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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흔적

조선의 왕도 ‘쌈’ 먹었을까? 우리가 몰랐던 한식의 기원

조선의 왕도 ‘쌈’ 먹었을까? 우리가 몰랐던 한식의 기원

등록 :2021-10-29 04:59수정 :2021-10-29 17:18

박미향 기자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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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 요리 이야기, 김밥의 기원 등
한국인의 근원 한식에 얽힌 비밀들

자연법칙과 시간의 힘 품은 한식
비비고 뜯고 찐, 우리 맛 이야기

쌈밥 밥상. <행복이가득한집>을 펴내는 디자인하우스 제공

K FOOD한식의 비밀행복이가득한집 편집부 엮음 l 디자인하우스 l 20만원

김밥은 한식일까? 일본에서 건너온 외식일까? 김밥에 들어가는 단무지를 근거로 일제강점기 때 들어온 음식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과연 그럴까? 쌈은 서민 음식이었다. 공들여 재배하지 않아도 들과 산 어디서든 잘 자라 구하기 쉬웠던 채소나 나물에 밥을 싸 먹는 음식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왕들도 쌈을 먹었을까?

경북 안동, 안동 장씨 경당 종가 밥상. <행복이가득한집>을 펴내는 디자인하우스 제공

젊은 층의 솔푸드로 자리 잡은 피자는 이탈리아, 고급 음식의 대명사 스시는 일본, 큼큼한 향이 별미인 똠양꿍은 타이, 심지어 삭힌 홍어와 냄새로는 용호상박 맞수인 수르스트뢰밍은 스웨덴 음식이라고 척척 맞히는 우리지만, 정작 우리 삶의 근간이며 시작인 한식에 대해선 아는 바가 적다.〈K FOOD〉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책이다. 매일 접하기에 궁금함보다는 익숙함이 먼저인 우리 밥상에는 사실 ‘비밀’이 숨어 있다. 사계절 순환의 오묘한 법칙과 응축된 기다림의 시간이 스며 있다. 4~5월 마른 흙을 헤집고 뿌린 씨는 여름이면 보리 잎사귀들의 속삭임으로 돌아오고, 가을볕을 한껏 품은 붉은 감은 알싸한 겨울날 처마 밑에 달려 주렁주렁 논다. 삭히고, 묵히는 김치나 된장 같은 장류는 시간이 요리사다. 수대의 걸쳐 전해진 이런 경험이 녹아 있기에 한식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다.

경북 안동 광산 김씨 설월당 종가의 밥상. <행복이가득한집>을 펴내는 디자인하우스 제공

이런 ‘비밀’들이 촘촘히 박힌 책은 총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권의 제목은 오롯이 한식의 특징을 드러낸다. ‘한국의 특별한 맛’(1권), ‘밍밍하다, 싸다, 비비다’(2권), ‘담그다, 삭히다’(3권), ‘캐다, 따다, 뜯다’(4권), ‘끓이다, 삶다, 찌다’(5권) 등 낱권의 이름은 밥, 쌈, 장, 우리 술, 나물, 해조류, 국, 면, 떡 등 한식의 미시사를 풀어내는 화두다.

석류김치. <행복이가득한집>을 펴내는 디자인하우스 제공

비빔밥이 일례다. ‘비비는’ 법은 같은데도, 비빔밥은 평양비빔밥, 해주비빔밥, 전주비빔밥, 통영비빔밥, 헛제삿밥 등 종류가 많다. 돼지비계기름에 볶은 닭고기 고명이 올라가는 해주비빔밥과 쇠고기 육회를 올린 진주비빔밥은 완전히 다른 음식이다. 몇 년 전 만두시장에 분 ‘얇은 피 바람’을 숭어나 민어의 살을 피로 활용한 어만두와 연관 지어 논하고, 쓴 채소의 맛을 없애기 위해 장류나 그릇의 역할을 과학적으로 풀어낸다.

무싱건지. <행복이가득한집>을 펴내는 디자인하우스 제공

책은 2년 전 <행복이가득한집> 등을 펴내는 디자인하우스가 오뚜기함태호재단과 손잡고 기획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한식 대모’ 조희숙, 정혜경 호서대 교수, 박채린 세계김치연구소 박사,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 윤덕노 음식칼럼니스트 등 수십명이 제작에 참여했다. 영문판도 함께 나왔다. 국외 주요 한국 공관과 도서관 400곳에 기증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 기꺼이 작업에 정성을 쏟은 이어령 전 장관은, 한식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은 커져만 가는데 변변한 한식 책 한 권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김밥. <행복이가득한집>을 펴내는 디자인하우스 제공

월과채 같은 생소한 잡채부터 오곡밥처럼 흔한 음식까지 총 160여가지의 레시피와 기순도(장), 김정배(젓갈), 서분례(청국장), 정윤석(옹기장), 장만석(소금) 등 장인들 소개는 덤이다.김밥은 한식이다. 김을 섞은 종이에 대한 기록이 16세기 초 등장하는데, 대략 김밥의 태동을 그때로 본다. 조선후기엔 뚜렷한 기록도 있다. 조선의 왕도 쌈을 먹었다. 고종과 순종은 상추쌈을 즐겼다고 한다. 우리만큼 ‘먹는다’는 말을 좋아하는 민족도 없다. 나이도, 욕도, 감동도, 겁도 ‘먹는다’고 표현하다. 한식에 빼곡히 박힌 우리 정서가 5권의 책에 녹아 있다.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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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17141.html?_fr=mt0#csidx78e1118524999568b9cdff3fcad6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