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개국공신 (高麗開國功臣)
태조 왕건이 고려을 건국한 원년(918년)8월 辛玄일에 공(功)을 표시하여 조(詔) 말하기을 인신(人臣)이 좌시(佐時)의 기략(寄略)을 움직여 개세(蓋世) 의 높은 공훈(功勳) 을 세우는 자는 분모(分茅)와 조공(祚工)을 포상으로 주고 준질(峻秩)과 승반(勝斑)으로 높이는 것은 이것이 백대(百代)의 상전(常典)이요 천고(千古)의 굉규(宏規)이다.
나는 측미(測微)한 지위(地位)로 나와서 재식(才識) 도 용화한데 진실로 군망(群望)을 취하여 극히 홍기(弘基)을 이행하였으니 그 폭주(暴主)을 폐할 때을 당하여 충신의절(節)을 극진히 하는 자는 마땅히
상회을 행하여 훈노(勳勞)을 추장(推奬) 하셔야 되는 것이니
고려개국공신(高麗開國功臣)
一等(功臣(일등공신)
홍 유 洪 儒(남양홍씨 시조)
배현경 裵玄慶(경주배씨중시조)
신숭겸 申崇謙(평산신씨 시조)
복지겸卜智謙 (면천 복씨 시조)
二等功臣(이등공신)
견 권堅 權
능 식能 式
권 신權愼
김 락金 樂(당악김씨 시조)
연 주 連 珠
마 난 麻 煖
최 응 崔 凝(개성최씨원조)
유금필 庾黔弼(무송유씨시조)
김선평 金宣平(안동김씨 시조)
장 길 張 吉(안동장씨 시조) 정필이름 하사
류차달 柳車達(문화유씨 시조)
이 도 李 悼(전의이씨 시조)
함 규 咸 規(양근함씨 시조)
김선궁 金宣弓(선산김씨 시조)
왕희순 王希順
김훤술 金萱述(해평김씨 시조)
윤신달 尹辛達(파평윤씨 시조)
박윤웅 朴允雄(울산박씨 시조)
진 평 陳 評
박술희 朴術希
김홍술 金洪述(의성김씨 시조)
박수경 朴守卿
홍 규洪規(홍주홍씨 시조)
총 일 聰 逸
강궁진 姜弓珍(금천강씨중시조)-------강감찬장군이 후손입니다
이총언 李叢言(벽진이씨시조)
이능희 李能希(청주이씨시조)
이견웅 李堅雄(수안이씨시조)
지중익 池重瀷(충주어씨시조)어씨성 하사
사도귀 思道貴
최준옹崔俊邕(동주최씨시조)
예 언 倪 言
제 궁 제 弓
왕식렴 王式廉
한 란 漢蘭(청주한씨 시조)
전종회 田宗會
관 준 寬 駿
만 세 萬 歲
조 암 趙岩(풍양조씨시조) 개명
경함필 卿含弼
영 준 英 俊
김 길金 吉 (광산김씨 선조)
김철(金哲) 금강(금剛) 곡긍회(曲矜會 )배운태 (裵運泰)국현(國鉉) 적철(狄鐵 )열평(裂評) 황보선장(皇甫善長)송회(宋會) 석담(昔痰) 조창(曺昌)유지방(柳志防) 황승(黃勝) 홍관(洪琯) 석광(昔光) 임정(林程) 장개(藏凱) 염경(廉卿) 등이다
태조11년(928년)태조 후백제 견훤을 정벌하려 남행할 때 한란(韓蘭)이 방정리(方井理)에서 왕건태조을 환영하고 10만 군사에게 하루 동안 휴식하는데 주육급식을 베풀었으며 후삼국 통합에 공헌 하였다
태조13년(930년)12월 겨울에 신흥사(新興寺) 중수하고 공신당(功臣堂)을 설치하고 삼한공신(三韓功臣) 동서벽에 도화하였는데 그 수는 30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三韓壁上功臣 (삼한벽상공신) 개국공신(開國功臣) 가운데 큰 공 세운 인물
1 홍유(洪孺)남양홍씨시조
2 배현경(裵玄慶경주) 경주배씨중시조
3 유금필(臾금弼무 송인) 무송유씨시조
4 복지겸(卜智謙 목주)면천복씨시조
5 신숭겸(申崇謙 평산인) 평산신씨시조
6 김선필(金宣弼 선산인)
7 이총언(李悤言 벽진인) 벽진이씨 시조
8 김선평(金宣平 안동인) 안동김씨 시조
9 권행 (權幸 안동인)안동권씨시조
10 장정필(張貞弼안동인)
11윤신달(尹辛達 파평인)파평윤씨시조
12 최준용(崔俊邕동주인)동주최씨시조
13 문다성(文多省남평인)남평문씨시조
14 이능희(李能希청주인) 청주이씨시조
15 이 도(李 悼김의인) 전의이씨시조
16 허선문(許宣文양천인)양천허씨시조
17 구존유(具存裕능성인)능성구씨시조
18 원극유(元克猷원주인)원주원씨시조
19 금용식(琴容式봉화인)봉화금씨시조
20 김훤술(金萱術해평인) 해평김씨시조
21 한란 (韓 蘭 청주인) 청주한씨시조
22 강여청(姜餘淸냉천인) 금천강씨시조
23 손긍훈(孫兢訓밀양인) 밀양손씨시조
24 방계홍(房係弘남양인)남양방씨시조
25 나총례(羅聰禮 금성)금천나씨 시조
26 이희목(李希穆 부평) 부평이씨 시조
27 염형명(廉邢明 파주)
28 최필달(崔必達 강릉)강릉최씨시조
29 김홍술(金弘述) 의성김씨시조
30 김 락 (金樂) 당악김씨시조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개국한 왕건은 어느날 대궐 근처에 있는 신흥사(新興寺)에 들렀다. 신흥사는 왕건이 나라를 세우면서 도성인 송악(지금의 개경)에 세운 10개의 사찰(신흥사, 법왕사, 왕륜사, 내제석사, 보제사, 지장사, 문수사, 사나사, 자운사, 영통사) 중 하나다.
왕건은 후삼국시대를 거치면서 가렴주구(苛斂誅求)에 시달려 왔던 민심을 수습하고 새로운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불교를 국교로 채택했다. ‘고려전기불교사연구’에서 진관·지원스님은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평양에 수도를 옮기고 9개의 사찰을 건립했던 것은 정치적 의미가 강하다. 왕건은 고구려 광개토대왕처럼 강력한 고려를 만들려는 광대한 꿈을 가졌다”고 해석했다.
신흥사 법당에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던 왕건의 뇌리에는 자신을 임금으로 만들어 준 공신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모두가 보고 싶고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항상 측근에 두고 조그만 일도 의논하고 싶은 동지들이었다. 그래서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한 4년 뒤인 940년, 신흥사를 중수할 때 이곳에 공신당(功臣堂)을 세우고, 개국공신들의 초상화를 붙여두게 했다.
이 벽에 그려진 공신들을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이라고 일컫는다. 왕건이 벽에 그려진 공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사를 펼쳤다는 의미로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왕건은 벽상공신들에게 직첩(職牒)을 내리고, 이를 후손에 물려주게 하여 문음(門蔭)의 특전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또 식읍(食邑)과 녹읍(祿邑), 역분전(役分田)의 형태로 경제적 기반도 제공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의 통일에 협력한 인물들에게 내려준 공신칭호로, 같은 왕 23년(940)에 책봉되었다. 통일전쟁에 직접 참여한 태조의 무장과 문신으로 구성된 막료 및 그에게 협력한 각 지방세력가 및 왕비의 아버지 등도 포함되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는 개국공신과 배향공신에 책봉된 인물들도 포함되고 있기 때문에 고려 태조 때 공신을 포괄하여 삼한공신이라 통칭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직첩(職牒)이 내려지고 이를 후손에 물려주게 하여 문음의 특전을 받도록 하였다. 또한 식읍(食邑)과 녹읍(祿邑) 및 역분전(役分田) 형태의 경제적인 기반도 제공받고, 그들의 본거지에서 독자적인 세력가로서의 지위를 보장받았으며, 토성(土姓)을 분정받기도 하였다. 고려시대 삼한공신에 대해서는 『고려사』 권88, 열전1, 후비, 태조, 정목부인(貞穆夫人) 왕씨전(王氏傳) 참조
[출처] 태조(太祖)2 (고려사券2 世家2) 21년~26년|작성자 어이무사10
'시대의 흔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다하다 이런 낙하산…사장·부사장·감사·사외이사까지 親與 [뉴스원샷] (0) | 2021.09.25 |
---|---|
살며, 느끼며 - 민족주의로 달려가는 중국 (0) | 2021.09.22 |
역사 속으로 사라진 유대인 후손들, 현재 인도 북동부에 산다? (0) | 2021.09.22 |
사형 당한 조광조 어머니의 자식교육 (1) | 2021.09.20 |
유성룡이 쓴 임진왜란 때 상황 자료 징비록의 교훈을... (1) | 2021.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