에서는 거의 보기 어려워졌고, 신협이나 새마을금고 정도가 명맥을 잇고 잇다. 신협도 코로나 이전엔 서울 지점 총 116곳 가운데 41곳이 출장 수납 업무를 했지만, 지금은 28곳으로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