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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北 심야열병식, 화려한 조명으로 피폐한 현실 못 감춘다

[사설]北 심야열병식, 화려한 조명으로 피폐한 현실 못 감춘다

입력 2022-04-27 00:00업데이트 2022-04-27 09:28
 

 

북한이 25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한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주요 전략무기들을 동원했다. 사진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부인 리설주 씨와 함께 군부대를 사열하는 모습. 평양=노동신문 뉴스1·AP 뉴시스
북한이 그제 밤 항일빨치산 결성 9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열병식을 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래 열두 번째 열병식이자 네 번째 야간 열병식이다. 김정은은 연설에서 핵무기를 전쟁 방지용을 넘어 자기네 근본이익이 침탈당할 때도 사용할 수 있다며 남측과 미국을 향한 핵 협박을 한층 노골화했다. 나아가 그는 “최대의 급속한 속도로 핵 무력을 강화해 각이한 작전 목적과 임무에 따라 각이한 수단으로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이번 열병식은 내부적으로 체제 결속을 다지고 대외적으로 무력을 과시하기 위한 북한식 쇼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병력 2만 명이 참여한 역대 최대 규모였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각종 신형 무기도 총동원했다.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폭죽과 조명시설, 대형 스크린은 물론이고 김일성광장 앞 대동강을 가로질러 주체탑광장까지 이어지는 부교(浮橋) 2개도 설치했다.

김정은은 ‘핵 무력의 완성자’로서 경배와 추앙을 넘는 공포와 긴장을 연출했다. 눈속임용 환상으로 주민을 홀리는 독재체제의 전형적 극장국가 행태다. 특히 그 존재 자체로 전쟁 억지의 수단인 핵무기를 언제든지 어떤 용도로든 사용하겠다는 미치광이 언사로 대외 위협의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 갈수록 제재와 압박을 강화하는 미국, 선제타격까지 경고한 새 한국 정부를 향한 장기 대결 선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밤중 화려한 조명으로 오늘날 북한이 처한 초라한 현실을 감출 수는 없다. 지금은 세계적인 신냉전 기류에 올라타서 기세 좋게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까지 위협하지만 중국·러시아에 종속된 김정은 정권의 운명이 순탄할 수는 없다. 핵무기가 주민들의 고단한 삶을 달랠 수도, 굶주린 배를 채워줄 수도 없다. 요란한 허세로 채워진 병정놀이로는 민심의 이반을 막지 못하고 자멸을 재촉했을 뿐임은 과거 여러 독재자의 말로가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