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왕비서관’ 이광철 얼마나 세기에…
김우정 기자 입력 2021-06-12 12:59수정 2021-06-12 13:01
이광철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관. [뉴스1]
최근 두 폭풍이 검찰을 강타했다. 고위간부 인사와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이 뼈대인 법무부의 검찰 조직개편안 얘기다. 6월 4일 법무부는 검사장급 이상 고위간부 인사를 단행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출금) 의혹’에 연루돼 기소된(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이성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은 서울고등검찰청장으로 영전했다. 반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징계 청구’를 반대한 간부들은 좌천됐다. 구본선 광주고등검찰청장과 강남일 대전고등검찰청장이 각각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직인 데다, 대개 검사장급이 맡던 직위라 사실상 ‘강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무리한 인사, 탈 날 수밖에”
전현직 검찰 관계자들은 이번 인사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 고검장의 영전이 주된 비판 대상이었다. 현직 A 검사는 “평검사조차 피고인 신분이 되면 사직하는 것이 상식이다. 검찰 수사를 받는 피의자 신분이 보신·영전을 위한 보증수표인가”라며 “이 고검장이 검찰총장 후보에서 낙마하는 것을 보고 상식적 인사를 기대했는데, 고검장 승진을 보니 ‘역시나’였다”고 말했다. 검찰 간부 출신 B 변호사도 “인사권자들이 정권 재창출이라는 목표를 이루려고 ‘방탄’ 인사를 했다. 무리한 인사로 권력을 향한 의혹을 무마하면 결국 탈이 날 수밖에 없다”고 평했다.
법조계에선 이번 검찰 인사가 이광철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관의 ‘작품’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민정수석을 보좌해 검찰 인사를 조율하는 것은 민정비서관의 본래 업무이긴 하다. 문제는 이 비서관이 권력형 게이트에 연루된 의혹을 사고 있다는 것.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검찰 수사 결과 증거 불충분 무혐의 처분)과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금’ 의혹이 그것이다. 4월 24일 이 비서관은 수원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도 받았다. 2019년 3월 김 전 차관에게 불법적 방식으로 출금 조치가 내려진 데 관여한 혐의다.
C 검사는 “소문처럼 이 비서관이 검찰 인사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수사 대상이 수사 주체를 쥐고 흔드는 격”이라며 “수사팀이 혐의를 입증해도 (이 비서관을) 제대로 기소할 수 있겠는가. 살아 있는 권력에 충성하면 끝까지 보호받고, 반대로 권력을 수사하면 ‘날려버린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평했다.
5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비서실 수석급 3명과 비서관 5명을 교체하는, 사실상 임기 내 마지막 청와대 인사를 단행했다. 청와대 참모진이 크게 바뀌었지만 이광철 비서관은 자리를 지켰다. 이 비서관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인 2017년 5월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대통령비서실에 입성해 2019년 8월 민정비서관으로 승진,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다. 조국·김조원·김종호·신현수·김진국 등 5명의 민정수석을 모시며 자리를 지킨 그에게 ‘왕(王)비서관’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었다. 2월 검찰 인사에 대해 이 비서관이 신현수 당시 민정수석을 ‘패싱’하고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직접 소통·조율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청와대 구내식당서 ‘혼밥’한 신현수”
6월 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김오수 검찰총장(오른쪽)이 박범계 법무부 장관을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민정비서관이라는 직위의 역할을 과장한 음모론은 아닐까. 대통령비서실에서 근무한 D 변호사는 “민정비서관은 민정수석을 보좌하는 그림자이지만 수석도 대통령의 강력한 신임이 있어야 부하 비서관을 휘어잡을 수 있다. 신현수 전 수석의 경우를 보면 이 비서관의 힘이 막강한 것 같긴 하다”며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여권 내 ‘안티(anti)’가 많아 고사하던 신 전 수석이 민정수석직을 받아들인 것은 ‘힘을 실어주겠다’는 문 대통령의 약속 때문 아니었겠나. 그런데 막상 청와대에 들어가니 검찰개혁이나 인사를 두고 자신보다 이광철 비서관 등 다른 참모의 입김이 더 강한 것에 회의감을 느꼈다고 본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르겠으나, 신 전 수석이 청와대 구내식당에서 자주 혼밥(혼자 먹는 밥 또는 그런 행위)했다는 목격담마저 있을 정도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추진하는 검찰 조직개편안도 논란이다. 전국 검찰청 형사부 소속 검사가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를 수사할 때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의 승인을 받도록 한 것이 뼈대다. 대검은 6월 7일 김오수 총장 주재로 부장회의를 열어 법무부의 검찰 조직개편안에 대해 논의했고, 이튿날 ‘수용 불가’ 의견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를 두고 ‘친(親)정권 검사’라는 오명을 쓴 김 총장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분석과 ‘합을 맞춘 보여주기식 반대’라는 관측이 교차한다.
전직 검찰 고위 관계자는 “이번 인사엔 김 총장의 의중이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성윤(전 서울중앙지검장)을 서울고검장에 앉히든, 조남관(전 대검 차장)처럼 한직인 법무연수원장에 앉히든 질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나. 어찌됐든 이 고검장은 이번 정부와 운명공동체라고 봐야 한다”며 “김 총장이 직을 걸고 이 고검장의 영전을 막지 않은 것이 차라리 현명한 처사일 수 있다. 지금처럼 ‘체력’을 안배해 검찰을 무력화하는 조직개편에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고 짚었다. 김 총장과 자주 교류하는 한 법조인은 “(김 총장이) 어떻게 처신해도 정권 친화적 총장이라는 비판을 받아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안다. 이번 고위간부 인사도 그 나름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애썼지만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총장으로서 검찰 전체 의견을 잘 반영해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검찰 출신 E 변호사는 “과연 김 총장이 박 장관과 제대로 세게 붙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 장관이 ‘누가 당신을 총장 시켜줬느냐’고 ‘청구서’를 들이밀면 인사든, 조직개편이든 정권 의향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93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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