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일 칼럼] 김건희 "박근혜는 진보 아닌 보수가 탄핵했다"
이 한 마디가 오늘의 한국 정치의 모든 걸 설명해 준다… 尹과 安은 합당하고 단일화하라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입력 2022-01-20 17:54 | 수정 2022-01-21 10:41▲ ⓒMBC 유튜브 채널 캡처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진보가 한 게 아니라 보수가 한 것이다". 윤석열 후보 부인 김건희 씨가 어느 좌익 매체 촬영 기자에게 한 말 중에서도 아주 절묘한 구절이다. 이 한 마디가 오늘의 한국 정치의 모든 걸 설명해 준다.
극좌 혁명 운동권은 으레 박근혜 대통령을 내쫓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들이 그러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탄핵은 보수 일부가 거기 앞장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중에 바른미래당을 만들었던 탄핵파 야당 정치인들, 그리고 세월호 당시 '박근혜 7시간'을 두고 온갖 거짓과 조작으로 정권 타도를 부추겼던 미디어, 예컨대 최순실(최서원) 태블릿 PC 건(件)을 조작한 유력 언론의 역할이 그러했다.
이들이야말로 박근혜 탄핵의 주모자급 동업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자유민주 사회에서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할 상궤(常軌)의 비판, 사실과 진실에 기초한 정도(正道)의 비판을 넘어, 선정(煽情)적 방식으로 '탄핵의 겉모습을 한 극좌 급진과격 혁명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게 되었다. 선배격인 필자도 그 당시의 집단 무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보수 일부의 이런 선택이야말로 오늘의 한국 정치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었다. 정치·사회·문화 권력이 온통 주사파 운동권에 장악당해 1948년에 세운 대한민국이 과연 존속할 수 있겠느냐 하는 위기가 닥친 것도, 따지고 보면 보수 일부가 선두에서 선동한 촛불혁명 탓이다.
보수 일부가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에 좌익 직업혁명가들의 밀실 음모가 대규모 사태로 확대될 수 있었다. 보수 일부는 결국 급진과격파도 못되면서, 프랑스 혁명 때의 급진과격파 자코뱅당의 득세를 자청해서 도와준 꼴이 되었다. 해학적인 현상이었다. 급진과격파 세상이 되면 자신들이 제1착으로 죽는다는 걸 모른 그들.
이들의 선택은 오늘날 목격되는 보수 우파 진영의 심각한 내분의 원인이기도 하다. 보수 우파가 분열해 김무성·유승민·이준석·홍준표 류(類)의 주도권이냐, 아니면 이에 반대하는 측의 주도권이냐의 첨예한 내상(內傷)을 앓고 있는 것도, 바로 그들 보수 탄핵파의 처신 탓이다. 이 균열(龜裂)은 대선 국면에서뿐 아니라 그 후의 정치과정에서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예를 들어 국민의힘의 윤석열 후보가 설령 당선될 경우라 하더라도, 이준석을 앞세운 탄핵 정파와 그 엄호세력은 재빨리 윤석열을 포위, 고립시켜 자신들이 당권과 요직과 공천권과 인사권을 행사해 실질적인 권력 블록으로 등장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각제 개헌을 추진해 의회의 일정 지분을 보유한 권력의 한 축이 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건 단견이다. 좌익은 내각제를 받아들이는 대가로, 향후의 남북연방제를 전제한 '8도 독립' 수준의 남한 연방제를 꾀하려 할 것이다. 이는 보수 전체의 지리멸렬, 대한민국 지리멸렬의 시작이 될 것이다.
이런 전망과 우려가 조금의 개연성이라도 갖는다면, 탄핵파와 생각을 달리하는 자유민주 대한민국 세력은, 그리고 설령 대통령이 되더라도 자칫 탄핵파에 의해 '식물 대통령'이 될지도 모를 윤석열 후보로서는, 집권 과정뿐 아니라 집권 이후까지도 포괄할 전체적인 승리의 틀을 짤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직은 선거에서 살아남을지도 알지 못할 불확실성 속에서 어떻게 그런 것까지 생각하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준석을 내세운 광의의 탄핵 세력은 그런 장차의 생존전략까지도 이미 조직적으로 짜놓았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그래서 죽 쒀서 개 줄 일은 안 당해야 할 것 아닌가?
개한테 주지 않으려면, 윤석열·안철수 두 후보가 주변의 훼방꾼들을 물리치고 직접 만나 담판하고 그 결과를 군중 앞에서 둘이 손잡고 치켜세우며 극적으로 발표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으면 한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당 대 당' 합당, 당명 변경, 비대위 체제 전환, 이준석 당 대표직 소멸, 이어서 그의 성(性) 상납 수사, 국민의힘 책임당원들의 이준석 탄핵 움직임 등 여러 가지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이준석이 불어대는 3자 필승론처럼 파괴적인 깽판 치기는 또 없다. 그건 정권교체를 원치 않는 적(敵)의 척후병(斥候兵) 같은 반역질이다. 윤 후보는 그따위 소리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안철수는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고, 윤석열은 넉넉히 베푸는 덕을 배워야 한다.
'안철수 국무총리' 제의는 불가능한 것인가? 공동정부론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이번에 이런 방식으로 압도적으로 이겨놓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돌아오지 않을 강을 건널 공산이 너무 크다. 두려운가? 그러면 합당하고 단일화하라.
윤석열 후보가 주변의 "이준석 내치라"는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이준석을 얼싸안는 장면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윤석열이 저토록 힘이 빠졌는가?"하며 의아해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선거 기간에 당내분열을 한사코 피하려 한 윤석열 후보의 고충을 고려할 때는 그걸 새삼 탓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럼에도, 윤석열 후보와 자유민주 세력이 탄핵 정파의 집요한 생존전략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중요할 듯싶다. 맞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한 것은 진보가 아니라 보수였다. 암초는 밖이 아니라 보수 안에 있었다.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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