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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흔적

윤 전 총장, 정치인의 언어는 은유입니다

오늘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설화(舌禍)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윤 전 총장, 정치인의 언어는 은유입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연합뉴스]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게 아니다. 지진하고 해일이 있어서 피해가 컸지만, 원전 자체가 붕괴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방사능 유출은 기본적으로 안 됐다.” 

 

“프리드먼은 부정식품이라고 그런다면, 완전히 사람이 먹으면 병 걸려 죽는 거면 몰라도, 없는 사람은 그 아래도 선택할 수 있게, 싸게 먹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사람이 손ㆍ발로 노동해서 되는 거 하나도 없다. 그건 인도도 안 한다. 아프리카에서 하는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 쿠데타와 5ㆍ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 왜 그러느냐? 맡겼기 때문이다. 이분은 군에 있으면서 조직 관리를 해 보았기 때문에 맡긴 거다.”

 

대표적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적절 발언’입니다. 이 외에도 페미니즘과 저출산 연결, 120시간 근로 등 논란을 부른 말이 많습니다. 위에 적은 발언은 모두 비유나 예시가 문제가 됐습니다. 꼭 예를 들거나 비유를 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원전의 위험성이 보통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만큼 크지 않다고 하면 되는데 굳이 잘 알지도 못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사례로 삼았습니다. ‘선택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면 되는데, 갑자기 부정식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부가가치가 큰 산업이 중요하다는 말에 공연히 인도와 아프리카를 들먹였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관련 발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두환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진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칭송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물론 제가 의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발언 맥락을 보면 대통령이 되면 인재를 적재적소에 쓰겠다는 말을 하려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거기에 비유와 예시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끼워 넣었습니다. 

 

윤 전 총장은 지난 8월에 “검사 시절에는 재판부와 조직 수뇌부, 같은 팀원 분들을 설득하는 게 직업이었다. 정치는 조금 다른데 설명을 자세히 예시를 들어 하면서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고 잇따른 설화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알고 있었습니다. 윤 전 총장 캠프의 한 인사에 따르면 여러 사람이 “제발 좀 예를 들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윤 전 총장의 발언 태도에 거침없이 말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환경이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검찰이라는 매우 동질성이 큰 집단에서,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갑’의 위치에서 생활했기에 언어 표현에 신중해야 할 필요가 적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특유의 ‘설명 본능’이 더해져 문제가 생기는 듯합니다.

 

정치인의 언어는 비유(比喩)가 아니라 은유(隱喩)입니다. YS는 “닭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습니다. DJ는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 “바보 노무현”, “깨어있는 시민” 등의 어록을 남겼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담대한 희망(audacity of hope)”이라는 표현으로 많은 사람을 설레게 했습니다. 

 

윤 전 총장은 8년 전 국회에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해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정치인이 된 뒤로는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장황한 설명이 아니라 가슴 뛰게 하는 힘 있는 한 마디가 정치인의 무기입니다. 

 

윤 전 총장의 ‘전두환 정치’ 관련 발언에 여야 대선 주자들의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석고대죄 요구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