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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평론

[류근일 칼럼] 박근혜·이명박·이재용에 대한 명상

[류근일 칼럼] 박근혜·이명박·이재용에 대한 명상

류근일 언론인

입력 2021.05.24 03:20

 

 

1887년 5월 8일 새벽 3시 30분. 제정 러시아 실리셀부르크 감옥 형리들이 페테르부르크 대학생 알렉산더 울리아노프(사샤) 등 정치범 5명을 교수대로 데려갔다. 마대를 씌우고 그들이 선 의자를 밀쳤다. 처형이었다. 그들은 황제 알렉산더 3세를 암살하려다 잡혔다. 황제는 사샤 어머니 마리야 알렉산드로프나 울리아노프의 탄원을 묵살하고 형 집행을 재가했다. 이 소식에 사샤의 열일곱 살 난 동생 블라디미르는 울부짖었다. “나는 저들이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31년 후 1918년 7월 16~17일 자정. 시베리아 관문 예카테린부르크에선 또 처형이 있었다.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부부, 그들의 자녀 올가, 타티야나, 마리야, 아나스타샤, 알렉세이가 지역 공산당원들에게 사살당했다. 이걸 명령한 사람은 사샤의 동생이자 볼셰비키 혁명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이었다. 레닌의 가족사적 복수심이 로마노프 일가 몰살의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게 미국 웨슬리언대학 필립 폼퍼 교수의 연구였다.

황제와 혁명가 사이에선 처형과 복수는 당연한 작용·반작용이었을 것이다. 레닌은 알렉산더 3세가 자기 형을 죽였기 때문에 그도 당연히 니콜라이 2세를 죽였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황제의 부인과 자녀들까지 모조리 죽였다. 이건 과잉이고 광기다. 레닌·스탈린 혁명은 그 후 해방·정의·평등·풍요가 아니라, 구체제보다 더한 압제·흉악·특권·궁핍을 만들어내다 80년 만에 망했다.

이 역사의 해학(諧謔)은 한국 현대사에서도 똑같이 되풀이되었다. 권위주의 시대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반면에 숱한 시국 사범을 양산했다. 세상이 바뀌자 그 시국 사범들이 권력자가 되었다. 그리고 박근혜·이명박·이재용이 감옥에 갔다. 복수였다. 5월 21일 있었던 한 법조 세미나는 그 재판이 ‘과잉’ ‘여론 재판’ ‘오판’이라 했다. 새 권력자들의 갑질, 권력 남용, 유공자 특혜, 성추행, 내로남불, 부정선거 피소야말로 국정 농단, 적폐였다. 그들의 4년도 문명적 진보 아닌 천박한 퇴행을 불러왔다.

정치의 퇴행은 민주주의 위기로 와 있다. 1987년에 합의한 자유민주주의가, 그것을 인민민주주의로 바꾸려는 ‘양아치 짝퉁 진보’에 난폭하게 유린당했다. 180의석을 거머쥔 저들은 의사봉만 두드리면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법까지 만들 수 있다는 식이다. 주민자치법이라는 인민위원회 법안도 나와 있다. 김여정이 빽 소리만 질러도 그게 곧 법이 된다. 대한민국이 지고 ‘남측 민중혁명위원회’가 뜨는 정황이다.

 

경제의 퇴행은 자유시장·자유경쟁·자유기업 위축으로 와있다. 내 집 마련의 소박한 꿈 같은,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행복 추구마저 ‘타도해야 할 소부르주아 반동’인 양 찍힌다. 사적(私的) 소유에서 국유화로 가는 길목이다. 20세기 초 러시아에서 자영농 숙청이 있었다면, 21세기 초 한국엔 1가구 1주택자 죽이기가 있다. 사회주의로 가는 ‘중산층 해체’ 작업이다.

그렇다면 이 보복 정치, 전체주의화(化), 문명의 퇴보, 국민적 피폐를 무엇으로 치유할 것인가? 정권 교체 외엔 답이 없다. 운동권 확증 편향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 좋은 치유의 물꼬가 뭘지 말은 해줘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같은 게 그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고령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여론 70%가 사면 찬성이다. 문 대통령 선택으로 보복의 악순환이 ‘일단 멈춤’이라도 했으면 한다.

사람들은 사면을 정치 문제로만 다루려 한다. 이런 논란엔 인간적 연민이 없다. 긴 감옥살이는 귀뿌리가 얼고, 다리가 O형으로 굽는 세월이다. 이건 그 어머니 고통에 비하면 또 아무것도 아니다. 황제와 사샤는 제멋에 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 치인 사샤 어머니 삶은 무엇이며, 어떻게 제값을 인정받는 것일까? 인간적 연민은 이 역사 속 어머니 자리를 배려하는 깊이다.

사면에 대한 정치적 찬반은 상극(相克)의 상처를 덧낼 수 있다. 그러나 모성에 대한 통찰은 상생(相生)의 훈기를 발할 수 있다. 응답하라, 모성에. 그러면 치유하고 치유될 것이다. 법정 방청석의 우리 어머니, 김지하 어머니, 사샤 어머니 얼굴에 드리웠던 비탄의 그늘이 새삼 가슴 저리게 눈에 와 밟힌다.