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이 권영세에 "형님"하는 이유...두 서울대생 '연대 도서관 추억' [尹의 사람들]
입력 2022.03.18 05:00
업데이트 2022.03.18 09:06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선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에서 권영세 선대본부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권영세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43년 지기다. 국회사진기자단
“듬직해 보이는 친구 한 명 스카웃해볼까 하는데….”
1979년 서울대 법대 형사법학회 모임이 한창이던 서울 관악구의 허름한 막걸릿집. 당시 학회장이던 3학년생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현 인수위 부위원장)이 불쑥 눈여겨보던 신입생 이야기를 꺼냈다. “듬직해 보인다”는 신입생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었다.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학회생들의 말에 권 의원이 윤 당선인을 데려왔고, ‘43년 지기’ 인연이 시작됐다.
사람 만나고, 술 마시고, 토론하기를 좋아했던 두 사람은 서울 관악구 일대를 돌며 어울렸다. 그러다가 정신이 번쩍 든 권 의원이 1980년대 초 고시 공부를 결심했다. 권 의원의 ‘고시 선언’에 윤 당선인이 “형님 이왕 공부할 거면 연세대 도서관에서 같이 하시죠”라고 권했다. “왜 연세대냐”는 권 의원의 물음에 윤 당선인은 “형님 집이 마포 아닙니까. 가까운 곳에서 공부해야 시간도 절약하잖아요”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렇게 윤 당선인과 권 의원, 이수정 경기대 교수의 남편인 이은재 변호사가 연세대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했다.
1983년 사법시험(25회)에 합격한 권 의원과 이 변호사가 먼저 도서관을 떠났다. 9수를 한 윤 당선인은 8년 뒤인 1991년 사법시험(33회)에 합격했다. 당시 권 의원이 근무하던 강릉지청 검사실에 사법연수생인 윤 당선인이 찾아와 회포를 풀었다고 한다. 둘의 인연은 그 후로도 쭉 이어졌다. 2013년 주중대사로 임명된 권 의원의 송별회에 당시 여주지청장이던 윤 당선인이 참석하기도 했다.
오랜 인연 때문에 지금도 사석에서는 윤 당선인이 권 의원을 “형님”이라고 편하게 부른다고 한다. 당 관계자는 “권 의원은 사석에서나 공적인 자리에서나 윤 당선인에게 깍듯하게 존칭한다”고 전했다.
尹 위기 때 구원투수 등판…尹 “고생했고 고맙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6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한 한 식당에서 안철수 인수위원장, 권영세 부위원장 등과 함께 오찬을 하고 있다. 사진은 윤 당선인이 권 부위원장에게 김치찌개를 덜어주는 모습. [사진 국민의힘]
정치인과 검사로 전혀 다른 길을 걷던 두 사람은 지난해 윤 당선인이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 다시 만났다. 윤 당선인이 지난해 3월 검찰총장을 그만둘 때만 해도 권 의원은 일부러 연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랜 친구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였다. 하지만 결국 윤 당선인은 지난해 7월 30일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했고, 당시 당 대외협력위원장인 권 의원이 윤 당선인의 입당서를 받아들었다. 권 의원은 당시 만남을 두고 “참 오래 돌아왔다”고 했다.
외부 후보들을 영입하는 대외협력위원장인 권 의원은 대선 경선 때는 중립을 지키려 윤 당선인과 거리를 뒀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원톱 체제’였던 선대위에서도 특보단장을 맡아 중심에서 비켜나 있었다. 하지만 윤 당선인이 선대위 해체를 선언하는 등 위기에 몰리자,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당시 김종인 위원장과 결별한 윤 후보가 권 의원을 찾아가 거두절미하고 “선대본부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했고, 권 의원이 바로 수락했다. 당 관계자는 “지지율 하락 등으로 당이 어수선했는데, 권 의원이 오자마자 중심을 잡았다”고 회고했다.
3월 9일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윤 당선인은 “고생했고 고맙다”고 말했고, 권 의원은 “표표히 물러나 쉬겠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며칠 뒤 윤 당선인이 “인수위 부위원장을 맡아달라”고 또 부탁했다. 수차례 거절했던 권 의원은 “인수위까지는 쉬기 글렀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어 수락했다고 전했다.
권 의원을 잘 아는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선거에서 중책을 맡을 때마다 성과를 낸 정치인은 드문데, 권 의원이 그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권 의원은 2012년 총선에서 박근혜 비대위 사무총장을 맡아 공천을 주도, 한나라당의 153석 승리를 이끌었고, 같은 해 대선에서 박근혜 선대위 상황실장을 맡아 1등 공신이 됐다. 8년간 국회를 떠났던 그는 국민의힘 선대본부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해 2022년 대선을 진두지휘했고, 윤 당선인의 승리를 이끌었다.
쓴소리맨, 포커페이스…차기 정부 핵심 부상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월 2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우리가 윤석열이다!" 국회의원 및 원외당협위원장 필승결의대회에서 권영세 선거대책본부장과 대화하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권 의원에게는 ‘쓴소리맨’이라는 별명도 있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지난해 서울 보궐선거가 끝난 뒤 당을 떠나면서 국민의힘을 “아사리판”에 비유하자, 권 의원은 “마시던 우물에는 침 뱉지 마시라”고 저격했다. 올 1월 홍준표 의원이 윤 당선인을 만나 보궐선거 전략 공천을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자 “구태를 보인다면 지도자 자격은커녕 당원 자격도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야권 후보 단일화 국면에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비난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겨냥해 “사감이나 사익은 뒤로하라”고 일침을 날렸다.
권 의원은 윤 당선인이 대선 기간 각종 논란에 휩싸였을 때도 수차례 독대를 요청해 직언했다고 한다. 권 의원은 이에 대해 “43년 지기인 내가 직언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중요한 순간에 직언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국민의힘 권영세의원은 누구.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권 의원은 여의도의 ‘포커페이스’로도 통한다. 쉽게 흥분하거나 동요하지 않는다고 주변에서 붙인 별명이다. 유명한 일화도 있다. 지난해 7월 14일 대외협력위원장을 맡았던 권 의원은 장염이 심하게 걸려 식사도 못 하고 탈수 증상으로 앓아누웠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야권 대선 주자로 떠오른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의 ‘달개비 회동’이 급하게 잡혔다. 국민의힘 당직자는 “걷기도 힘들어하던 권 의원이 막상 최 전 원장과 회동하고 브리핑할 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며 “당내에서 ‘역시 권영세’라는 반응이 나왔다”고 전했다.
권 의원은 차기 정부의 핵심 실세로도 거론되고 있다. 대통령비서실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고, 국가정보원장 얘기도 나온다. 또 당 원내대표에 도전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권 의원은 17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은 인수위 업무가 1순위다. 나머지 계획은 백지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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