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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흔적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토대를 이룩한 두 대통령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토대를 이룩한 두 대통령 

김충영 국방대학교 명예교수/한국시니어거과기 회원 2021년 12월 25일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941년 미국에서 JAPAN INSIDE OUT(일본의 가면을 벗긴다)를 저술하여 “일본은 반드시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고 역설하여 이 책이 나온 지 넉 달 뒤에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여 미국 정치인들은 놀라게 했다. 1954년 이 책을 한국어 판을 내면서 서문에 “일본인은 옛 버릇대로 밖으로는 웃고, 내심으로는 악의를 품고 있어서 교활한 외교로 세계를 속이는” 민족이라고 하고 미국이 일본과 친선하라고 권고한다고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한국은 일본 강점기를 벗어났으나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었고 더구나 한국국민들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지식 또는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한국국민을 자유민주주의 정치로 이끌었으며 박헌영이 남한을 폭동으로 공산화를 시도하여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일본 강점기 순사였던 인사를 등용하여 공산주의자들을 이 잡듯이 잡자, 방헌영은 견디지 못하고 이북으로 넘어갔다. 현재 북한 동조자들은 이를 두고 일제 강점기간 친일파가 정리가 안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토대를 구성하는 중에 625사변이 일어나 북진통일을 구호로 국민들을 독려했다. 그 동안 국민방위군 사건, 부정선거 등으로 급기야 419의거가 일어나 “국민이 원한다면 물러나야지” 하고 하와이로 망명했다. 아무것도 없는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토착화 시킨 공로는 이승만 대통령이 아니면 어려울 것이라고 역사가들은 생각하고 있다.
1950년대에 어떤 영국기자가 “한국에서 민주주의 정책 실현은 쓰레기장에서 장미꽃을 피우는 것이나 같다.”라고 평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아무 것도 갖추지 못한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심었고 1965년 7월 19일 하와이 한 노인 요양원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뒤이어 일본 육사와 한국 육사를 나오고 여수 공산주의 폭동사건에도 연루되어 있었던 박정희 소장이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잡았다. 그는 독립 운동한 경력도 없고 군에서 6∙25 때 혁혁한 공도 없었다. 군사혁명 전에 군에서 하극상 그룹으로 따돌림을 받았다.
세계경제학자들은 자유민주주의 경제체제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였지만, 어느 경제학자도 후진국, 저개발국의 경제개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한국은 일본 약탈 식민지 정책 그리고 625 전쟁으로 한국 경제는 바닥이었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군사혁명정부가 기간산업에 투자하려고 했으나 국민자금도 전무했다. 더구나 어느 나라도 한국에 돈을 투자할 나라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돈을 빌려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유리한 점은 미군 참여로 미국의 자유사상이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외국 유명 경제학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가를 물었을 때 그들은 뾰족한 묘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다만 한국에 양질의 노동력이 풍부하다는 말을 귀담아 들었다. 사실 당시 양질의 노력은 풍부했으나 직장이 없어서 문제가 많은 시절이었다. 독일 에르하르트 수상은 젊은 박정희 대통령과 그 수행원들이 나라 경제를 살리려고 동분서주 하는 것을 보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먼저 산업도로 건설과 제철공장 설립을 조언 했다.
한국의 양질의 노동력을 발판으로 독일 광부와 간호사 파견으로 얻은 차관, 월남파병으로 얻은 자금, 그리고 중동 노동력 파견으로 획득한 자금으로 경제 개발에 착수하면서 노동력 수출로 물고를 트기 시작했다. 극심한 반대를 물리치고 한일협약으로 얻은 일본 청구권 자금으로 당시 경제 상태로는 상상이 가지 않는 포항제철, 창원 중공업단지, 그리고 조선공업을 적극 지원했다. 그리고 새마을운동으로 국민들의 호응을 유발하여 발전소, 고속도로, 항만시설 등 산업기반 시설을 확충했다. 산림녹화, 땜 건설로 농촌의 생산성을 높이는 기반을 닦았다.
추진과정에서 유신헌법, 반대세력 철저히 배척, 급격히 성장하는 과정에서 공무원들의 부정부패, 대기업 및 중소기업들의 노동착취 등 폐단이 비일비재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고급 공무원의 부정은 단호하게 처리했다. 이렇게 하여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세계를 놀라게 하고 경제학자들은 박정희 후진국 경제개발 모델이라 칭했다. 그런데 궁정동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 되고 말았다, 박대통령의 사후 재산은 거의 없었다. 그는 국가 경제에 혼신하고 산화했던 것이다.
진정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은 주권도 자원도 없는 이 땅에 민주주의 토대를 쌓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땅에 경제를 일으킨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로 몰거나 이들 두 대통령을 보수 골통으로 개 무시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사람들이며 북한 공산독제에 호응하는 무리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현재 문대통령은 퇴임 후 월 1390만원 연금을 받는다고 하는데, 이승만 대통령을 국가를 위해 노력만 했지 아무 것도 없이 해외 요양원에서 슬 슬이 승하했으며,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 경제 건설에 동분사주 하다가 시해된 후에 대통령이 되기 전 살았던 사저만 달랑 남았었다. 두 대통령을 무시하고서는 대한민국의 오늘이 없었다는 것을 깊이 사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