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리학자로 고려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지오그래피’(푸른길)에서 고구려가 수당의 침공을 막아낼 수 있었던 이유로 땅의 생김새를 뜻하는 ‘지절’(肢節)을 꼽는다. 산지가 많은 땅에 자리한 고구려가 지절을 제대로 이해하고 방어에 적용했다는 것. 고구려에는 산성이 200여 개에 달했다. 특히 산의 능선과 골짜기를 이용한 포곡형(包谷形) 산성이 주류였다. 고구려는 산성 안에서 적을 상대함으로써 적은 병력으로도 방어에 성공했다. 통치체계가 우수하고 상무정신이 투철한 군사강국이었다는 점도 주효했지만, 수당의 침공루트에 지절을 고려한 산성을 구축해 맞선 전략이 승리의 비결이었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
지절률이 높은 땅은 대개 다양한 문명이 생긴다. 예컨대 프랑스는 센강, 루아르강, 론강 등 강의 수가 많다. 이 때문에 각 지역의 특색이 다양하고 하나로 통일될 가능성이 낮았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했기에 다른 생각을 가진 이의 입장과 권리를 이해하는 관용(톨레랑스)의 정신이 발달했다. 독일에 비해 음식 종류가 다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저자는 산악, 고원, 평원, 사막, 바다처럼 다양한 지형이 섞인 땅을 ‘잘생긴 땅’이라고 부른다. 서로 다른 문명이 섞이며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것.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가 문명의 발상지로 꼽히는 것도 잘생긴 땅이기 때문이다. 인류 문명이 메소포타미아에서 동쪽이 아닌 서쪽으로 확산, 발달한 이유도 지절률과 관련이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 메소포타미아 서쪽인 지중해 동부 에게 해와 그리스 일대의 지절률은 높지만, 동쪽인 중앙아시아는 지절률이 낮다는 것이다. 문명의 발달과정을 땅의 생김새로 풀어내는 시도가 신선하다.
이호재기자 hoho@donga.com
'시대의 흔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성호의 예수뎐] 1층은 유대교, 2층은 기독교…지상의 마지막 밤, 최후의 만찬 (0) | 2022.02.19 |
---|---|
“대통령 6명 장례… 관 없앤 ‘법정스님 다비’ 인상적” (0) | 2022.02.17 |
끔찍한 패륜, 푸틴식 '하이브리드 전쟁'의 처참함 (0) | 2022.02.08 |
[인보길 칼럼] 2월의 건국 드라마 <2월폭동과 김구>--간첩이 김구 성명서 공동작성했다? (0) | 2022.02.06 |
무령왕릉 근처 무덤 벽돌에 새겨진 7글자... 역사적으로 무슨 의미? (0) | 2022.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